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귀향 둘째, 셋째 날 (September 20th, 21st)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10월까지는 최근의 귀향이야기를 먼저 쓰고 11월부터 2022년의 미국이야기를 마저 이어 쓰려합니다.
"반가운 재회 & 미국 고등학교 풋볼"에서 계속
미국에서 2년간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2년을 보낸 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잠시 돌아왔습니다.
"뉴욕 Home"에서 18일간 머물면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그날그날의 일들을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정리하곤 했습니다. 이 글은 아래 슬라이드에 담긴 것을 풀어쓴 것입니다.
아직 시차 적응이 남아있는 미국 귀향 둘째 날. 평소보다 살짝 늦었지만 그래도 Owen과 Jean 보다는 일찍 일어나 1층에서 혼자 커피를 마셨다. 토요일 저녁을 즐기고 있는 한국의 아내와 통화를 하고 나서 뒷마당을 산책을 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Owen과 Jean이 부엌에 나와 있다. 식탁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니 정말 미국 집에 와 있는 게 실감이 닌다.
한국에서 준비한 계획 없이 몸만 온 미국이지만 막상 오고 나니 연락 오는 곳들이 있어서 생각보다 바쁠 것 같다.
- 아침 식사는 Owen과 Jean의 친구 모임에 함께 했다. 매주 토요일 빵집 Panera에서 모임을 한다는데 Owen은 나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했다. 2년 동안 미국의 많은 곳을 여행 다녔고 한국에서 Owen & Jean을 만나기 위해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나의 이야기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Owen과 Jean까지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최근 벌어진 미국 내 한국 노동자 지위에 관한 뉴스를 잘 알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한국인인 나에게 보여주기 부끄럽다고 했다.
- 점심때는 도서관 선생님이었던 할아버지 Arthur를 만나 단 둘이 Lake George로 향했다. 동네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그곳에서는 18세기에 있었던 전투 현장을 재연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는데 Arthur가 나와 같이 가려고 미리 챙겨둔 것이었다. 우리는 큰 호수 앞 넓은 잔디밭에서 당시의 모습 같은 실감 나는 전투 장면을 보며 쿠퍼스타운과 몬트리올에 관련된 얘기도 나눴다. Arthur는 내가 여태껏 잊지 못하고 미국으로 시간과 돈을 써가며 사람들을 만나러 온 것이 꽤나 마음 쓰이는 모양이었다. "너는 지금 마음이 두 곳으로 갈라져 있구나. 너의 그 딜레마는 너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해."
- 저녁 식사 때 집에 오니 Jean이 마당일을 하고 있었다. 이곳엔 한 달 넘게 비가 오지 않아서, 마당 군데군데 잔디가 노랗게 죽은 흔적이 있었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같이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흙을 퍼 나르는 등 마당일을 했다. 마당 일이라는 것이 한국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기도 하고, 내가 하지 않으면 Owen과 Jean이 해야 하게 될 테니 나는 기꺼이, 당연히, 열심히 해야 했다. 그리고 뒷마당 Deck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Jean은 요리하는 게 싫다고 했지만 나는 Jean이 해주는 감자, 콩 요리가 맘에 들었다. 조만간 H-mart에서 사 온 한국 음식을 먹어보자고 했더니 Jean이 "네가 음식 할 거니?"라며 매우 좋아했다.
미국에 오고 나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한 아저씨가 되었다. 이 집에 있으니 10시에 잠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난다. 한국에서는 5시간밖에 못 자서 늘 피곤한데 8시간을 자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몸이 아주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이곳에 있는 내내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행복과 그리움을 충전하려면 아플 시간도 없으니까.
혼자 거실에서 노트북을 펴 놓고 사진 정리를 하고 어제의 PPT를 만들고 있노라면 8시 조금 넘어서 Jean이 먼저 일어나 내려온다. "Good Morning!" Jean이 내려오면 나는 하던 일을 다 마치지 못해도 노트북을 덮고 Jean과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간다. 혼자 앉아서 PPT 만드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니까.
- 일요일 아침마다 30분 거리에 있는 교회를 간다는 Jean은 Owen이 깨기도 전에 혼자 집을 나선다. 잠시 후 1층으로 내려온 Owen은 자기는 단 한 번도 교회에 가본 적 없단다. (상호 존중이 대단한 노부부시다.) Owen은 나가서 아침이나 먹자며 Cracker Barrel로 데려갔다. 미국에 2년 살았고 여행도 숱하게 다녔지만 아침을 식당에 와서 돈 주고 사 먹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진정한 American Breakfast는 역시나 Too much, Too sweet 했다. (Momma's Pancake Breakfast) 팬케이크에 딸려 나온 작은 병에 담긴 Maple 시럽이 먹고 남자, 주머니에 넣어 집으로 챙겨가는 Owen이 살짝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 Owen은 뒷마당에 있던 벤치가 너무 낡아서 거의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나무판을 사서 재단하고, 페인트로 칠하고, 철로 된 부속은 녹을 닦아내는 등 할 일이 많다.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Lowe's, Home Depot에 가서 페인트와 나사 등등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각종 장비가 잘 차려진 지하실은 사실상 Owen의 목공 작업실이다. 퇴직하고 취미 삼아 배웠다기엔 너무가 근사한 Owen의 작업실. 나는 Jean과는 마당일을, Owen과는 목공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는 하지 못할 경험이다. 그런 기회를 준 그들에게 감사했다.
- 오늘 저녁은 한국에서부터 미리 약속하고 온 단 하나의 일정, 옆집에 사는 Lodico Family, Mark와 Sarah 그리고 꼬맹이들 Gavin& Grant와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한 날이다. 옛 동네를 다시 운전해서 가는데, 처음 이사 올 때의 설렘이 다시 되살아 나는 듯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집 앞에 차를 세우니 저녁을 준비하던 Sarah가 맨발로 나와서 나를 맞아준다. 아.. 이게 얼마만인가. Mark도 Sarah도 집도 다 그대로지만 아이들만 커졌다.
Mark는 예전에 우리가 그랬듯, 뒷마당에서 아이들과 야구게임을 준비했고 그릴로 굽는 BBQ와 Local 맥주를 내어주었다.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다. 우리가 살던 집에는 이웃과 교류가 거의 없는 중동에서 온 이민자 가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Mark는 더욱 우리 가족 생각이 난다고 했다. 감정적으로 건조한 서울에 살고 있는 나 역시 어찌 이들을 잊을 수 있을까?
만나고 있어도 만나고 싶던 그들과의 저녁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다.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우리는 또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Sarah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이, 나에게 파이를 선물로 들려주었다. 집에 가서 Owen과 Jean에게 선물로 받은 파이를 보여주며 '나에게 이런 친구가 미국 옆집에 살고 있었다'라며 한껏 자랑했다. 다시 만난 그들이, 나의 동네가 너무도 반가웠다. 나는 Owen의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셨다.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