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내겐 늘 약간의 운이 따랐다. 무엇을 선택하든 최악만은 면했고 기껏해야 차악을 선택했었다. 다만 늘 적당히 하자는 생각이 뒤따랐는데, 지금껏 최선을 다한 것이라곤 학생 시절 구역질이 나려 하는 몸을 이끌고 학원에 나가는 것과 동아리를 운영하며 몇 달간 밤잠 줄여본 게 전부다. 공부도 늘 적당히, 일도 늘 적당히 하지만 어디서든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성적도 일의 능률도 늘 중간 이상은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적당주의는 내가 발전하지 못하는 큰 장애물이었다. ‘이 정도면 됐어’, ‘오늘은 피곤하니까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들면 하던 일도 멈추고 쉬곤 했었고, 장기적인 일이 주어질 때는 매일 시간을 쪼개서 일을 해야만 했다.
이런 행동이 몸에 베여서 그런지 지금도 장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엔 귀찮음과 걱정이 먼저 앞선다. 하나의 자격증을 따려고 하더라도 진득하게 공부해야 하지만 하루 1~2시간 깔짝거리곤 끝내서 능률이 좋지 않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다. 머리를 비우려 잠시 딴짓을 하다 보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버린다.
나름대로 이런 행동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도 노력했다. 계획을 세우거나 목표를 정해서 해보거나 시간을 쪼개서 사용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때뿐 쉬이 습관으로 자리 잡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더욱 문제다. 능력 하나 없으면서 뭐든 되겠지란 생각으로 살아가다 보니 만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뭐든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는 좋지만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까. 그나마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보다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데,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일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동안 익숙한 영역 내에서 생활하고 익숙함에서 편안함을 느꼈다면 지금은 날마다 새롭고 변화하는 삶 속에서 하루하루 불안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다행인 점은 변화는 불안에서 오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내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며, 내 앞에 생기는 일을 해쳐나가고자 하는 의지도 있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이기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고, 현실과 부딪혀가며 배우고 있어 불안감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불안감을 잘 이용하면 나에게 득이 될 수 있다. 불안이 과해지면 과도한 스트레스나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이 생길 수도 있지만 내 삶에 활기를 불어넣을 만큼만 불안을 조절한다면 적당주의를 물리치고 앉아서 글을 쓰는 지금처럼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불안이 없었다면 지금쯤 집에서 누워서 뒹굴 거리며 폰이나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불안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며 적당한 스트레스는 내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내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계획하며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면 불안을 활용할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