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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Feb 26. 2024

새로운 곳에서 만난 평생의 멘토


"아이고, 고생 많았지? 밥은 잘 챙겨 먹니?"

"많이 슬프지? 이럴 때일수록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네가 빨리 결혼을 해야 허전함을 메꿀 수 있을 텐데."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나간 교회. 내가 고아처럼 보이나 보다. 한 명씩 다가와 한 마디씩 건넨다. 난 괜찮은데.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 하지만 내가 괜찮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분위기다. 슬픈 표정이라도 지어야 하나. 고마운 관심이 고맙지 않았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지만, 때로는 무관심이 필요한 사랑도 있다.


엄마와 친했던 교인 두 명은 "죽은 사람의 옷은 빨리 정리해야 좋아. 우리가 정리해 줄게."라며 엄마의 옷장을 다 털어갔다. 멍했던 나는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심지어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또 주일이 돌아왔고 교회에 갔다. 이제는 "널 위해 기도할게"라는 말도 힘이 되지 않았다. '제발 속으로 묵묵히 기도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진심은 눈짓으로도 통하는 법이다. 당시 내겐 정다운 무관심이 필요했다.


부목사라는 인간은 청년부 회장이었던 내게 희생을 강요했다. 책을 사야 하니 후원해라, 교회 스피커가 망가졌다, 교회와 멀어지는 직장으로는 이직하지 말아라 등등 지속적으로 부담을 주었다. 거절하지 못한 내 탓이었다. 또다시 주일이 돌아올 때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엄마와 7년을 함께 다닌 교회라서 좋은 추억도 많았는데... 이제는 떠나야 하나?


핸드폰을 껐다. 교회에 가지 않았다. 정녕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성경을 펼쳐 한참을 이리저리 살폈다. 익숙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개역한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라고 쓰여있었다. '그래, 데살로니가 말씀을 묵상하며 어느 교회로 옮기면 좋을지 기도해 보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나름의 세 가지 기준이 있었다. 첫째 자기 소유의 건물이 없는 교회일 것, 둘째 담임 목사가 교인들의 이름을 모두 아는 작은 교회일 것, 셋째 설교를 통한 말씀의 은혜가 큰 교회일 것.


교회를 옮기려는 고민을 SNS에 올리자 회사 선배에게 바로 연락이 왔다. "소름이 돋아서 바로 전화했어. 지금 네가 기도하는 것들이 딱 우리 교회를 가리키고 있는데? 올해 우리 교회의 설교 주제가 교회론이고 중심 말씀이 데살로니가서야. 게다가 작은 공간을 빌려서 50명도 안 되는 교인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고 있어. 설교가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고."


나도 소름이 돋았다. 돌아오는 주일에 선배의 교회를 방문하기로 했다. 다니던 교회에서 내가 보이지 않자 계속 연락이 왔다. 나 혼자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연락이 잠잠해졌다. 주일이 왔고 선배의 교회로 향했다. 기도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작은 공간에 더 적은 교인들이 모여있었지만, 더 큰 은혜가 설교 말씀에 있었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100% 기도 응답이었다.


다니던 교회의 부목사와 만났다. 그동안 교회에 감사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강요당한 희생에 대해 따져 물었다. 궁색한 변명이 돌아왔다. "담임 목사님께는 말씀드린 거 아니지?"라며 자기 신변 보호에 급급한 모습. 정나미가 확 떨어졌다. 나는 고자질 같은 거에 취미가 없다고 말하며 다른 교회로 가겠다고 선포했다. 그렇게 엄마와 7년의 추억이 깃든 교회를 떠났다.


새로운 교회에 두 번째 간 날. 나는 그곳의 교인이 되었다. 담임 목사님의 설교는 1시간이 넘을 정도로 길었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맨 앞자리에 앉아 적고 또 적었다. 가뜩이나 작은 교회에 새로 온 덩치 큰 청년이 맨 앞자리에 앉아있으니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관심은 그리 부담되지 않았다. 기도 응답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을까. 낯선 익숙함 가운데 나는 빠르게 적응해갔다.


여기에서 나는 평생의 멘토를 만났다. 담임 목사님은 숫자로는 한 명이지만, 영향력으로는 만 명이라고 해도 모자라다. 그분이 읽은 책만 만 권이 넘는다고 하니 말해 뭐 하랴. 내가 손전등이라면 목사님은 등대라고 해야 할까. 목사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좁고 얕으며 짧은 시야는 조금도 확장되지 못했을 거다.


나는 신혼 때 휴직하고 아내와 독일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한창 자리 잡기에 바쁜 30대 부부가 잠시 일상을 멈추고 평생 간직할 부부의 추억을 만들기로 했던 것이다. 복잡한 서울에 내 집 마련하려 아등바등하는 대신 한적한 농가 주택에서 텃밭을 가꾸고 책도 쓰면서 나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 운동 습관이 없던 내가 평생 운동이라는 개념으로 운동도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대 같은 멘토 덕분이다.


멘토는 나를 현실에 매몰되지 않도록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안목을 길러준다. 배우려고만 하지 말고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체득해서 스승보다 나은 제자가 되라고 언제나 나를 다독인다. 가장 큰 엄마를 잃고 가장 큰 멘토를 얻었다. 잃음으로써 얻는 역설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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