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귀향 여섯째 날 (September 24th)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10월까지는 최근의 귀향이야기를 먼저 쓰고 11월부터 2022년의 미국이야기를 마저 이어 쓰려합니다.
"다시 찾은 미국 도서관, 이제는 내 자리가 아니야"에서 계속
미국에서 2년간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2년을 보낸 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잠시 돌아왔습니다.
"뉴욕 Home"에서 18일간 머물면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그날그날의 일들을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정리하곤 했습니다. 이 글은 아래 슬라이드에 담긴 것을 풀어쓴 것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오고 있다. 다행인 듯 아무 약속도 없는 날이다. Jean & Owen과 함께 지낸 것도 6일째다 보니 많은 것이 익숙하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혼자 내려마시고 어제의 사진을 정리하고 매일매일 한 페이지의 PPT로 만든다. 그러고 나서 Owen이 선물로 준 직소 퍼즐을 맞추고 있으면 Jean이 내려와 인사하고 함께 아침 뉴스를 본다. Jean은 'Morning Joe'에 나오는 Pablo의 스포츠 뉴스를 좋아하는데, 모르는 내용이 많지만 나도 열심히 본다. 뉴욕 풋볼 팀들(Giants, Jets)은 오랫동안 성적이 좋지 않아 놀림의 대상이다. 속상하지만 Pablo의 너스레는 나도 웃기긴 하다.
- 비가 오니 말라죽어가던 잔디도 땅을 파는 다람쥐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빗소리를 들으며 Owen과 지하실에서 이런저런 잡일을 시작했다. Owen은 차고 외부에 달린 번호 도어록이 망가졌다며 새로 샀다고 한다. 살짝 미심쩍게 느낀 내가 기존 도어록의 배터리를 갈아 끼고 비밀번호 세팅을 다시 하자 고장 난 줄 알았던 도어록이 제대로 움직인다. Owen이 멋쩍어하면서 매우 기뻐했다. '훗, 오늘 밥값은 했군.'
- Owen은 수요일마다 친구들과 점심을 나가서 먹는다 해서 Jean을 집에 홀로 두고 나는 Owen을 따라나섰다. 토요일에 보는 친구들은 아들(80년생)의 초등학교 때 야구팀 학부모 모임인데 지금 친구들은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도 안나는 Owen의 오래된 동네 친구라고 한다. 비 오는 날 Malta의 어느 식당에 들어서니 Ken, Steve, Larry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이 Diner는 회사 근처였는데도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곳이다.
사람들은 대도시도 아닌 이런 작은 동네까지 한국 사람이 오게 된 사연을 궁금해한다. 미국 이민국의 별난 행태 때문에 입국할 때 불편한 건 없었는지 여기 와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궁금해한다. 내가 단지 Owen을 만나기 위해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왔고 지금은 그의 집에서 마당일도 같이 하고 차고 문도 고쳐줬다고 하니 다음엔 자기 집으로도 좀 와달란다. 처음 먹어본, 한국 계란찜과 약간 비슷한 느낌의 퀴시(Quiche)와 '한약 맛'나는 토마토 수프가 맛있었다.
- 돌아오는 길에 Owen에게 'Bass Pro Shop'을 들르자고 했다. Bass Pro Shop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이름답게 낚시, 캠핑, 사냥용품을 파는 곳인데, 아웃도어 활동과 관련된 모든 것을 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크고 넓다. 그야말로 미국 남자 문화의 상징 같은 곳이다.
미국에 오기 몇 달 전, 우리 동네에 Bass Pro Shop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여전히 미국 이야기로만 채워진 페이스북에서 듣게 되었다. 크고 유명한 곳인 줄 알고는 있었지만 매장 개장 소식은 엄청나게 요란해서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왔던 터였다. 더구나 지난 일요일에 Mark는 여기는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남자들은 여기 한번 가면 몇 시간씩 못 나온다며 추천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용한 교외 지역(Suburb)에 이런 메이저 브랜드 매장이 생기는 건 여기가 웬만큼 사는 동네라는 방증이 되는 것이라 기분좋은 일이다. 꼬맹이들의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고. 집 근처 중심 상가에 떡하니 자리 잡은 Bass Pro Shop은 고속도로 I-87 멀리에서도 아주 잘 보이는, 우리 동네의 명실상부한 랜드마크가 되어 있었다. 페이스북의 요란함이 허명은 아닌듯하다.
Bass Pro는 주차장부터가 남다르다. 넓은 주차장에는 캠핑카와 보트를 진열되어 있어서 이것만 보는 데도 시간이 한참 든다. 월요일에 Ballston Lake에서 우리가 탔던 배는 3천만 원 정도 한다. Owen에게 "그렇게 비싼 건 아니네요?"라고 했더니, "이거 사면 차고도 새로 해야 하고 관리도 해야 하고, Deck도 있어야 해. 배 사려면 거의 집을 새로 사야 할걸?"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소리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 매장 천장이 엄청 높게 되어있고 입구에는 각종 동물의 박제가 전시되어 있다. 큰 야외 통나무 집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곳의 콘셉트는 사냥/낚시인데 단순히 낚시용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야외 활동에 관련된 모든 것을 파는 곳이다. 캠핑 가서 '먹을 것', 야외에서 '입을 것', 캠핑에서 아이와 '즐길 것'등을 팔기 때문에 그냥 모든 것이 있다고 보면 된다. Mark가 꼭 보라고 했던 총기 섹션도 굉장히 크다. 생각보다 총이 싼 편(권총은 10~20만원)인데 뉴욕은 총기 소유 규제가 좀 까다로운 편이라 총 없이 사는 사람도 많다.(Owen도 Mark도 자기 총은 없다고 했다.) 낚시 용품 섹션 옆에는 물고기가 유영하는 커다란 수족관까지 있어서 꼬마들의 눈길을 끈다. 이래저래 미국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이 큰 매장에 다 모여있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 동네 이름이 쓰인(정확히는 지점명) 티셔츠를 여러 개 샀다. 내가 미국에 온 것을 기념하는 것 중에 진짜 미국을, 미국 싸나이를 대표하는 것이 이것만 한 게 있을까? 커다란 배스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어주면 앞으로 미국애서 사람들 만날 때에 얘깃거리도 생기고 재밌을 것 같다. $10짜리 빨간 모자도 하나 집었더니 Owen이 잘 어울린다며 피식 웃어준다.
- 집에 돌아와, 하루 일과 중의 하나인 4시 티타임에 다 함께 모였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영국식 홍차와 쿠키를 먹으며, Jean에게 Bass Pro Shop에서 사 온 티셔츠 자랑을 했다. Jean은 가 본 적은 없다지만 오픈할 때 떠들썩했던 건 알고 있다면서 '너는 한국 살면서 왜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니?'라고 묻는다. 'Jean, 페이스북 보면 알죠. 나는 아저씨라서 페이스북을 해요.' 내 페이스북에 가득한 뉴욕 관련 피드들을 보여주었다.
Jean이 내가 아침마다 뭘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해서 내가 매일 아침마다 만들고 있는 '미국 귀향 PPT'를 보여주었다. "하루에 한 장, 어제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써요. 내일 아침엔 Bass Pro 이야기를 쓰게 되겠네요." Jean은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것 같다. 별것 아닌 얘기에도 궁금해하고 관심 가져주는 게 고맙다.
나의 미국 귀향 이야기는 어느덧 절반을 항해 가고 있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