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뉴욕 양키스, Gavin의 적시타

미국 귀향 아홉, 열 번째 날 (Sep. 27, 28th)

by Clifton Parker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10월까지는 최근의 귀향이야기를 먼저 쓰고 11월부터 2022년의 미국이야기를 마저 이어 쓰려합니다.


"2년 만의 미국귀향, 다시 찾은 일상과 친구들"에서 계속


미국에서 2년간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2년을 보낸 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잠시 돌아왔습니다.
"뉴욕 Home"에서 18일간 머물면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그날그날의 일들을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정리하곤 했습니다. 이 글은 아래 슬라이드에 담긴 것을 풀어쓴 것입니다.


아홉 번째 날 이야기

오늘은 하루 종일 약속이 있다. 사실 내일도 하루 종일 약속이 있는데... 아무 계획 없이 온 미국이지만 막상 와보니 만날 사람도 많고 바쁘기 그지없다. 집을 자주 비우니 Owen과 Jean에게도 좀 미안하다. 마치 명절에 집에 돌아와서는 친구들만 만나러 다니는 기분이다. 다음 주엔 가급적이면 집에 있으면서 Owen & Jean과 시간을 보내야겠다.

(사진) 미국 귀향 아홉 번째 이야기 - 나를 포함해서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5년째 줌 미팅을 하는 Arthur는 Dora을 직접 보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Arthur와는 미국에 살 때 도서관 ELL Conversaion Club에서 만났다. 그는 여든이 다 디 되어가는 할아버지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학교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 선생님으로 살아왔다. 그러면서 이집트, 멕시코, 중국 등 해외생활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때 만난 사람들과 한 달에 한 번씩 Zoom 미팅을 하고 있다. 나 역시 미국을 떠나게 되면서 Arthur의 zoom 미팅에 합류하여 서로 소식을 공유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중요하게 만나야 하는 사람 중 하나였으며, 내 처지와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Zoom 미팅 멤버 중에는 유일한 멕시코 출신인 Dora가 있다. 그녀는 누군가의 소개로 이 모임에 들어왔지만, 정작 Arthur조차도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Dora는 몇 년 전 미국으로 이민 와서 현재는 뉴저지에 살고 있는데, Arthur는 이번에 내가 뉴욕으로 오면서 함께 만나면 좋겠다고 일정을 잡았다. 우리는 양쪽의 중간 지점인 우드버리 아웃렛(Woodbury Outlet)에서 만나기로 했고, 고속도로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Arthur와 그의 아내 Chen을 내 차로 모시고 두 시간 거리의 길에 함께 나섰다.


뉴욕시티를 여행으로 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들르는 유명한 & 거대한 쇼핑몰인 우드버리 아웃렛은 엄청난 인파로 바글바글하다. 자본주의 지역답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빠른 주차 $12'라는 표지판을 보았는데 Arthur는 나한테 '인생을 복잡하게 살지 말라'면서 지갑에서 달러 몇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린넨 셔츠나 하나 사야겠다는 Arthur는 아무리 봐도 쇼핑을 하러 온 사람이 아니었다. '이건 너무 비싸. 이런 거 동네에서 $20면 사는 거다'라던가, '난 로고가 크게 박힌 건 싫다. 내 옷이 광고판이 아니잖아.'라는 둥 구경하면서도 사지 않을 이유만 대고 있다. 나름 귀여우신 할아버지다. 나 역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짧은 구경을 마치고 푸드코트에서 Dora와 남편 Waldo를 만났다. Zoom에서 봤던 그대로라 만남이 어색하지는 않다. 17살이 되어 학교 치어팀에서 활동한다는 Dora의 큰 딸과, 올해 13살(Thir'teen')이 되어 명실상부 Teenager로 말 안 듣기 1등을 하고 있는 세은이의 이야기로 금세 화기애애 해졌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세상은 참 좁기도 하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 멕시코 아줌마를 인터넷에서 알게 되고 뉴욕에서 만나는 일이 벌어지다니. 생각해 보면 기막힌 인연이다.

