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귀향 다섯째 날 (September 23rd)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10월까지는 최근의 귀향이야기를 먼저 쓰고 11월부터 2022년의 미국이야기를 마저 이어 쓰려합니다.
"선물같이 초대받은 미국 호수 Private 투어"에서 계속
미국에서 2년간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2년을 보낸 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잠시 돌아왔습니다.
"뉴욕 Home"에서 18일간 머물면서,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그날그날의 일들을 한 장의 슬라이드로 정리하곤 했습니다. 이 글은 아래 슬라이드에 담긴 것을 풀어쓴 것입니다.
아침부터 비가 올 징조가 가득했다. 오늘은 Jean이 마당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화요일은 Jean이 교회를 가는 날이다. 오늘은 아침 & 저녁에 도서관 수업이 있는 날이다. 내 미국 생활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던 이민자를 위한 도서관 수업을 다시 오게 되니 정말 감개무량하다. 아침에는 시민권 수업, 저녁에는 영어회화 수업을 들으러 간다. 깜짝 놀라주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리 연락하지는 않았다. Owen은 사람들이 많이 바뀌어서 예전 같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Owen도 Jean도 더 이상 도서관에 나가지 않는단다. 그래도 가봐야지, 얼마나 달라져 있는 걸까? 다들 그대로 있을까?
- 2년 만에 찾아온 도서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니 예전의 기분이 되살아난다. 도서관에 들어가 한번 쓱 둘어보았다. 다 그대로지만 그대로 몇 가지 바뀐 점도 눈에 띈다. 그전과 마찬가지로 1층 회의실에 가보니 아침부터 미국 역사를 공부하러 온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지만 선생님 Bob을 포함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그때와 같은 자리에 앉아 미국 독립역사를 듣는다. 다 똑같지만 뭔가 다르다. 뭘까...
아, 그렇구나. 사람들이 다르구나. 함께하는 사람들이 다르니 이젠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나는 이제 이 동네 사람이 아니고 '시골마을까지 찾아온 이상한 관광객'일 뿐이라는 걸. 그래, 추억을 찾는 여행은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이곳은 이제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 이곳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곳이었지만 이젠 정말 내가 떠날 시점인 것 같다. 안녕.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Jean의 부탁이 생각나서 도서관 입구에서 잠시 멈췄다. 도서관은 얼마 전 입구를 신식 자동문으로 바꾸면서 그 앞 바닥에 깔린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을 다른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Jean은 이것 때문에 자기의 이름이 사라졌다며 너무 싫다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입구 오른쪽 한편에 놓인 Jean과 Owen의 벽돌을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 Jean이 도서관에 왔을 때 위치를 찾을 수 있게 사진을 찍어두었다.
- 집에 돌아오니 Jean은 운동을 가고 Owen만 집에 있다. 내가 온 첫날, Owen은 나와 함께 가고 싶은 식당 목록을 적어두었는데 점심으로 그중 하나인 근처 일식당으로 향했다. 오래전에 Owen과 왔던 곳이라 나름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Americanized-Japanese 음식으로 추억을 맛보면서 도서관 수업은 나에게 이제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는 말을 했다. 이 수업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있을 자리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Owen과 Jean도 내가 미국을 떠날 무렵 도서관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 사회(정확히는 정부 방침)가 변하고 있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기여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쉽지만 시간이,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는 집에 돌아와 마당일, 목공일을 마저 하고 집안에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Transfer Station(쓰레기 하치장)에 버리러 다녀왔다. 65세 이상은 할인이 되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매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서비스는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전혀 몰랐던 일이다. 처음 봐서 신기한데, 한국에선 30년 전쯤 전에 있던 모습이라 익숙하기도 하다. 미국인들이 아무렇게나 물건을 버린다고는 하지만 여기서는 나름 분리수거를 세분화해서 버리게 되어있어서 사실상 한국의 생활과 별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 오늘 저녁식사는 세은이 영어 과외 선생님인 DyAnn과 함께 한다. 우리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Zoom으로 과외를 계속하고 있어서 매주 짧게라도 연락을 하고 있었기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다. 세은이의 오랜 친구 헤이니 역시도 여전히 DyAnn과 과외를 하고 있는데, 헤이니 아빠가 내가 미국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선 DyAnn에게 보내 주고 싶은 선물을 배송 부탁했기에 뉴욕까지 고이 싸들고 온 상태였다.
