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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후의 세계

by 찬우

점심으로 냉모밀이 나온다지

하루에 아홉 번 울리는 종은 출력이 약해

내가 도착할 때면 얼음은 늘 녹아있고

물고 쥐는 사탕 같은 거 체육복에 눌어붙는 더위

검은색 머리끈 같은 걸로 괜히 손목을 쥐고

승자 없는 경주 후발주자로 달려 나가네

담갈색 포니테일 뒤꽁무니를 열심히 쫓으며

쌍시옷과 비읍과 지읒과 니은으로만 의사소통에 성공하는 빈칸들

뒤축을 밟고 밟히며 끝에서 끝으로 손 한 번 흔들고 사라진다


모든 건 5분으로 통해

빨리 먹는 건 우리의 종족 특성 같은 것

다만 시간이 부족한 건 아니고 발맞춰 앞서가는 게 익숙해서 그렇지

운동장 하나에 공이 넷, 공부하는 애들 잘 없고

구역을 나눠 시합을 네 개씩, 골대는 두 갠데 골키퍼는 네 명

반 갈라 먹는 아이스크림


담벼락 넝쿨장미 수험생인 우리보다 먼저 피곤해하네

고무줄총 같은 햇살이

누군가의 그림자 위로 어긋나게 꽂히고

점심시간은 이제 기억의 저편,

닭강정 트럭은 오늘 이 동네에 오지 않아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엔

공 하나에 머리를 대기엔

너무 많은 말들이 공중에서 얽혀

하루가 지나면 모서리만 남은 노트처럼

우리는 또 한 장을 찢어버리지


어른들은 이 시간을 추억하라 말하지만

당신들의 불효처럼,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땀 냄새 나는 지금을 뛰고 있어


아직 다 채우지 못한 시간표와 아직 말하지 못한 괜찮음이

교문 앞 자전거 바퀴에 감겨

텅 빈 복도에 다시 울려 퍼진다—

열 번째 종이,


이번엔 좀 더 크게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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