그리고 Dora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겐 '나의 진짜 집이 어디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었고 그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은 온전하지 못하고 큰 아쉬움을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미국 사람 Arthur는 중국을 여전히 잊지 못했고, 중국 사람 Chen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Dora는 뉴저지에서 만족하지만 멕시코의 가족들은 항상 그리운 존재이다. 그렇다면 나의 집은 서울인가? 뉴욕인가? 내 마음은 어디에 있나? 아마 많은 이민자들이 이런 답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을 것이다.


Dora와의 길지 않은 만남이 아쉬웠지만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Chen & Arthur와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생각이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그들을 집에 내려다 주고 다음 주에 또 한 번의 만남을 약속하고 집에 돌아왔다. Owen과 Jean이 나와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 번째 날 이야기

일요일이다. Jean은 9시에 교회를 가고 Owen은 게으름을 피우는 날이다. 사실 미국에서 가을/겨울의 일요일은 남자들에겐 풋볼 휴일이나 마찬가지이긴 하다. 당당하게 늘어지는 날. 오늘 같은 날은 Owen과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서 TV에서 풋볼이나 보는 게 딱 맞겠지만 정해둔 약속이 있다. 잔디에 물을 주고 다람쥐가 새로 파 놓은 구멍 몇 개를 메꾸고 나서 집을 나섰다.

(사진) 미국 귀향 열 번째 이야기 - 초등 입학 전부터 시작되는 리틀 야구는 실력에 따라 월반되기도 한다. 야구 센스가 좋은 Gavin은 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다.

- 전(前) 옆집 Mark는 열렬한 풋볼 팬이자 야구팬이다. 풋볼팀 Buffalo Bills와 야구팀 Newyork Yankkes 게임을 빼놓지 않고 보는 Mark가 두 경기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이 소중한 일요일에,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다. "Gavin의 리틀 야구 게임." Mark를 닮아서인지 아주 어려서부터 야구광이 된 첫째 아들 Gavin의 리틀 야구 리그 정기전이 있는 날이라고 한다.


지난 일요일 저녁 식사 때 나왔던 이 얘기는 내가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권유였다. 왜냐면 이 또한 우리가 함께 하던 추억을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2~3년 전 Gavin은 학교에 가기 전부터 야구팀에 있었는데 내가 두어 번 구경 갔던 적이 있다. 고맙게도 Mark와 Sarah는 나에게 미국의 일상을 보여주고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오늘도 그러했다. 경기 1시간 전에 Mark의 도착했더니 Sarah는 이미 떠나고 없고, Mark와 Gavin & Grant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Mark의 픽업트럭에 탔다. 경기장은 40분쯤 떨어진 곳에 있다. 초등 1학년때까지만 해도 동네 야구장에서 게임을 했었는데 이제 좀 컸다고 멀리 원정을 간다.


미국에서 리틀 야구는 단순히 아이들의 경기가 아니다. 한국 같은 아파트 단지가 아닌 띄엄띄엄한 교외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서로의 친구를 찾는 곳이고 같은 나이 또래 아이를 가진 부모들의 사교장이다. (Private Boat 투어를 했던 Owen과 Jean의 친구 모임이 바로 올해 43살이 된 아들의 초등학교 시절 야구팀에서 만난 부모들의 모임이다. 아이들은 지금은 중년의 어른이 되어 흩어지고 멀어졌지만 부모들은 고향에 남아 수십 년 친구로 남았다.)

야구장엔 캐치볼로 몸을 푸는 아이들이 있고 펜스 옆으로는 어른들이 서로 인사하기 바쁘다. 형, 오빠를 따라온 아주 어린 꼬맹이들은 야구에 큰 관심이 없고 서로 어울려 뛰논다. Mark는 보는 사람마다 나를 소개했다. '한국에서 온 우리 옆집, 2년 만에 우리를 보러 잠깐 왔다.' 그런데 그 속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며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다. Gavin의 외할머니, 친할머니가 미국에 다시 찾아와 줘서 고맙단다. 2년 전에 스치듯 봤던 나를 기억해 준 게 내가 더 고마웠다.


