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수목장
5월 14일
10주에 소파 수술로 유산을 했을 때는 관절이 아프거나 붓거나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달랐다. 분만으로 아이를 떠나보냈기에 관절 마디마디가 아프고 몸이 붓고 두르려 맞은 듯이 아팠다. 그리고 젖몸살이 왔다. 젖을 먹을 아이가 없는데 젖이 나오니 정말 서글펐다. 미친 사람 같겠지만 젖에 젖은 손수건의 향을 맡아보면 아기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가 아기 같고 너무 좋아 티셔츠 안으로 얼굴을 박고 그 냄새를 맡고 또 맡았다.
까꿍이와 함께한 며칠 동안 까꿍이 유골함을 내 품에 안고 잤다. 그런 내 모습이 남편과 엄마를 많이 아프게 했다. 이틀 동안 유골함을 안고 자다가 다음날은 그냥 바라보면서 자다가 어떤 날은 아예 돌아 누워 남편 쪽을 바라보고 잠들기도 했다. 나는 매 순간 까꿍이를 바라보지 않는 게 점점 미안해졌다. 원래라면 내 몸조리가 끝난 3주 뒤에 수목장을 하러 가려고 했는데 더 이상 까꿍이와 함께 하는 건 아기와 우리 부부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 일주일 만에 수목장을 하러 갔다. 그래 까꿍이도 어서 하늘나라 가서 뛰어놀고 쉬어야지.
까꿍이의 수목장은 남편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묘소 옆에 묻기로 했다. 슬픔으로 까무러쳐있는 나를 대신해 남편은 삽을 사고 나무를 주문하고 조용히 수목장을 준비했다. 그리고 5월 14일 새벽 까꿍이를 품에 안고 묘소로 향했다. 날은 또 어찌나 좋던지. 5월의 날씨는 매일매일 참 잔인하게 맑았다. 묘소로 향하던 남편 차 안에서 나는 많이 울었었는지, 멍한 눈빛으로 창밖만 바라봤는지, 품에 안은 까꿍이에게 마지막 이별을 속삭였는지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묘소에 도착해서 할어버지, 할머니에게 절을 하고 까꿍이 잘 지켜 주세요라고 했는지 까꿍이 다시 보내달라고 했는지 나는 뭐라고 기도 했었나. 왜 이렇게 기억이 안 날까.
할아버지, 할머니.
까꿍이를 먼저 보냅니다.
하늘나라에서 우리 까꿍이 잘 보살펴주세요.
그리고 다시 보내주세요.
우리는 까꿍이의 초음파 사진을 모두 다 태우고 땅을 팠다. 그리고 유골함을 열어 상자의 1/10도 채우지 못한 까꿍이 유골을 가슴에 안고 펑펑 울었다. 실은 이 날 목 놓아 크게 크게 울고 싶었는데 많이 울지 못했다. 이 날 눈물을 다 쏟아 내지 않아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우는 건가 싶다.
까꿍이를 땅에 묻고 나무를 심었다. 흙도 밟아 주고 액상 분유와 가루 분유를 여기저기에 뿌리고 물도 가득 줬다. 택배로 배송된 나무라 한쪽이 기울어져 있지만 씩씩하게 햇빛을 향해 곧게 자라겠지. 이 글을 적는데 문득 이 가뭄에 목이 많이 말랐을 것 같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우리 까꿍이. 아빠 엄마가 이렇게 두고 가서 미안해.
이 나무는 네가 지구에 존재했다는 표식이야.
이곳에 올 때마다 널 기억하고 또 기억할게.
너는 하늘 높이 높이 올라가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행복하게 지내요.
아빠 엄마가 사랑하고 또 사랑해.
조만간 우리에게 다시 와줘.
건강하게 우리 다시 만나자.
사랑해 우리 까꿍이.
까꿍이 나무와 남편, 나 셋이서 함께 사진을 찍고 나오는 길에 다시 돌아가 한번 더 안아 주고 한번 더 눈물을 흘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떼어내며 그렇게 아이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