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상했다. 며칠간 스르르 내 방에 들어와서는 멍하니 침대에 앉았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고 물으면 그냥 네 방이 좋아서, 아들 공부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라고 답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궁색한 변명도 한두 번이지 분명 뭔가가 있었다. 엄마의 이상행동을 감지한 지 닷새쯤 되던 날,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응가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해봐! 뭔 일 있는 거지?”
또 이상한 변명을 대려던 엄마는 순간 변비라도 걸린 듯 이를 악물었다. 오늘은 기필코 엄마의 뚫어뻥이 되리라 작심한 나는 계속 말해보라고 펌프질 해댔다. 얼마나 물어뜯었던지 손톱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엄마의 열 손가락이 허벅지 위에서 무언가를 할퀼 듯한 모양으로 오그라들었다. 찰랑거렸던 엄마의 바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 잘 들어. 놀라지 말고…. 사실 네겐… 여동생이 한 명, 있었어. 지금, 다섯 살이야. 너랑은 띠동갑이구나, 그런데…”
한 단어, 또 한 단어 토해내는 엄마의 입 모양에 시선이 쏠렸다. 어린 시절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쫑긋 귀를 세웠던 이후로 얼마 만인가. 시간이 흐르자 절뚝거렸던 엄마의 말이 과거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지금껏 엄마가 들려준 어떤 이야기보다 길고 복잡하며 기괴했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농축된 이야기에 나는 쓰디쓴 진액을 들이켠 것처럼 머릿속이 얼얼해졌다.
“엄마, 지금 왜 〈은실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 요즘 드라마에 너무 푹 빠진 거 아니야?”
당시 엄마가 즐겨봤던 SBS 드라마 〈은실이〉는 평균 시청률이 30%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주인공 은실이가 사생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생모가 은실이를 생부 집에 버리다시피 하고 도망간 회차가 방영된 터였다. 엄마는 아버지가 주말에만 집에 오기 시작한 때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인가 아버지가 지방 출장으로 집에 자주 못 온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설명도 엄마에게 들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때부터 아버지가 두 집 살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럭비선수 출신이자 대기업 건설회사 현장소장이었던 아버지. 그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화물 트럭처럼 그저 앞만 보며 폭주하는 괴물이었다. 그가 무용담이라고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부분 불법과 폭력, 부도덕으로 얼룩진 역사였다. 군대에서 탈영을 두 번이나 했고, 상사건 부하건 마음에 안 들면 두들겨 팼으며, 쌓여가는 교통 범칙금을 내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 특별사면으로 땡잡았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그는 언제나 세상 모든 사람을 향해 분노를 쏟았다. 딱 한 사람, 나만 예외였고 내 앞에서만 천사가 되었다. 나는 그가 과연 악마의 탈은 쓴 천사인지, 천사의 탈을 쓴 악마인지 알 수 없어 늘 불안했다. 제발 내 앞에서 악마가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그는 씀씀이가 헤펐는데 유독 옷과 차에 집착했다. 그의 방에는 한 번 입고 버린 옷더미가 한가득이었다. 전부 자기 체형에 맞게 직접 수선한 옷이라 다른 이에게 줄 수도 없었다. (옷만 보면 지긋지긋하다던 엄마의 말처럼 어린 내게도 결코 유쾌한 기억이 아니었다. 지난해까지 내가 14년간 패션 MD로 일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이상야릇하다.) 그는 패션쇼라도 하듯 자가용도 자주 갈아치웠다. 다른 아이들은 멀리서도 한눈에 자기 아버지 차를 귀신같이 찾아냈는데 나는 눈앞에 있어도 확신할 수 없었다. 심하면 일주일 만에도 바뀌는 차도, 수시로 변하는 얼굴도 뭐가 진짜인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그런 아버지였으니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새파랗게 젊은 여인과 얼마나 흥청망청 살았겠는가. 아버지는 명퇴 이후 퇴직금은 물론 집까지 다 날리며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러자 젊은 여인은 다섯 살 된 아이를 버려둔 채 자기 살길을 찾아 도망가 버렸다. 아마 초혼이라 속이고 결혼해서 다른 남자와 잘살고 있지 않을까? 벌이도 없이 어린 딸과 단둘이 남겨진 아버지는 염치 불고하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기가 다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불쌍한 아이를 봐서라도 합치자고 한 것이었다.
