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귀향 열하나, 둘, 세 번째 날 (Sep 29, 30 & Oct 1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10월까지는 최근의 귀향이야기를 먼저 쓰고 11월부터 2022년의 미국이야기를 마저 이어 쓰려합니다.
"미래의 뉴욕 양키스, Gavin의 적시타"에서 계속
미국에서 2년간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2년을 보낸 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잠시 돌아왔습니다.
"뉴욕 Home"에서 18일간 머물면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그날그날의 일들을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정리하곤 했습니다. 이 글은 아래 슬라이드에 담긴 것을 풀어쓴 것입니다.
오랜만에 미국에 돌아와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꽤나 바빴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들 환영해주나 싶어서 반갑고 고마운데, 또 한편으로는 그 시간에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Jean과 Owen이 마음 쓰이기도 했다. 그들의 집에서 16일을 보내기로 했고 무척 긴 시간 같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날짜를 세어보니 아쉽고 초조해진 마음이 들어, 오늘은 정말 아무 일도 없이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 날씨가 꽤나 추워졌다.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기에 약간 쌀쌀한 느낌. Owen은 아침을 과일이나 빵을 주로 먹는데 오트밀을 준비하고 있다. 냄비에 'Quaker Oats'를 좀 담고 사과 약간에 마른 살구나 건포도도 조금 넣은 뒤 우유를 부어 죽처럼 걸쭉하게 끓여내면 완성이다. 우유랑 곡류가 맛이 담백해서 먹을 만하고 날이 추우니 따뜻해서 좋다. 이민자는 미국에서 오래 살아도 보통의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알 방법이 없는데 이렇게 호기심이 해결된다.
- 오후에 Jean은 '아무 할 일 없는 나'에게 사라토가 스프링스로 같이 가자고 한다. 물을 좀 받아와야 하겠다는 것이다. 30분 거리에 있는 사라토가 스프링스는 오래전부터 좋은 물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물은 특유의 파란 병에 담겨서 보통 비싼 가격에 팔린다. 한국에서라면 '에비앙'급이랄까?
Jean이 지하실에 잔뜩 모아둔 1 갤런짜리 빈 생수병들을 차에 싣고 Owen만 집에 남겨두고 출발한다. 이건 내가 어릴 때 약수터에 물 받으러 가는 우리 집 모습과 너무 똑같고 Owen이 이런 일로 Jean이랑 같이 다니지 않으려고 하는 것조차 한국 집과 똑같아서 정말 웃긴다.
Jean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사라토가 스프링스 주립공원의 입장료를 받지 않는 어느 구역 한편에 도착했다. 물을 받아갈 수 있는 샘터가 주차장 바로 옆에 붙어 있다. Jean이 재빠르게 물병을 꺼내서 물을 받기 시작한다. 우리 말고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받아갈 정도로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사라토가 살면 그럴 법도 하지)
이 샘터엔 물을 받을 수 있는 수도꼭지가 4개 설치되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아무도 받지 않는다. 내가 그쪽을 쳐다보고 있으니 Jean이 "저건 맛이 끔찍하지. 그래서 아무도 안 받아."라는데 그러니까 더 궁금하다. 손으로 받아 살짝 맛을 보니 철분이 섞여있는 비릿한 맛이다. 찌푸린 내 얼굴을 보고 Jean와 옆자리 아저씨가 씩 하며 웃는다. 물을 다 받고 돌아오는 길에, 평일이라 주차비가 무료인 시내 공원을 들러 Jean과 오붓한 데이트를 즐겼다.
- 오늘 저녁은 한국 음식이다. 라면으로 망한 내 이미지를 좀 복원해야 했기에... Trader Joe's에서 산 냉동 김밥, Jean이 어디선가 집어온 '닭고기 불고기' 그리고 H-mart에서 산 미역국을 했다. 비슷한 듯하면서 묘하게 다른 Americanized Korean Food들은 우리의 저녁 시간에 가벼운 웃음을 주었다.
오늘은 1주일 전에 재회했던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만나는 날이다. 3주 가까이 휴가를 냈지만 오며 가며 시간을 써야 하니 실제 여기서 지내는 건 16일뿐. 그동안 쌓인 그리움을 풀어내기엔 너무 부족한 시간이다. 함께 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 간다.
- Judy를 커피숍에서 다시 한번 만나기로 했다. Judy는 도서관 수업에 더 이상 나가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한국 이민자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를 불러주었다. 나는 Judy가 여전히 활발하게 생활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모습이 안심되었다. Judy가 계속 이렇게만 지내준다면 우리는 반드시 또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 DyAnn은 어제 세은이한테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며 오후에 월마트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 메시지는 나도 받았는데 미국에서 사 오라는 선물 목록이고 전부 애들 수준의 과자뿐이다. 비싼 것도 아니고 정말 별것도 아닌 여기 애들이 흔하게 먹는 그런 과자들. 심지어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도 있다. DyAnn은 그게 너무 재밌나 보다. 미국에서 받고 싶은 선물이 고작 정크푸드뿐이라니.
