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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귿 Oct 30. 2020

감성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감성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워낙 세상 살기가 팍팍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하루하루 직장에 치여 사는 것도 그렇지만 삶 자체가 팍팍해졌다고 해야 할까. 직장을 다녀와도 저녁에 시간이 있으면 여가 생활을 하거나 주말에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시간적인 이유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괜히 ‘힐링’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떠올려보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지치는 건 당연히 있는 일이고 치이다 보니 지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회인이 아니더라도 학생 역시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있고 가족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응당 존재한다. 지치고 피곤하다 보니 힐링을 찾게 되는 것이다. 


 힐링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는 무척 달콤하다. 평소에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휴식 앞에 힐링이란 단어 하나만 붙인다면 그 행위가 무엇이든 말 그대로 치유가 되는 것 같다. 여행 앞에 힐링을 붙이면 그 여행은 나의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여행이 되어 여행의 기간이나 코스가 같다고 해도 훨씬 더 많이 쉬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가 하는 행동 앞에 힐링을 붙이면 비슷한 효과를 볼 것이다. 


 다만 힐링한다고 해서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원인이 제거되지는 않는다. 며칠 전 한 지인과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지인은 평소 카페를 자주 다녔는데, 올해는 카페에 거의 가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상태라고 했다. 카페에서 힐링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인데 그렇지 못하니 계속 쌓여가는 것이다. 평소라면 카페에서 충분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게 큰 문제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해결을 하려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내야 하는데, 그렇다고 직장상사와 마찰을 빚어 발생한 스트레스를 상사에게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무척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감성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 


 감성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게 무슨 말인가. 내가 살면서 느낀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렇게 글로 써내려 가는 행위 역시 나의 20대가 감정을 파악하고 글로 써보는 연습을 계속했던 일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때로 과거의 내가 쓴 글을 보면 오글거리고 이런 글을 왜 썼나 싶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글로 써 내려가며 내 감정을 이해하고 또 그걸 글로 썼던 게 지금의 나에게 무척 도움이 되고 있다. 


감성적인 사람은 예민한 것 아닌가요?


항상 성격 유형 검사나 직업 적성 검사 같은 걸 하면 늘 예술 쪽과 연관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곤 한다. 그런 나에게 주변에서는 예민하고 자기만의 세상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데, 물론 나만의 세상이 있긴 하지만 그건 나 말고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세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보고 예민하다고 하는 말은 반은 맞는 말이면서도 반은 틀린 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반은 틀린 말이란 건 예민할 때는 예민한데 그렇지 않을 땐 또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민할 때는 내가 무언가에 집중할 때다. 집중을 하면 당연히 그 일밖에 보이지 않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평소에 온갖 사소한 일에 하나하나 트집을 잡는 사람은 예민한 게 아니라 짜증이 많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평소 모든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나쁘다고 볼 수 있는가? 성향이 다를 뿐이다. 즉 모든 감성적인 사람들이 예민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의 차이도 당연히 있다. 


예민하더라도 그 성격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고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까지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폭발할 것 같은 그런 예민함을 풀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누구나 겪는 이별의 아픔이 있었던 적이 있다. 처음 만난 그 사람과의 연애의 끝에 남은 것은 심장이 격하게 빠르게 뛰며 호흡이 곤란한 증상이었는데, 당시 병원에 가서 진찰도 받아보고 매일 술을 마시며 지냈던 기억이다. 그때 시작한 게 바로 글쓰기였는데,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서 지워내진 못하더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때 썼던 글은 지금 보면 무척 못 볼 꼴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인색한 우리의 정서도 한몫한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가 많이 억압되어 있다. 근대사를 관통하면서 수많은 검열이 있었고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해왔다. 지금은 과거처럼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호민 작가가 말한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검열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일하는 데 있어서 그런 개인의 감정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큰 것은 아닐까.


이런 세상에서 감성인간으로 살아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조금만 감성적인 모습을 보이면 오글거린다고 말하거나 글 하나를 쓰더라도 이런 글 쓰지 말라는 핀잔을 주는 걸 많이 봐왔다. 이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공감이 많이 결여된 사회란 걸 많이 느끼기도 한다. 감성적인 사람이 예민하다는 말도 그런 의미와 동일한 것이다. 예민하다는 말로 한계를 그어 버린다. 한계 지어진 틀 안에서 판단하고 반대로 자기 의견을 강요하다니 세상에. 이런 세상에서 감성인간으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감성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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