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귀향 일곱, 여덟째 날 (Sep.25, 26th)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10월까지는 최근의 귀향이야기를 먼저 쓰고 11월부터 2022년의 미국이야기를 마저 이어 쓰려합니다.
"미국 '싸나이'는 Bass Pro Shop으로 오라!"에서 계속
미국에서 2년간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2년을 보낸 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잠시 돌아왔습니다.
"뉴욕 Home"에서 18일간 머물면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그날그날의 일들을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정리하곤 했습니다. 이 글은 아래 슬라이드에 담긴 것을 풀어쓴 것입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온다. 그동안 오지 않던 비가 한 번에 쏟아지는 느낌이다. 이른 아침 나만 깨어있는 집.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왜냐면... 내가 가진 시간의 절반이 지나고 있어서... 또다시 헤어지게 될 시간 역시 다가오고 있어서다. 미리미리 모든 것을 기록해 두자.
Owen이 선물해 준 직소 퍼즐(Jigsaw Puzzle)을 며칠에 걸쳐 오늘 마침내 완성했다. 동그란 원 모양인데 커다란 용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완성된 퍼즐을 보기 좋은 위치에 놓고 Jean과 Owen이 침실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깜짝 놀라길 바라며.
- 이틀 전 도서관에 나갔을 때 내가 알고 있던 자원봉사 선생님들 여럿이 이제는 더 이상 도서관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 첫 도서관 선생님인 Judy에게는 따로 연락을 해서 만나기로 했다. 동네 카페 Mochlisa에서 2년 만에 다시 만난 Judy는 예전 그대로 인 듯했지만 부모님 또래의 어른들에게서 보이는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의 소중한 미국 어르신들의 시간이 점점 지나가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모두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는 지금껏 만든 미국 귀향 PPT를 보여주며 Owen & Jean과 내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 자랑했다. 그리고 Judy를 위해서 스타벅스에서 파는 '서울'컵을 준비했는데 한국전 참전용사의 딸인 Judy는 함께 사진을 찍을 때도 컵을 들고 찍을 만큼 내 선물을 정말 맘에 들어했다. 다음 주에 한 번쯤 더 보기로 하고 짧은 만남을 마쳤다.
- Owen은 내가 미국에 오자마자 나랑 같이 가고 싶은 식당 목록을 적어 놓고는 하나씩 지워나가는 재미를 붙였는데 문제는 어떤 것을 먼저 할지 고르기 힘들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번호를 적어 놓고 주사위를 던져요.'라고 했더니 아주 스마트하다며 좋아한다. 그렇게 정해진 오늘의 점심은 한국 라면이다. 매운 음식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Owen과 Jean을 위해 설렁탕면과 짜장면을 준비해서 만드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담아서 서빙을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라면을 먹어본 적이 없는 집이라 적당히 담아줄 그릇이 없다. 결국 널찍한 파스타 그릇에 담아냈는데 그 사이에 면이 불고 퍼져서 진짜 보기 싫게 되었다. 내 성의를 봐서 Owen과 Jean이 참고 먹어주진 했지만 대부분은 내가 먹어치워야 했고 한국 집에서도 종종 음식을 하는 나로서는 살짝 자존심 구기는 일이었다. 다음엔 꼭 만회를 해야 한다.
- 아침에 퍼즐이 완성된 것을 본 Owen은 한국에 가져갈 수 있게 작업을 좀 하자며 나를 지하로 데려갔다. 지하실에 있는 Owen의 목공실은 전기톱, 드릴 등 관련된 각종 장비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곳이다. 한쪽에 쌓인 적당한 크기의 나무판을 고르더니 그 위에 내가 맞춘 퍼즐을 풀로 봍인다. 그러더니 나무판을 퍼즐 모양에 맞게 갈아내야 한다며 '드릴 프레스' 쓰는 법을 알려주면서 직접 해보란다. 나무 타는 듯한 냄새가 긴장되고 자욱한 나무 먼지는 생전 해본 적 없는 경험이다. 눈이 동그래져서 신기해하는 내가 Owen은 그저 신기한가 보다. 그는 나무 먼지 뒤집어쓰고 있는 내 모습을 사진 찍어주었다.
하루 중 혼자 있는 시간은 이른 아침뿐이라 일어나서 커피 한잔하고 어제의 PPT나 글쓰기를 바로 시작한다. 시간이 많지 않아 집중해서 하다 보면 Owen과 Jean이 일어나서 내려오는데 내가 타자 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곤 했다. 이렇게 빠르게 칠 수 있냐고... 사실 그리 빠른 편은 아니지만 그들의 반응이 재밌어서 일부러 막 소리를 내보기도 한다.
- 오래간만에 비가 그쳤다. Owen은 마당에 있는 벤치 하나를 고쳐야 한다고 했다. 말이 고치는 것이지 나무가 다 썩어서 거의 새로 만드는 수준이다. 오전 내내 벤치에서 썩은 나무를 떼어내고 새 나무판을 재단해서 자르고 페인트 칠을 하는 등 많은 일을 했다. 벤치 일이 끝나고는 마당에 있는 나무에 흙도 좀 채우고 Jean이 싫어하는 다람쥐 구멍도 메꾸고 새로 씨 뿌린 잔디에 물도 주고... 비가 그치니 할 일이 많아졌다.
- 도서관은 분기에 한 번씩 중고 책을 판매하는 행사를 한다. 책 한 권당 대개 $2 수준으로 파는 것이라 정말 저렴하기 때문에 Owen은 꼭 가야 한다고 했다. 미국에 살 때 나도 종종 오곤 했던 행사라 어색하진 않지만 사실 영어로 된 교양서적을 읽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Owen이 2층 대강당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 나는 한국어로 된 어린이 책을 발견했다. 참으로 반갑다. 이건 아마도 이곳에 사는 어느 한국 가족이 아이가 크면서 통째로 내놓은 것일 테다. 미국에선 한국어로 된 어린이 책을 구하는 게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이렇게 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반가운 배려다. 한아름 읽을 책을 찾아온 Owen에 비해 나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지하실 한편에 있는 Owen의 Reading Collection을 구경하며 남은 오후를 보냈다.
- 저녁엔 함께 일하던 파트너 Ushik를 만났다. 내가 떠난 사이 이 친구도 알바니를 떠나서 뉴욕시티 근방 오피스에 있는 부서로 자리를 옮긴 상태라 쉽게 만날 수 있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근처에 회의가 생기는 바람에 저녁을 같이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예전에 함께 식사했던 장소(Crossgates Mall)에서 만나 예전과 똑같은 식사를 하고 근황을 나눴다. Ushik은 회의가 있어서 오늘 나를 볼 수 있었지만 집에 가려면 3시간은 운전해야 해서 나를 만나러 와준 사실이 고마웠다. Ushik에게도 스타벅스 '서울'컵을 선물했는데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을 잊지 않고 조만간 한국에 꼭 갈 거라면서 그때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주차장에서 서로를 안아주며 헤어졌다.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