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서러움
마음으로 서비스하는 일본 료칸에서의 에피소드입니다. 동료와 손님에게 얻은 배움과 깨달음을 회고하며 기록합니다.
아파도 학교 가서 아프라는 엄마의 말. 실제로 머리가 아픈 날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수다 떨다 보면 아픔도 어느새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초중고 개근상을 받았다. 그리고 사회인이 되어서 출근을 안 한다는 건 내 사전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료칸의 휴관일도 아니고, 휴무도 아닌데 나는 내 방에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다.
'내 무릎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아무 일 없겠지 싶다가도, 이대로 타지에서 다리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무서운 생각이 엄습해 눈물이 또르르...
휴무라서 어느 때와 같이, 늦게까지 잠을 잤다. 그리고 늦은 오후에 예약해둔 미용실에 갈 준비를 한다.
보통 예약제지만, 헤어숍을 가는 건 나에게 기분전환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키면 오늘 당장 가능한 곳을 찾는 편이다. 그래서 동네의 미용실 중에 안 가본 곳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엔 추천을 받아서 미리 예약해 두었다.
아무것도 안 먹고 나와서 배가 너무 고프다. 커트와 파마할 예정이라 시간이 꽤 걸릴 테니, 먼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디저트로 배를 채워야겠다.
스위츠로 유명한 카페, 우리 료칸에서도 손님 이벤트 케이크를 주문하는 곳이다. 옆에 먹을 수 있는 카페도 있어서 휴일이면 예쁜 스위츠를 먹는 것이 나의 낙이다.
서버가 내 테이블에 주문한 메뉴를 놓아줄 때면, 예쁜 플레이팅에 황홀해서 마치 선물 받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눈과 입이 즐거운 선물을 즐기고, 미용실로 향했다.
료칸 동료가 소개해 준 남자 디자이너, 확실히 남자가 더 섬세한 면이 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졸고 있는데, 이제 머리 감으러 이동하라는 소리에 번쩍 눈이 뜨였다.
가운 안에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다리를 내딛는 순간, 옴마야...
쩔. 뚝!
이상하다. 오른 다리 아니, 무릎인가? 힘이 안 들어 간다. 부끄러운 감정이 먼저 들었다.
가운으로 내 다리는 안 보일 거다. 일단 샴푸하는 곳까지 어정쩡한 다리로 디자이너 선생님을 열심히 쫓아갔다. 영문 모를 일에 불안한 마음으로 샴푸를 받는다.
'오잉? 이 분은 지금 손으로 하고 계신 건가? 부드러운 솔로 문지르고 계신 건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머리 구석구석을 너무나 섬세하게, 그리고 너무나 시원하게 감겨주신다.'
"정말~ 좋았어요."
라는 한마디를 건네고 자리로 돌아간다.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좀 전에 다리는 어떤 상태인지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다. 뻐근했던 것도 아니다. 단지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무릎이 없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좀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다.
디자이너 분이 마무리 단계인 드라이를 해 주며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머리를 다 끝내고 제가 의자를 돌려드리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더라고요."
먼저 이곳에 한국 사람들이 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 재일교포 사람이겠지 싶다가도, 아 나도 한국인이지. 하며 혼자 깨닫는다.
대답을 했다.
"아, 그건 한국인들 성격이 급해서 그럴 거예요. 호호호"
그러고는 선생님이 ‘완성됐어요!’ 하는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감사합니다."
라는 말과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이 의자를 돌려주기도 전에... 민망했다.
"네, (이러니) 저도 한국인이죠. 하하하"
선생님께 추천받은 근처 밥집으로 갔다. 카운터에 앉아 곱창나베, 조금 매운 단계를 선택했다. 그럭저럭 배를 채우고 나오니, 벌써 어둑어둑하다.
근데 오른쪽 허벅지부터 뒤쪽이 좀 뻣뻣하다.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면서 점점 다리 뒤편이 굳는 느낌이 든다. 어휴 무슨 일이람.
