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내 집이었던 우스터담 크루즈, 즐거웠다! 소중한 추억과 월급을 남겨줘서 고마워.
이제 밴드 피아니스트 자리는 내 베프가 메꿔줄 테니 나는 이만, bye now!
나를 이어 밴드 피아니스트가 될 베프와 짧은 수다를 떨었다.
나는 시카고, 베프는 LA가 거주지라 굉장히 오랜만에 만난 순간이었다.
이 재밌는 일을 베프에게 연결시켜 줬다는 뿌듯함도 컸다.
그녀의 첫 크루즈 피아니스트 경험이라 알려주고 싶은 게 너무너무 많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덩그러니 배를 탔던 내 첫 크루즈 때의 “I know nothing” 경험을 친구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공연 스케줄은 이러이러하고, 생활환경은 어떻고, 사람들은 어떤지, 재잘재잘 떠들었다.
“진짜 재밌을 거야. 밴드 멤버들도 너무 좋고, 너라면 연주도 어려움 없이 할 거고!! Have a blast!!!”
나는 떠날 시간이 되어 샌디에고 항구에서 나와 셔틀을 타고 호텔로 갔다.
제공받은 호텔에서 쉬다가 밤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었다. 점심값까지 현금으로 줬다
이렇게 회사에서 비행기와 호텔을 제공해 줄 때는 기분이 좋다.
나 뭐 돼?
ㅋㅋㅋㅋㅋㅋ
넓은 호텔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점심은 뭐 사 먹을까~ 고민하던 중에
밴드리더 아담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Judy! Can you stay for one more week?”
나 짐 싸서 나왔는데 일주일 더 있으라니, 무슨 말이지???
듣자 하니 -
내 바통터치받을 베프가 메디컬(신체검사 결과서)을 안 가져와서 일을 할 수 없다는 소식이었다.
베프는 LA 집에 가서 메디컬을 가져와야만 직원 수속 절차를 밟을 수 있었는데
3시 전에 배에 타야 하니, 그 안에 LA에 왕복하기란 불가능이었다.
다행히도, 일주일 뒤에 샌디에고에 다시 오는 크루즈 itinerary 여서 그때 베프가 메디컬을 가지고 탑승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베프가 일을 못하면 일주일간 밴드 피아니스트가 공석이 되는 셈인데
당장 몇 시간 안에 대타를 찾기란 불가능하니, 아직 샌디에고 호텔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는 내가 1순위 대타였던 것이다.
일주일 더..? 어디 보자..
그럼 크리스마스를 크루즈에서 보내는 건데..?
오히려 잘된 건가?!
크게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Ok! I’ll stay for one more week!”
ㅋㅋㅋㅋㅋ
곧바로 베프와 연락이 닿았다.
에이전시에서 메디컬을 챙겨 오라는 말을 안 해서 가져와야 되는지 몰랐다며 상당히 짜증이 난 베프였다.
그 마음 나도 알지.. 에이전시는 정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지..
메디컬 챙기라고 내가 얘기해 줄걸, 다른 얘기는 다 했는데 그 말을 안 한 게 미안하기도 했다.
친구는 LA집에 단기 렌트까지 주고 두 달간 크루즈에서 일할 큰 마음을 먹고 여기까지 왔는데
종이 한 장 없어서 다시 집으로 가야 한다니, 상상도 못 했겠지! ㅠㅠ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돌발상황이 흔한 이 크루즈 바닥이 익숙했던 나는 그리 놀라진 않았다.
나도 전화받고 40시간 안에 크루즈 탄게 벌써 두 번째니 뭐~
직원 수속에 실패한 베프는 크루즈에서 내려서 내가 있는 호텔로 왔다.
나는 크루즈로 돌아가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같이 점심이나 먹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 이 날은 내 생일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베프랑 생일도 같이 보내고 좋지!
LA에 사는 친한 언니도 우리를 만나기 위해 샌디에고로 왔다. 언니도 몇 달 만에 보는 건가!!
혼자 호텔에서 쉬다가 시카고로 가는 날이 갑자기 베프들과의 상봉의 날이 되었다니,
어이는 없지만 기분 좋은 깜짝 파티였다.
게다가 크루즈에서 일주일 더 보내며 크리스마스도 보내게 됐다니,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오랜만에 모인 우리 셋은 이 황당한 상황을 즐겼다. 학창 시절을 추억하며 Pho를 사 먹고, 내 생일이라고 스타벅스에서 cake pop을 디저트로 사서 호텔에서 귀여운 생일파티를 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이 아닐까 싶다.
크루즈 출항 시간에 맞춰 베프들과 bye를 하고 다시 항구로 향했다.
어젯밤에 굿바이 파티하고 떠난 내가 다시 나타나면 다들 깜짝 놀라겠지?
역시나, 마주치는 친구들마다 혼란의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테일러는 나를 보고도 모르는 척하길래 왜 저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새로 온 내 베프인 줄 알았다고 한다. (?)
새로 온 피아니스트가 쥬디랑 너무 닮아서 놀랐다고...
나를 보고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Racist!! We Asians don't look the same!"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핀잔을 줬고, 테일러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이해해.. 내가 다시 올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겠지~
댄서 친구들은 격하게 날 환영해 줬다. 그들의 감정표현은 우주를 뚫는다.
백스테이지에 커다랗게 "Judy is HERE" 써놓고 환호와 웰컴 댄스로 나를 맞아줬다.
그렇게 나는 7시간 만에 크루즈와 재회했고, 일주일이 더 주어졌다.
이번 일주일은 멕시코 해변을 돌고 샌디에고로 돌아온다.
하와이만큼 기대되진 않지만 12월에 햇빛 쨍쨍한 곳이라면 어디든 좋지!
어디 한번 일주일 더 놀아보자! 아니, 일해보자 베짱이!
샌디에고에서 출항 준비를 하는 크루즈.
크리스마스도 잘 부탁해!
일주일 뒤엔 진짜로 여길 떠나 집으로 갈게, Mexico, here I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