DyAnn 과의 저녁 식사는 아내가 좋아하던 쌀국숫집이다. 다시 만난 DyAnn은 나에게 2년 동안 변한 게 하나도 없다며 변함없이 호쾌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근황을 묻고, 미국 와서 무얼 했는지, 세은이와 헤이니가 커가는 모습이 얼마나 웃긴 일인지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식사를 다 마치고 우리의 & 헤이니네의 선물을 전달했는데 DyAnn은 예상 밖이었던지 짐짓 당황하더니 크게 기뻐했다. 디저트인 베트남식 연 유 커피까지 이날 식사는 DyAnn이 냈다. 우리는 다음 주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 오전 시민권 수업에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저녁 7시 ELL 수업에는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업이라기보다는 그룹 대화 시간인 ELL Conversation Club엔 세명의 선생님 Arthur, Lorelei, Greg이 오랜 시간 함께 했었다. 지난 토요일에 만났던 Arthur는 자기는 더 이상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Lorelei와 Greg은 여전히 도서관에 있을 거라고 했기 때문에 가야 했다. 미국에 다시 왔으니까 꼭 만나야지.
살짝 늦은 시간에 도착한 도서관 2층 대회의실에선 여전히 그때 그 모습대로 이민자들과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6~10명씩 그룹 지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2년 전 모습 그대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는 나를 발견한 Lorelei가 순간 얼어붙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Hi, How are you?" 인사를 하고 씩 웃으며 의자를 가져와 그녀의 옆에 앉았다. 맞은편 그룹에서 Greg가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어준다. "Welcome back"
Lorelei는 모두에게 나를 소개했다. '2년간 살다가 한국에 돌아갔고, 39개 주를 여행했고, 모든 여행마다 PPT를 만들어 이야기를 공유했고, 이웃들에게 이사편지를 돌렸던 사람'. 나는 모두에게 '집에 돌아온 졸업생'을 환영해 주어 반갑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바라고 그리워하던 추억 속으로 들어온 순간이었다.
'대화 수업'이지만 최대한 말을 아끼고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이민자들의 팍팍한 삶도 그대로 있고, 성급한 마음에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들도 그대로, Lorelei의 침착함도 그대로였다. 내가 기억하던 좋은 모습도 그대로였고,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아쉬운 모습도 그대로였다. 이 수업은 이곳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것이기에 당연한 모습이다. 지금 사람들의 모습과 2년 전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 가고 난 뒤, Lorelei와 Greg과 한동안 얘기를 나눴다. 왜 왔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Arthur는, Owen과 Jean은 어떤지 등등 얘기는 끝이 없다. Lorelei는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다고 헸다. "너는 반드시 다시 올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요. 도서관 친구들을 하루도 잊지 않았어요."
우리는 다음 주 수업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 집에 돌아오니 Owen과 Jean이 거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I'm Home."
이 시간에 집에 오니 느껴지는 기운이 한국 부모님 집에 찾아갔을 때와 매우 비슷하다. 내가 없었다면 이 시간에 Owen과 Jean은 그저 조용히 TV만 보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이 집에 와 있는 만큼 그들에게 즐거움과 새로움의 '방향제'가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DyAnn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 찾은 도서관에서 느낀 것들을 얘기하며 오늘 하루를 함께 추억했다. 어제와 같이 다 함께 'Kingdom'을 보고 잠자리에 든다. 포근한 기운 속에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