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이 얘기하는 매일을 여름휴가처럼 보내는 법
무더운 여름날,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지친다. 그냥 아무 데나 시원한 곳에 가서 푹 쉬고 싶다.”
머릿속을 비우고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시원한 공간. 그저 늘어져 있을 수 있는 그곳이 내가 꿈꾸는 여름의 모습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한가로이 앉아 있거나, 시원한 물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것.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여름이 아닐까?
하지만 그 ‘쉬는 일’조차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였고, 아무리 일정이 없는 날이라 해도 머릿속은 온통 다음 주, 다음 달, 심지어 반년 뒤까지 이어지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주변 환경이 아무리 평온해도 마음속은 초조하고 조급했다. 그러니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결코 쉬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전혀 의외의 길이 열렸다. 바로 ≪반야심경≫이었다.
어느 날 ≪반야심경≫을 펼쳐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완전히 퍼질러 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바닷가 카페에서 쉬는 것처럼, 마음만으로도 언제든 그런 휴식을 누릴 수 있구나.”
이 구절은 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공(空)’을 말한다. ‘공’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실체, 본질이라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겪는 세상은 그 자체로 실체가 없으며, 우리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만 존재하는 것들이다.
이를 알게 되며 마치 세상이 아무런 제약도 없는 거대한 놀이터이자,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空)’사상에 따르면 세상에 본래 우리를 가로막거나 힘들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놀이터 같은 세상을 그저 누리는 것뿐이다.
물론 이런 말을 들으면 반발심이 들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일이 이렇게 많고 상황이 이렇게 힘든데… 이게 무슨 놀이터라는 거야!”
그 반응, 당연하다. 실제로 우리를 지치게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너무나 많다. 생계, 인간관계, 건강,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셀 수 없이 많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해 보자.
많은 역사학자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인류 역사상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시대라고 말한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전염병과 기근,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았고, 평균 수명은 40세 남짓이었다. 오늘날처럼 누구나 교육을 받고, 의료 혜택을 누리며, 전기·수도·인터넷 같은 인프라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의 세상이 힘들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임에도 우리가 힘든 이유는 대부분 물리적인 한계가 아니라, 심리적인 제약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심리적인 제약마저도, 사실은 ‘공’하다는 것을 ≪반야심경≫은 가르쳐 준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대부분은 실제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해석이고 심리적 반응이다. 그리고 그 해석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흐르고 변하고 사라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런 걱정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이 생각에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다. “잘못되면 끝이다.” 그러나 ≪반야심경≫은 그 생각조차도 공(空)하다, 즉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최악’은 사실 불완전한 생각의 결과물일 뿐,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바뀌며, 절대적인 근거가 없다. 만에 하나 걱정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해도, 그것이 정말로 최악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것 또한 우리가 덧씌운 불완전한 해석에 불과하다. 그 해석을 내려놓는 순간, 세상은 다시 놀이터가 되고 쉼터가 되는 것이다.
이 원칙을 응용해 내가 요즘 실천하려고 하는 방법이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눈을 감고,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 걱정도 없는 그 공간 속에서 단 몇 분이라도 ‘쉬는 시간’을 갖는 것. 이는 심리치료의 유도심상(guided imagery)의 핵심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일이 벌어져도 괜찮아. 모든 것은 흘러가고, 불변의 실체란 없어.”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이 곧, ≪반야심경≫을 통해 알게 된 일상을 살아가는 지혜, 나만의 휴식법이다. 이 휴식법을 통해 일상이 보다 가벼워져가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쉴틈이 보이지 않는 일상 속에 잠깐이라도 이런 여름의 휴식을 만끽해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