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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모 Nov 05. 2020

자신을 찾아가는 길

“너 자신을 알라.” 


 이 명언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알고 있으나 실제로 고대 아폴로 신전 입구 현판에 새겨진 경구이다. 다만 소크라테스가 이 명언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관철한 것은 분명하다. 고대 그리스는 신 중심의 사회였고 인간은 신에 비해 무지하고 열등한 존재인 것이 당연한 사회였다. almighty(전지전능한)라는 영어 단어처럼 신은 전지하고 전능한 존재였으니 인간은 그 앞에 한없이 작고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오히려 그런 생각이 소크라테스와 같은 희대의 철학자를 탄생시켰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 대해 모든 걸 알고 태어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한테 자신은 이런 아이니까 이렇게 키워달라고 브리핑하는 아기를 본 적 있는가? 그런 아기가 있다면 전 세계 인터넷은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몇 날 며칠은 지새울 것이다. 그만큼 그런 상황은 희귀하다 못해 없는 수준이다. 우리의 삶만 돌아봐도 쉽게 깨달을 수 있는데 빠르면 유치원에서부터 교육과정을 거쳐 평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는 배움 속에서 살아간다. 배움으로써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스스로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출발한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를 알아라는 이 의미는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딴 소크라테스 대화법에서도 알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 대화법은 심리학에서 치료 수단으로 사용되며 끊임없이 질문과 답변을 하며 자신의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가는 방법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을 끊임없는 물음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방식은 결국 그 답은 자신에게 있다는 결론을 유추해낸다. 질문은 그저 내 속에 있는 답을 찾아나가는 방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 내가 가진 감정의 원인을 알 수 있고 어떤 생각과 행동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감정의 원인을 피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미디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보글보글’이라는 웹툰을 보는 데, 과거나 현재에 환경적으로 어렵거나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할미식당이란 곳에서 마음을 치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할미식당의 종업원인 한 남자는 어릴 적 어머니를 사고로 잃고 집은 파산하여 시골로 내려오게 되면서 어머니와 함께했던 부유한 도시생활과 비교되는 시골에서 살게 되며 비행을 저질렀다. 겉으로 보면 시골 사람들이 자신을 측은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비행을 저지르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컸고 할미식당의 할머니를 통해 그 마음을 위로받게 된 것이다. 할머니에게 위로받기 전까지 아이는 어긋나는 마음과 행동을 바로잡을 수 없었고 이를 비행이라는 행동으로 표출한 것인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피하는데 주력한 것이다. 피하는 게 맞서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었으니까.


 ‘나 자신을 아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트라우마와 맞닥뜨리며 고통에 울부짖기도 하고 주체하지 못할 슬픔에 파묻혀 괴로움에 끝내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알아야 된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만큼 나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아는 것의 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른다. 사회 안에서 교류하고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데 살다 보면 자신을 잊어버릴 때가 올 것이다. 평생을 헌신한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 자신에 대해 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을 다니던 순간의 나는 곧 회사였다. 쫓겨나는 순간 ‘회사는 곧 나’라는 정체성이 사라지면서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진다. 그럴 때 우울증, 불안감과 같은 심리적인 압박감이 발생하는데 그 시기가 길어지면 방황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확실해지면 넘어져도 곧잘 일어나게 되는데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바로 ‘의지’다. 삶을 지탱해주는 것도 결국 이 의지의 문제이지 않은가. 삶을 이어가는데 의지가 없으면 그게 바로 죽음이다.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해도 결국 죽지 못해 산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고. 앎으로써 삶의 의지를 이어가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무엇보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형상화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반대로 모르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기술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신을 아는 사람의 표현력과 모르는 사람의 표현력은 큰 차이가 있다. ‘영혼이 없는 표현’이라고 말하듯 알지 못하고 막연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의 말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 같은 낱알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알아가기 위해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맞닥뜨려야 할 필요가 있다. 힘들 수도 있지만 혼자 할 수 없다면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보고 가족에게 외쳐보자. 그것도 어렵다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찾아보거나 또는 이런 글을 통해서 힘을 얻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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