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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분 Feb 06. 2022

햇살과 소파와 선글라스


일요일 오전 열한 시 반.

아이가 아빠와 함께 낮잠을 잔다.

평일이라면 아이 옆에 누워 나도 잠을 보충했겠지만,

오늘처럼 아무런 일정도 없고, 거실은 적당히 어지러워 굳이 당장 정리하지 않아도 되며, 아이가 자는 동안 해치워야할 일이 없는 주말은 특히 드물기에 아무것도-해야만해서 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서글프게도 막상 이런 시간이 주어지면 무얼 해야하나 고민하다 대부분의 시간이 흐른다.

일단은 어제 사 온 빵을 데워 우유와 함께 먹었다. 맛이 좋다. 첫 번째 선택에서는 꽤 큰 만족감을 느꼈다.



다음은 뭘하지?

빈 접시와 식탁, 거실책장을 괜스레 한바퀴 눈으로 훑어본다. 책을 읽자니 오늘 아침은 딱히 끌리는 주제가 없다. 그렇다고 최근 시작한 도덕경 필사를 하자니 그보다는 좀 더 가까운 현실에 머무르고 싶다. 시간때우기용으로 TV를 보는 건 더더욱 하고싶지 않다. 잠시 가만히 앉아있다가 노트북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무엇을 써볼까 생각을 시작하자 갑자기 머릿속이 온갖 단어와 기억, 감정들로 뒤죽박죽이 된다.

불과 몇 개월 전과 비교해도 놀라울만큼 하루가 다르게 크고있는 아이의 모습을 기록해볼까?

새로운 집으로 이사와서 좋은 점들을 쭉 나열해볼까?

더없이 행복하다 싶다가도 순간순간 나는 껍데기뿐이라고 느껴지는 공허감을 토로해볼까?

앞으로도 별다른 의미없이 그저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이 다인 삶을 살까봐 불안한 마음을 쏟아내볼까?



그런데, 무언가를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나?


아니, 꼭 뭔가 달라져야 글을 쓰는 건가?


아니, 애초에 나는 왜 노트북을 들고 소파에 앉은 거지...?







내 마음은 항상 어딘가를 향해 달린다.

목적지도 없고, 심지어 어떤 방향조차 없는 채로 그저 뛰고만 있다.

아이가 노는 것을 지켜볼 때나 밥을 먹을 때,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그 동동거림이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햇살이 거실창가에 그림을 그리는 지금같은 순간이면 온통 귓가에 그 뜀박질 소리만 들리는 거다.

폭신한 소파에 앉아서도 안절부절 못하고 점점 커지는 그 소리를 듣고있자면 약속한 듯이 밀려오는 것들이 있다.



당장이라도 뭔가를 해야만 할 것같은 압박감, 이대로 이 시간을 흘러보내버리면 큰일이 날 것같은 불안함, 좀 더 잘-알차게-의미있게-즐겁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 등등.

그것들은 아주 빠르게 돌고있는 톱니바퀴같아서 자칫하면 베일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제발 어디든 나아갈 방향만이라도 정해달라고 아우성치는 혈기왕성한 전사들같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매일 저녁 아이가 잠들고나면, 나의 것이 아닌 삶들로 가득한 SNS와 꼭 내 것일 필요없는 물건들로 가득한 갖가지 쇼핑몰들을 배회한다. 매번 어느 것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 핸드폰 화면을 끄고 나서는 멍한 머리로 TV 채널을 돌린다. 그 안에도 역시 내가 원하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자야할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무시당한 마음 속 동동거림은 다음날을 벼르며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또 같은 하루의 반복.

동동거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져간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 대학교, 취업, 결혼, 출산.

부지런히도 애써왔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소파 위에 앉아 거실에 스며든 햇살을 만끽하는 것도 사치는 아니다 싶은데, 대체 뭐가 이리도 어려울까?

나는 어디로, 무엇을 향해 더 나아가고 싶은 걸까?

나의 지금을 감사하지 못할 이유를 찾는 것에 힘쓰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어느덧 삼십대에 완전히 안착한 나는 어쩌면 이십대의 나보다 더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워진 듯하다.

온전히 내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이 더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기 때문이겠다. 당시에는 그것을 몰랐다는 아쉬움이 먹먹함을 더한다.

이 먹먹함에 힌트를 얻어 사십대의 내가 바라보는 지금의 나를 상상해본다.



화창한 어느 날 - 바람도 기분좋게 선선하고 맑은 하늘에는 구름이 알맞게 떠다녀서 이 정도면 더 바랄 것이 없는 날씨다 싶은 그런 날 -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서 왜 이렇게 날이 우중충하냐, 고 묻는 사람.



지금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닐까?



좋은 날을 더 잘 즐기기 위해 쓴 선글라스가 지나치게 어두워 그 하루를 망치는 주범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지나치게 많아서 되려 뒷걸음질치는 그런 사람.



오늘의 동동거림은 선글라스의 적절한 농도를 생각하며 잠재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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