‘뭐! 지방 출장이 아니라 딴 집 출장이었다고? 드라마가 아니고 진짜로 내게 은실이 같은 동생이 있었다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나는 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을까. 아이에게 부모는 우주와도 같은 존재라는데, 그만큼 아버지가 내게 절대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10년 만에, 아니 난생처음으로 엄마의 말문이 열리자 봉인되어 있던 잔인한 현실이 기지개를 켜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원래 우리 집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언제나 냉전 상태였던 부모님을 보며 나는 어린 나이에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아버렸다. 오죽하면 부모님이 말다툼이라도 했으면 싶었을까. 적막은 꼬마를 지르밟는 거인의 발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구조상 거실 하나에 방 두 개였지만, 우리 가족에겐 거실이 없었다. 거실은 온 가족이 모이는 소통의 공간이니까. 제 기능을 한 적 없는 거실 대신 북극 같은 방 하나, 남극 같은 방 하나만이 존재했다. 매일같이 나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잔인한 질문을 마주하는 심정으로 엄마의 방과 아버지의 방 사이에 서서 얼어붙었다. ‘우리 집에는 왜 행복이 없을까?’ 다섯 살 꼬맹이였던 내가 삶에 던진 첫 질문이었다.
“엄마는 그동안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던 거야?”
기가 차도 정도껏이어야지. 화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는 각별했던 부자 관계가 깨지는 걸 원치 않았단다.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순수한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기를 바랐단다. 장남인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상극이었단다. 할아버지에게 한 번도 칭찬이나 인정을 받아보지 못한 아버지는 뼈에 사무치는 결핍으로 비뚤어진 길 걷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결핍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시시포스처럼 끊임없이 본성을 밀쳐내며 내게 조건 없는 칭찬과 인정을 쏟아부었다. 나를 절대적으로 지지해 주는 아버지를 어찌 내가 따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아버지의 비행을 두둔한 것이었다.
“현중아, 미안해. 더는 숨길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어. 엄마는 네 마음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원하는 대로 엄마도 따를게.”
“만약에 내가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한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마도… 고아원에 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건 안 돼. 그 아이가 무슨 죄야. 하지만 나도 엄마의 마음이 중요해. 엄마가 나 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삶을 사는 건 싫어. 어떻게 하면 엄마 마음이 가장 편하겠어?”
엄마는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엄마는 한 달 전부터 이 사건을 두고 성경을 보며 기도해 왔단다. 유독 한 구절이 가슴을 후벼 파서 이것이 신의 뜻이 아닐까 생각했단다. 엄마가 가톨릭 성서를 펼쳐 읽어주었던 마태오복음서 말씀이 떠올라 개신교 성경으로 다시 찾아보니 같은 말씀이 있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 마태복음 18:5, 개역한글
엄마는 말씀이 믿어졌고, 어린아이를 영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성경에는 홍해가 두 쪽으로 갈라진 사건,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사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고도 남은 사건 등 무수한 기적이 나오지만, 나는 엄마의 고백을 통해 비로소 눈앞에 펼쳐진 기적을 목격했다. 그동안 나는 엄마를 따라 습관적으로 성당에 다녔지만, 그날 처음 신이라는 존재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외아들로 자란 데다 부모님의 냉전으로 늘 외로웠던 나는 형제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엄마에게 동생을 낳아달라고 졸랐던 적도 있는데, 엄마는 “너 하나만 집중해서 잘 키우고 싶어”라며 철부지인 내게 꽤나 진중한 답변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느 날 내게 여동생이 생겼고 이제는 한 식구가 되어 살게 된 것이었다. 예수님을 환대하는 마음으로 엄마와 나는 풍선 장식을 사 와 집안 곳곳을 꾸몄고, 선물을 준비해 동생과의 첫 만남을 준비했다. 가장 예쁘고 귀여울 나이, 다섯 살 동생은 어떤 아이일지 몹시 궁금했다.
“띵똥!” 벨이 울리고 아버지의 두툼한 손을 잡은 조그마한 아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동화책에서 봤던 아기 공주처럼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와락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 다리 뒤에 숨어버린 동생에겐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지금 다섯 살인 우리 막내딸과 동갑내기였던 당시 동생모습을 다시 떠올려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 공주가 엄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를 따라 낯선 집에 들어서는 심정이 어땠을까? 엄마 품이 한창 필요할 동생 눈앞에는 낯선 여자가 새엄마라는 이름으로, 낯선 남자가 오빠라는 이름으로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