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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y 17. 2017

인생 첫 단편 소설을 써보자

+구성과 반성

 A4용지 한 장 분량의 소설을 쓸까 한다. 재밌을 것 같아서. 소설 써 본 적이 없어서 막연하다. 구성은 최대한 단순하게 하고, 캐릭터의 특징도 서술하기 쉬워야 한다. 처음이라 모든 부담을 버리고, 완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뼈대를 만들어봤다. 



발단 전개 결말 - 짧은 글이므로 3단 구성을 사용한다. 심플한 걸로 가자.


내적 갈등- 갈등도 짧게 끝낼 수 있게 내부의 대립되는 욕구를 쓴다.


단일 구성: 하나의 사건으로


상승 구성:으로 익숙한 해피엔딩이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결말을 따로 정하지 않겠다. 개연성이 최우선.



1. 소재: 카톡. 카톡을 보고 느껴지는 주인공(나)의 감정 변화. 카톡이 2개 오는데, 첫 번째 카톡은 발단, 두 번째는 전개. 제목은 이를 토대로 키프트콘

2. 테마: 뭔가 자극적인 것보다 아주 사소한 감정 변화를 다루고 싶다. 오바하면 할수록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현실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을 법한 내용으로.

3: 플롯: 홀수 플롯   - 1. 이모에게 기프트콘 받음  2. 어떤 치킨을 먹을지 고민함. 후라이드와 양념의 대립  3. 이모의 카톡  

4: 인물 설정(특징 부여) - 21살 자취생. 군대 입대 한 달 전으로 예민함 

5: 디테일: 지어낸 느낌 없게. 실제 있었던 내 경험으로 몇 가지 행동 설명.

6. 사건: 기프트콘 가치를 알게 됐을 때. 가격 인상으로 한 마리 20000원이었음. 비싼 치킨인 게 밝혀짐. 

7. 결말: 정하지 말고 써. 반전


+ 쓰기 쉬운 소재, 상징 부여



그럼 6 문단 소설로 결정

1. 자취방에서 낮잠 자다 카톡 소리에 깸  ( 카톡 메인 화면 캘린터 d-35)

2. 이모티콘 확인 - ABC 치킨 한 마리 사용 가능

3. 한 마리 2만 원 이상임을 발견

4. 후라이드와 간장소스 중 고민

5. 이모의 카톡

6.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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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콘



 '카톡' 핸드폰 소리에 잠을 깼다. 머리맡으로 팔을 몇 번 뒤적인다. 홈버튼을 누르자 액정에 불빛이 들어온다. D-35란 문구 위에 적힌 시간은 오후 3시 30분. 어제도 해가 뜬 뒤 잠을 청했다. 며칠 후면 이 집에서 맞는 하루도 안녕이다. 자취방 계약이 이주일 정도 남았다. 그 후엔 광주 집에서 남은 보름을 보낼 것이다. 이제 막 20대의 첫 해가 끝났다.


 핸드폰의 잠금을 풀고 카톡을 확인했다. 첫째 이모가 기프트콘을 보냈다. -ABC 치킨 한 마리 쿠폰- 갈 때가 돼서 그런가 가족들의 친절이 과하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먹은 컵라면이 마지막 식사였다. 기프트콘을 보니 배가 고파졌다. 한 달 용돈 30만 원으로 프랜차이즈 치킨은 호사였다. 가끔 치킨이 먹고 싶을 때, 대형마트에서 4900원짜리 통닭을 샀다.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을 땐 프랜차이즈 치킨을 곧잘 시켜 먹었다. 정해진 돈으로 한 달을 살려니 아끼게 된다. 


 메뉴를 보기 위해 핸드폰으로 ABC 치킨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후라이드 치킨 2만 원, 간장 치킨 2만 3000원. 비싼 줄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버진 올리브 오일로 튀긴 국산 닭은 몸값이 대단하다. 이모의 사랑이 액정을 통해 전해진다. 


