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레 추측해보건대, 나는 지금 우울증 극초기에 들어선 것같다.
싱글벙글하다가도 자세를 고쳐앉다 약간 지저분한 주방이 눈에 띄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곧바로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이고,
어지러운 주방이 마치 실패한 인생의 상징인 양 지나온 내 시간들을 죄다 시궁창에 처박고 싶어진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항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우울도 내가 잘 아는 감정이라고 하기 아직은 어렵다 싶고,
항해 역시 제주도 가는 배를 타본 것이 전부이지만,
왠지 두 단어는 짝꿍처럼 느껴진다.
우울의 바다는 몹시 고요해서 마치 허공 위를 떠있는 것같지만,
작은 바람이라도 불면 순식간에 집채만한 파도가 아귀를 벌리고 달려든다.
전복당하진 않더라도 그 파도에서 흩어져나온 몇 방울의 우울이면 그 배에 탄 나는 흠뻑 젖고 만다.
그 젖은 몸이 너무나 무거워 눈뜨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고개를 들어 맑은 하늘을 보려면 온 몸의 힘을 쥐어짜야 한다.
그마저도 하늘은 맑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의 일이지만 말이다.
아주 가까이서 바로 내 머리 위에 맑은 하늘이 있다고 끝없이 일러주는 존재들을 떠올려본다.
나의 남편과 아이들.
한편으로는 나를 이 바다로 이끈 존재들이기도 하다 라고 말하면 손가락질 당하려나.
이렇게 예쁜 아이들과 그렇게 헌신적인 남편을 두고 어쩜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힐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남편과 아이들-이라는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그 배가 나를 이 곳으로 이끌었으나,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언제 성질을 부릴지 모를 바다 위에서 나를 감싸안고, 저어기 맑은 하늘이 있음을 지치지도 않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우리 모두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항해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숨돌릴 틈도 없이 결혼과 임신과 출산과 육아와 또 한 번의 임신과 출산과 육아라는 바다를 건너온 우리다.
서로만 바라보며 이따금 덮쳐오는 크고 작은 파도를 피하며 흘러왔을 뿐인데,
하필이면 우울의 바다에 접어든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들어서버린 것을.
몇 번의 파도를 지나며 이제는 살짝 일렁이는 물결만 봐도 두려운 지경이 되었으나,
무섭다-고 말하면 괜찮다, 함께 잘 이겨내자-고 말해주는 이가 있음이 그지없이 감사하다.
살짝 튀어오른 몇 방울의 우울을 툭툭 털어내며 나의-아니, 우리의 무사항해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