DyAnn과 미국에서 제일 큰 월마트 매장(@Crossgates Mall, NY)에 가서 20여 개에 달하는 세은이의 목록을 채워나갔다. 하나하나 담을 때마다 왜 이런 걸 사야 하냐며 웃겨 죽는 모습이다. 그리고 모든 목록을 다 채웠을 때 DyAnn은 "내가 세은이랑 Jenny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야. 나한테도 기회를 줘야지."라며 자기가 결재하고 싶다고 한다. 세은이에게 꼭 Jenny와 나눠먹으라면서. 아...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다니...
우리는 가까운 장소로 옮겨 마지막 저녁식사를 했다. DyAnn은 멀지 않은 언젠가 꼭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였고 DyAnn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이곳을 영원히 잊을 수 없고 Home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했다. 저녁까지 직접 결재하고 나서 밖으로 나와 DyAnn은 나를 안아주었다. 힘겹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난 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지고 있었다. 헤어짐이 아쉬워 차마 돌아보지 못하는 DyAnn의 마음이 느껴져서 나는 한동안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 도서관 저녁 ELL 수업도 마지막으로 들렀다. Lorelei와 Greg에게 다시 오겠다고 했으니까. 늘 그렇듯 그들은 그 자리에 있다. Lorelei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5분 정도 나에게 시간을 주었다. 내가 어떻게 이민생활을 했고 이곳에서 어떤 것을 어떻게 얻어갔으며 왜 다시 오게 되었는지... 모두에게 같은 경험이 일어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겪었던 '미국인의 정'을 다른 이민자들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Lorelei과 Greg과는 함께 사진을 찍고, 우리는 마치 댜음주에라도 다시 만날 사람들처럼 가볍게 헤어졌다.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 "I'm Home", 집에 돌아오니 언제나처럼 Owen과 Jean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순간도 이제 몇 번 남지 않았다. 내 마음속 아쉬움이 아직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으면...
오늘은 아무 약속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벌려놓은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벤치를 고쳐야 하고, 부엌 캐비닛도 손 봐야 하고, 마당의 구멍들도 메꾸고, 마당 흙도 처리하고, 차고에 쌓인 처치곤란한 대형 쓰레기도 버리자고 해야겠다. 내가 하지 않으면 나중에 Owen과 Jean이 하게 된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하고 가야만 한다. 집에 있는 날이지만 마음은 좀 바쁘다.
- 다람쥐가 마당에 파는 구멍은 막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게 Owen의 결론이었다. 구멍 순찰 대신 Owen의 오트밀로 아침을 시작했다. 뒷마당 Deck에 설치한 모이통에 새들이 날아오면 Jean은 모든 것을 멈추고 바라보고 있었다. 'My Birds'라고 부를 만큼 Jean이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모이통도 다 떨어지기 전에 채워놔야 한다.
- 매주 수요일은 Owen이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 날이라 함께 집을 나섰다. 오늘은 동네에서 꽤나 고급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식당으로 왔다. 여기에 살 때, 아내와 보기만 하고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곳. 이렇게 Owen 덕에 결국 와보기는 하네. 생각해 보면 Owen이 친구들과 이렇게 매주 만남을 갖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목적 없이 매주 만날 수 있는 누군가가 내 주변에 있는가? 없다. 과거에도 없고, 지금도 없다. 내 노후의 삶이 Owen & Jean처럼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See you again someday'로 친구분들과도 작별을 고했다.
- 점심을 먹고 오후에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마당일을 했다. 날이 추워지니 마당 스프링클러에 물을 빼야 한다. 나 같은 초보 이민자는 매년 겨울 사람을 불러서 Blowing 서비스를 받았지만, Owen 정도의 미국 할아버지는 이 정도쯤은 이미 개인 장비(Air Compressor)가 있다. 마당에 묻힌 여러 개의 제어기를 찾아서 고압 공기를 수차례 불어넣는 것으로 작업을 마쳤다.
오늘 저녁은 Owen의 식사 리스트의 1번으로 있던 BBQ를 하기로 했다. BBQ 식사를 많이 미루기는 했지만 이건 미국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상징적 음식이기 때문에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Owen은 밖에서 BBQ를 굽고 Jean은 옥수수를 삶아서 풍요로운 저녁식사가 되었다. 식사가 풍족하고 특별해질수록 떠나야 할 순간이 가까워지는 것이기에 즐겁다가도 순간순간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 저녁을 먹고 나서 우리 셋은 여느 날처럼 거실 소파에 누워 앉아 아마존 프라임에서 "Kingdom (Stephen Fry 주연의 20년 전 영국 드라마)"을 보았다. 오래된 드라마이기 때문에 결론은 이미 나와있지만, 우리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스포일러를 검색하지 않고 매일매일 다음 편을 기다렸다. Jean과 나는 자꾸만 나오던 짜증 나는 광고 CM송을 따라 부르며 오히려 즐기곤 했다.
아직 보지 않은 Kingdom은 에피소드가 많이 남았지만 나의 시간은 얼마 없기 때문에 광고 때문에 짜증 낼 시간 같은 건 없기 때문이었다.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