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리 01화

살아난 유리 조각 #1

by Cruel Ella

남편이 죽었다.


한 겨울,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피가 흐른다. 아직 온기가 남은 피는 추위에 얼지도 않고 그대로 흐른다. 검붉은 액체가 차가운 차로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면서 남편의 숨은 끊겼다. 동공은 풀렸고 다리는 꺾여 바닥에서 차갑게 식어간다. 방금 내리던 눈이 바람에 흩날려 하얀 가루가 되어 공기 사이사이로 피어오른다. 공기의 결을 따라 움직이는 먼지와 한밤중에 일어난 사고 장면은 정확히 유리의 눈에 박혔다. 움직일 수도,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유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 아무도 서 있지 않은 장면이 그대로 멈춰 선 채 서서히 돌아간다. 우뚝 서 있는 것은 나무와 가로등뿐, 모든 것이 유리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내려앉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숨을 쉬는 게 죄가 될 것만 같다.


작은 사거리 아파트 입구, 차도 위에는 부서진 오토바이와 죽은 남편만 덩그러니 남았다. 남편을 들이받은 트럭은 망설임 없이 지나갔다. 뺑소니다. 깜빡임도 없는 유리의 큰 눈망울에 눈물이 맺힌다. 유리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어 구급차를 부른다. 제정신일 수 없는 상태지만 위치와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한다. 떨리는 목소리 위로 유리의 영혼이 빠져나간다. '상황 인지'라는 영역은 미처 유리의 뇌에 도착하지 못했다. 흐르는 눈물의 따스함도 느낄 새 없이, 울음이란 것이 터질 틈도 없이 유리는 사고 현장으로 기어간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그의 손에서 장갑을 벗기고, 약지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확인한다.


오늘, 유리의 하늘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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