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춤추는바람 May 08. 2024

마찰

만남, 마주침과 마찰



지인들 집으로 초대한 날, 음식 준비를 위해 야채 가게로 장을 보러 갔다. 이것저것 담다 보니 장바구니가 가득 찼고.


 "어머, 언제 이렇게 많이 담았어요!"

 

계산대로 가자 아주머니가 놀라며 "배달해 드릴게요."라고 먼저 말을 건넸다. 생각도 못했는데 배달을 받을 수 있구나, 그제야 떠올랐고. 그런데도 시간이 촉박해 직접 들고 가겠다고 하니 무거워서 안 된다며 아주머니가 나를 말렸다. 가능한 한 빨리 배달해 주겠다는 말씀에 마음을 돌려세웠다. 가게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언덕길. 무거운 장바구니 들고 그 길 오르며 괜한 힘을 빼는 것보다 조금 늦더라도 배달로 받는 게 훨씬 낫지. 나보다 앞서 내가 돌아갈 길을 걱정해 주는 아주머니의 배려가 고마웠다. 무거운 것들 맡겨두고 가벼운 찬거리 몇 개만 챙겨 가뿐히 돌아왔고 얼마 후 나머지 재료들 종이 상자에 담겨 집 앞에 도착했다.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배려가 있다. 아주머니가 말씀하지 않았다면 양손에 그 무거운 걸 들고 오느라 기운이 빠졌을 텐데. 내가 담은 장바구니가 무거울 걸 알아 먼저 배달해 주겠다고 말하는 배려 덕분에 힘을 아꼈다. 비축한 힘으로 즐겁게 음식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내 뒤에서 나를 챙겨주는 생각지 못한 사람들 덕분에 때때로 삶이 더 즐거워진다. 장바구니에 담아 온 가지, 버섯, 호박, 브로콜리 다듬으며 작물들 잘 키워준 사람들의 수고까지 떠올렸다. 누군가의 배를 불려줄 거라며 야채들 자라는 내내 정성을 들였을 그 사람의 마음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종류와 색깔별로 가지런히 그릇에 담아 소금, 후추 간하고, 올리브 오일 둘러 오븐에 구웠다. 내 뒤에서 나를 챙겨준 사람들의 마음까지 담긴 듯 그릇 안이 소복했다.


언젠가 책에서 마찰이 긍정적인 사건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마찰이라고 하면 으레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은데. '두 물체가 서로 닿아 비벼짐'이라는 뜻처럼 마찰은 물건들을 부딪혀 닳고 낡게 한다. 이해나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부딪히면 큰 소리가 날 수도 있다. 유사어로 분쟁과 충돌이 있는 것처럼. 그런데 마주치고 마찰하며 닳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마찰은 세상의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게 해주는 힘이기도 하니까. 마찰력이 없다면 모든 물체는 지구 표면에 멈춰 있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릴 것이다. 나와 반대되는 힘이 있어야 움직이려는 나를 멈추게 할 수도 있다. 마찰이란 한 존재가 자신의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머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마구 흔들리거나 움직이던 혼돈에 고요와 평온을 주는 힘, 뾰족한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고 존재의 표면에 무늬와 결을 만드는 힘, 마주치며 뜻밖의 노래나 화음을 빚어내는 힘이 마찰로 만들어진다. 누군가를 만나야 즐겁고 놀라운 일이 생기고 기분 좋은 이야기도 흘러나오듯 마찰로 닳기만 하는 건 아니다. 오래된 절간이 떠오른다. 세월의 풍파에 씻기고 마모된 목조 건축물. 한때 화려했던 처마 밑 무늬와 색은 바래고 사람들 발길에 쓸려 움푹 파인 문지방. 거칠게 짙어진 나무 기둥. 자기 밖에서 오는 쓸림에 고스란히 몸을 맡긴 존재가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누군가와 마주해야 ‘나’라는 주체가 생기고 타인과의 다름으로 나의 고유함도 발견할 수 있다. 마찰로 우리 각자는 자기 자신이 된다. 마주치고 마찰하면서 내게 필요한 것을 얻고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도 있다. 배우고 깨닫고 느끼며 더 단단하게 설 수 있다. 때로는 닳고 때로는 무늬를 새기며, 때로는 소리를 내고 깊어지기도 하면서 저마다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 뿌리내린다. 내가 주로 부딪히는 대상은 무엇일까. 누구를 만나 무엇을 듣고 받아들이고 닳아가며 내가 되고 있을까. 그렇게 새겨지는 무늬와 결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마찰은 뜻밖의 화음으로 즐겁고 아름답다. 야채 가게 아주머니와의 만남처럼 나도 모르는 세상의 배려를 깨닫고 삶을 지탱해 주는 곳곳의 마음을 떠올리게 해 준다. 만나야 발생하고 빚어지는 기쁨이 있음을 새삼스레 알려준다.   


아주머니가 내게 남겨 준 가뿐한 마음으로 오이 샌드위치와 야채 구이를 준비했다. 과일은 깨끗하게 닦아 소담하게 접시에 담았고. 초대받은 사람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나누어 먹을 디저트와 과일, 안주거리를 들고 왔다. 오랜만에 만나서도 금세 친구가 되는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사이 아이들이 퍼뜨리는 말간 소음을 배경으로 어른들은 밤늦도록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들 키우며, 한 살 두 살 나이 먹으며 삶의 새로운 얼굴을 대면하는 낯설고도 기쁜 마음을 소소하게 나누었다. 생활을 나르는 자잘한 말들 위로 서로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 살포시 얹혔고.


어느새 이 모임도 해를 거듭하며 지속되고 있다. 해를 시작하고 맺을 때, 계절이 바뀔 때, 서로의 기념일을 축하할 때, 자연스레 만남이 이어진다. 나의 가족만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와 삶을 엮으며 풍성해지는 시간이 나는 좋다. 그 연결에 이제는 나의 친구들과는 또 다른 성격과 개성을 지닌 아이들까지 합류하였고. 그러면서 내 삶의 패치워크는 성글지만 더 넓게 짜여가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의 조각을 덧대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뜻밖의 무늬가 생기고 어긋나는 패턴도 붙는다. 그런 예상 밖의 사건들이 삶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소란과 부조화, 사건과 부딪힘이 즐겁고 유쾌하다. 그렇게 만나고 마찰하면서, 그걸 여유롭게 바라보며 잠잠히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차이의 해소 대신 창조적 듣기가 필요하다던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말처럼 타인과 타종과의 마주침, 그로 인한 마찰과 교란, 소란과 오염을 긍정하며 더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삶이 어긋나는 지점, 우연과 우연이 만나 탄생하는 가능성을 기억하고 기대하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