가는 길에 있는 마사지샵에 들러야겠다. 료칸 출장 마사지샵이라 유니폼이 아닌 모습으로 가서 서비스를 받기 너무 민망한데… 어쩔 수 없다.
다행히도 다들 출장 가신 모양이다. 눈에 익숙한 한 분이 계시다. 나는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며 못 알아보시길 바라며, 내 상태를 설명했다. 마사지사도 원인을 알지 못했고 열심히 내 오른 다리 뒤쪽을 꾹꾹 눌러 주셨다.
10분이 지나고,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데도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여전히 다리가 뻣뻣하다. 20분 정도 한곳만 했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없자, 그만하기로 하고 나왔다. 나를 못 알아보셨길 바라며.
오늘 달콤한 디저트도 먹고, 머리도 예쁘게 하고, 저녁까지 든든하게 먹었는데... 내 다리는 무슨 일이람.
가족들한테는 걱정할까 봐 말도 못 하고 친구한테 전화해서 말을 하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나 이러다가 여기서 어떻게 되는 거 아니겠지...? 괜찮아 질거라는 친구의 말에 희망을 갖으며 잠을 청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움직여 본다. 아니다. 어제의 다리 땅김은 없어졌는데 오른쪽 무릎을 완전히 펼 수가 없다. 무릎을 살짝 굽힌 채로 걸을 수는 있지만, 이대로라면 일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체크인할 때, 무릎 꿇고 하는데 일을 할 수 없다. 오후 출근이라, 얼른 사무실에 가서 말씀을 드려야겠다.
사장님의 부인이신 전무님께 자조치종을 설명하자, 전무님의 작은 얼굴에 걱정해 주는 마음이 한가득이다. 그 뒤로 책상에 앉아계신 사장님을 흘끗 봤는데 얼굴 표정을 찌푸리고 있으시다. 사장님의 그런 표정은 처음이라, 많이 놀랐다.
'내가 빠지니, 손님이 몰리게 되면 영어 구사하는 사장님도 로비에 나와야 하기 때문에 많이 언짢으신 건가...?'
죄송스러운 마음에 이렇게 내 마음을 투영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사장님이시니깐. 그래도 나한텐 다정하신데. 몰라몰라.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료칸을 뒤로하고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평소라면 뭐라도 도우려고 출근할 텐데, 오늘은 내 몸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스스로가, 얼마큼의 두려움에서 온 결정인가 싶다.
‘제발 낫게 해주세요.’
하루 종일 침대에서 쉬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 것은 내게 없는 일이었는데...
괜찮다. 괜찮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고 다리를 쭉 펴고 걸을 수 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러고 출근을 했는데 프런트의 친한 동료가
“어제 무릎이 아팠다고?” (피식 웃음)
많이 걱정해 줄줄 알았는데… ‘다들 농담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뭐라 했겠지. 나도 아이러니해’ 이해하면서도 서운하다.
그 서운한 마음에 어제 일을 빠져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잊었다. 반성한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휴무 전날 근무가 고됐었다. 많은 체크인으로 인해 무릎 꿇기를 수십 번.
우리 료칸의 좋은 점 중 하나가 온천탕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 끝나고 항상 노천탕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는 하는데 그날은 너무 피곤했던 지라, 간단한 샤워만 하고 나왔다.
전날 뭉친 근육들을 제대로 풀지 않고 미용실에서 한 시간 이상 다리를 꼬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
참 신기하게도
스노보드를 타고 다리 근육통에 시달리는 다음날에, 집에서는 앉기도 힘들어 ‘아야야’ 대면서, 출근하면 무의식적으로 고객 앞에서 무릎 꿇게 되는 숱한 경험을 했었다.
‘왜 하나도 안 아프지? 나 일해야 하는 체질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가를 낼 정도로 그날은 너무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아프면 서럽다.
그리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무리하지 말고,
건강관리 잘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