 이제 나는 선택의 기로 앞에 있다. 후라이드냐 간장이냐. 두 가지 식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후라이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머릿속에 닭다리를 잡고 뜯는 모습을 그린다. 바사삭 소리를 내는 금색 튀김옷 안에 육즙을 품은 하얀 속살이 존재를 드러낸다. 치킨의 풍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후라이드의 바보 같을 정도의 올곧음. 그에 맞서는 간장 치킨은 어떠한가. 단짠이 황금비로 조화를 이룬다. 후라이드에서 항상 아쉬운 점은, 가슴살을 먹을 때 퍽퍽하다는 것이다. 가끔 이게 백숙인지 치킨인지 구분이 안 간다. 간장치킨은 이런 걱정을 말끔히 없애준다. 소스가 두꺼운 살코기의 퍽퍽함을 없애고, 악센트를 준다.


 3분이 흘렀다. 쉽사리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정석이냐, 화려 함이냐. 마치 짜장과 짬뽕, 아버지와 어머니, 아메리카노와 라테와 같다. 가격을 생각하면 간장 치킨이 이익이다. 간장 치킨으로 정하려니, 후라이드의 바삭한 기회비용이 떠오른다. 양념 치킨은 실패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후라이드는 맛의 교과서이다. 교과서 위주의 학습이 명문대로 이끈다던데. 하지만 사교육을 무시할 수 없다. 강남 3구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률을 보라. 극성 엄마들이 학구열 높은 지역으로 이사 가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농어촌 전형으로 혜택 받는 이들도 있는데. 


 식은땀이 흐른다. 한 번의 실수에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핸드폰을 이불 위에 던지고 사유의 세계로 빠진다. Fried chicken. 외래어 표기법상 프라이드치킨. 오래전부터 튀긴 닭 요리는 스코틀랜드, 서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18세기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의 조리법을 그 유래로 본다. 조리법은 간단하다. 고기에 간을 하고 튀김옷을 입힌 후 튀긴다. 의외로 새 기름보다 적당히 사용된 기름에 튀긴 닭이 맛있다. 새 기름엔 트랜스 지방이 적기 때문이다. 트랜스 지방이 몸에는 해로울 수 있으나, 입에는 맞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의 반대 사례다. 


 뽀빠이로 알려진 탈랜트 이상용은 후라이드 치킨은 하늘의 맛이라고 말했다. 그 맛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문학적 표현을 덧붙였다. 우리 님이 아리랑 고개를 넘지 않았으면 하는 화자의 심상이 이러할까. 괜히 배달 음식 넘버 원이 아니다. 손톱을 물어뜯는다.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그래 역시 후라이드, 외래어 표기법상 프라이드치킨이 정답이다. 순간 1991년 동네 통닭집에 불과했던 교촌치킨을 전국 규모 체인으로 키운 메뉴 간장치킨이 신기루가 되어 눈 앞에 흐드러졌다. 왜간장 베이스에 설탕과 마늘을 넣어 만든 소스는 짠맛과 단맛의 조화를 이룬다. 교촌치킨의 성공을 필수로 다른 메이저 치킨 업계에서도 라인업에 간장치킨을 추가했다. 첫 입부터 닭다리를 내려놓는 순간까지 소스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첫 간장치킨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적당히 간이 되어 밥반찬으로도 손색없다. 두 개의 심장의 박지성은 공수 전반에 능숙했다. 요식업계의 멀티플레이어로 밥과의 조화도 훌륭하다. 난제다. 그래서 결정을 유보하고 라면을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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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문체로 글을 전개했다. 에세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새로운 도전은 이렇게 실패. 첫 단추 뀄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밖에. 문단은 예정보다 많아졌다. 고민하는 게 글의 중심이니, 분량이 더 있는 편이 주제를 드러내는데 낫다고 생각했다. 기프트콘으로 군입대를 앞둔 20대 청년의 예민한 감성을 상징하고자 했다. 문제는 굳이 군 입대를 앞두지 않아도, 이 정도 고민은 누구나 할 법하다는 점이다. 고민을 오버해서 늘린 다른 이유다. 불필요한 치킨 소개는 불필요하다는 특징 때문에 필요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과하게 감정 이입하는 모습. 그런데 너무 웃기는, 가벼운 글이 돼서 소설 타이틀을 붙이기 애매해졌다. 