리틀 야구에서는 아이들 특성상 수비를 온전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공수 모두 규칙이 일반 야구와는 다르게 되어있다. 그렇게 규칙상으로 배려해 주어도 폭투, 실책 같은 것이 남발할 수밖에 없어서 잘하다가도 우르르 무너지기 일쑤이고 어른이 보기에 경기 자체는 긴장감이 좀 떨어진다. 그래서 Mark도 승패 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하는 걸 보면 아이들도 코치(아빠들이 품앗이하거나 비용을 내고 고용)도 굉장히 진지하다. 확실히 10~12세 팀이라 조금은 체계가 갖춰진 편인 듯했다.

경기장 주변은 단풍이 바람에 휘날리기 시작하는데 아이들 야구하는 모습이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다. 그 속에 내가 Mark, Sarah와 같이 앉아서 함께 "go Gavin"을 외치고, 할머니들에게 Gavin의 순서가 되면 알려드리고, 다른 아빠들과 한국에 대한 담소를 나누고 있으면 내가 정말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볼 수 없겠지. 아이들 뒤편으로 흩날리는 단풍잎에 나는 잠시 넋을 잃었다.


1시간 30분의 경기(어린아이들이라 최대 경기 시간이 정해져 있음)가 끝나고 Gavin이 속한 Halfmoon Mariners가 20-4으로 승리했다. 오늘 경기에서 Gavin은 2타점 2루타를 쳤고 유격수로 나서서 대량 실점을 막는 중요한 송구를 해냈다. Mark 말로는, Gavin이 나이 또래에 비해 야구 실력이 좋아서 가끔 투수를 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기회가 없어서 아쉬워하는 것 같아 보인단다.

그러고 보니 Gavin이 이 팀에서 가장 작고 나이가 어리다. 나중에 정말 프로 선수 되는 거 아니냐고 하니 Sarah가 크게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이 분야도 제대로 하려면 만만하지 않아. 이 정도 하는 걸로 그 정도 꿈을 갖기는 좀 이르지. 그냥 추억 삼아하는 거야." 그래. 적어도 오늘의 승리는 좋은 추억이 되었네.

(사진) 작년 리틀 야구 리그 월드시리즈를 관람한 Gavin과 Grant. 펜실베니아 윌리엄스포트는 Sarah의 친정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Pic. by M. Lodico)

오늘의 수훈 선수 Gavin과 동생 Grant를 태우고 Mark가 좋아하는 시골길로 되돌아간다. 아이들은 이미 익숙한 듯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알고 있다.

Mark가 세은이도 주말에 이런 활동을 하느냐고 물어서, "한국 애들은 주말에도 학원을 가요. 친구들이 다 학원에 있기 때문이에요. 세은이는 토요일 아침마다 세 시간씩 과학 공부를 해요."라고 하니 뒷좌석의 꼬맹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러니 Mark가 애들을 살짝 놀리려고 한다. "너네 엄마말 안 듣고 서로 싸우고 그러면, 아저씨 한국 돌아갈 때 같이 가게 해야겠다. 토요일에 과학공부 좀 해볼래?" Gavin이 정말 기겁을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Grant의 top10 야구 카드도 구경하고 한국과 미국의 야구 문화도 비교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경기장에선 의젓한 선수였던 Gavin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꼬맹이가 되어 동생이랑 투닥대며 마당을 뛰어다닌다.

꼬맹이들이 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 차고 앞에 Mark, Sarah와 함께 자라 잡고 앉아서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시간을 아쉬워했다. 나는 마지막 식사를 약속하고 또 한 번 가족의 추억에 나를 초대해 준 것에 감사해했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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