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분 Sep 23. 2022

가을 육아



아, 쾌청하다.


'쾌청'처럼 약간은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마저 다정스럽게 느껴지는 요즘은 가을이다.


오늘로 5일째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는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나서는 아침.

앞유리로 보이는 하늘이 벅찰 지경으로 맑다.

창문을 여는 버튼을 힘까지 주어가며 꾹 눌러본다.

활짝 열린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넘나든다.

기분좋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에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에도 흥이 올라탄다.

이대로 저 하얗고 푸른 속으로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며칠째 등하원길에 아이와 함께 듣고있는 노래들도 더 바랄 것없이 만족스럽다.

오늘은 특별히 '가을아침'을 선곡했다.

산뜻하고도 따뜻한 가사들이 포근한 목소리를 타고 차 안을 훑었다가 하늘로 날아든다.


왠지 모르게 들떠있는 엄마의 뒤통수를 보고있는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나보다 더 온몸으로 가을이라는 축복을 만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언제나 내 짐작보다 커다란 세계를 품고 있으니까.




아이는 어린이집에 우려했던 것보다 잘 적응하고 있다.

뭘 그리 걱정하고 무서워했나 머쓱할 정도다.

자기가 가야할 곳, 해야할 일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듯한 저 맑은 눈빛.

아이는 이미 선생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갔는데,

괜스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내 눈에는 온통 아이의 얼굴뿐이다.


첫날에는 마냥 교실쪽만 바라보며 어슬렁거렸는데,

이제는 머무르는 시간이 꽤 길어져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틈이 생겼다.

최근 관심을 갖기 시작한 교육법에 맞춰 준비해야할 것들도 대강 떠올려보고,

앞으로 이 오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약간은 기대섞인 계획도 세워보고,

잠깐 또 교실쪽을 한 번 바라봤다가,

이내 또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본다.



산다는 건 역시 좋은거야,

라고 온 가을이 말해준다.



이 가을, 오늘 하루가 감사하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 한 점, 들이쉬는 숨 하나하나 놓치고싶지 않을 만큼 맑은 날씨 덕분인지,

자기의 일을 멋지게 해내고 있는 아이 덕분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중요하지 않다.

지나온 시간들이 결국은 오늘 느끼는 이 충만함을 위해 존재했던 것만 같다.

하루에도 몇번씩 열탕과 냉탕을 넘나들며 겪었던 멀미마저 지금을 위해 필요했던 사건처럼 느껴진다.

가을은 마침내 육아에마저 낭만을 덧칠하고 마는 것이다.


다가올 많은 시련들을 기꺼이 맞이하기 위하여,

지나고나면 행복이라 여겨질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이 충만함을 아낌없이 또 쉼없이 삼킨다.






아이의 일상이 늘 평화롭기를 바란다.

아이의 하루가 따뜻하기를 바란다.

아이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는 스스럼없기를 바란다.

삶이 힘들 때에도 가을은 언제나 때맞춰 찾아온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기를 바란다.

조금 더 욕심내어, 내가 아이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가을은 엄마에게 이런 꿈을 꾸게 한다.

가을은, 육아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이전 11화 우울의 바다를 항해하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