다시 언제 쓸지 모르지만, 다음번에 고쳐야 할 점은


1 캐릭터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나와 성격이 비슷한 주인공이라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안 간다.

2. 상징을 좀 더 드러내야 함. 상징성이 약하다 보니 일기 수준의 장난식 글이 됨

3. 시점 바꾸기. 가장 큰 문제는 에세이와 벽을 두는 것이다. 일인칭 시점에서 경계가 모호해짐. 남자는 뭐뭐를 했다. 식으로

4. 완급조절. 소설은 극인데, 문장의 리듬이 변하지 않는다. 같은 음 같은 박자로 서술하니 심심하다. 

5. 조금 오버하여서 비유하기. 형용사와 부사를 없애려고 하는 성격 때문에, 무미건조한 느낌이다. 

예) 신춘문예 중편. 첫 문단


8월이었지만 런던의 여름은 서울에 비해 무척 선선했다. 우리는 여기까지 찾아온 노고와 입장료가 아까워 산책이라도 할 요량으로 묘지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진욱은 유독 사진 찍는 걸 꺼려서 내가 카메라를 꺼내 들면 먼저 앞서 가버리곤 했다.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에는 주로 그의 뒷모습만 담겨 있었다. 청바지가 무거워 보일 정도로 힘없는 걸음걸이, 뒷덜미에 띄엄띄엄 자라나는 흰머리와 어깨뼈가 도드라진 마른 등이 새삼스러웠다. 
 

 무척, 천천히, 유독, 먼저 앞서(동의어 반복), 주로~만(어색한 호응), 띄엄띄엄, 도드라진 마른 같은 불필요한 구성이 많아야 '나 소설!' 느낌이 있다. 억지로 몇 개 넣어볼까. 이제 알았다. 묘사가 너무 부족하다. 비유가 거의 없었다. 이게 나와 소설의 차이었다. 그냥 사실을 서술하는 것과 사실에 비유 필터를 입히는 것. 내 첫 문단을 이런 식으로 조금 손 보면,


 '카톡' 핸드폰 소리에 잠을 깼다. 머리맡으로 팔을 몇 번 뒤적여 핸드폰을 찾았다. 홈버튼을 누르자 액정에 불빛이 들어온다. D-35란 문구 위로 보이는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30분. 간밤에 밤새워 게임하고 해가 뜨고 나서 잠을 청했다. 며칠 후면 이 집에서 맞는 하루도 안녕이다. 자취방 계약이 이주일 정도 남았기 때문이다. 그 후엔 광주 집에서 남은 보름을 보낼 것이다. 이제 막 20대의 첫 해 보냈을 뿐인데...


 핸드폰 알림 메시지에 잠에서 깼다. 전공서적 크기의 작은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은 이미 작은 원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빛의 반사로 방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일 년 동안 내가 시간을 보낸, 이제는 곧 떠나야 할 공간이다. 노트북 하나 올라가기 벅찰 정도로 작은 책상, 일인용 조리공간, 몇 벌 없는 옷으로 앙상한 행거. 얼마 전 집으로 짐을 보낸 덕분에, 이 작은 공간에서 휑함을 느낀다. 머리맡을 오른손으로 뒤적거리다 핸드폰을 찾았다. D-35란 문구가 액정 한가운데 쓰여있다. 오후 3시 30분으로 벌써 하루가 반 넘게 지났다. 무기력함에 모든 행동을 멈춘 상태로 천장을 멍하니 본다.


 '이제 35일인가...' 



음.. 훨씬 소설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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