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from the high seas
텅 비우고 떠났던 내 숙소에 다시 들어와서 짐을 풀었다.
그래, 배에서 일곱 밤 더 자고 진짜 집에 가는 거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탑승한 승객들은 크리스마스를 크루즈에서 보낼 작정으로 왔으니 얼마나 설렐까?
승객들도, 직원들도 한껏 들뜬 마음을 안고 멕시코행 크루즈가 시작됐다.
크리스마스 저녁엔 Entertainment team dinner party가 있을 거란 공지를 받았다.
소그룹으로 나눠서 secret Santa(마니토)도 하기로 했다. 재밌겠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드레스코드가 남자는 suite & tie, 여자는 floor length dress라는 사실!
띠로리...
짧은 원피스는 많아도 긴 드레스는 없는데...
드레스 없어서 파티 못 가면 안 되지!!
자, 어디 보자. 크리스마스 전에 쇼핑할 기회는 세 번.
세개의 항구도시:
Cabo San Lucas, Mazatlan, Puerto Vallarta.
파티용 긴 드레스를 사야 한다니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것도 멕시코 휴양지에서, 단시간에.
Cabo San Lucas는 여러 번 가본 곳이라 느낌이 딱 왔다. 여기엔 드레스샵이 있을 리가 없지. 실패!
두 번째 기회의 도시 Mazatlan에선 친구 저스티나와 함께 택시를 타고 큰 쇼핑몰에 갔다.
오.. 이 정도 규모 쇼핑몰이면 가능할지도?
NOPE!
키작녀에게 수선 필요 없는 긴 드레스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 ㅠㅠㅠㅠㅠ
당장 20cm 힐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ㅠㅠ
디자인을 볼 여유도 없었다. 그냥 내 몸에 맞는 긴 드레스면 일단 사야 했다.
혹여 사이즈가 맞는다고 해도 너무 비싸면 살 수 없었다. 이번 한번 입고 옷장 구석에 자리만 차지할게 뻔하니까.
고등학교 Prom dress 고를 때보다 더 많은 드레스를 입어봤지만 모두 탈락이었다.
ㅠㅠ
마지막 희망, Puerto Vallarta 항구에 내렸다.
Puerto Vallarta는 비치도 예쁘고 놀거리도 많고, 집에 가기 전 내 마지막 정박지인데, 놀지도 못하고 미션 수행만 하고 떠나겠네.
비치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쇼핑몰로 향했다.
이번에 드레스를 못 사면 크리스마스 파티에 못 가.. 그럴 순 없어..ㅠㅠ 마니또 선물 받을 거야..
집에 가기 전에 크리스마스 즐길거야!!
결과는...
성공!!!!!!
나한테 살짝 헐렁했지만 땅에 많이 끌리지 않는 완벽한 기장의 드레스였다. 할렐루야!!!!!!!
디자인도 가격도 착했다.
땅꼬마 사이즈 롱드레스 발견하기, 성공!!!!!!!!
룰루랄라 드레스 쇼핑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치고
배로 돌아오는 길에 제이슨을 마주쳐서 같이 걸어왔다.
제이슨은 샵에서 일하는 친군데, 콜롬비아에서 온 몸짱맨이다.
수트 입고 샵에서 일하는 모습만 보다가 하루는 crew area에서 운동복 민소매 입은걸 보고 깜짝 놀랐다.
와우 ~_~ 멋있는 친구일세..
제이슨은 한국어가 interesting 하다며 나중에 한글로 타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뻥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 파티용 드레스 한벌 구하느라 멕시코 도시 세 군데를 수색했다니..
그 시간에 해변에 가지 못한 게 아쉽지는 않았다. 하와이에서 놀만큼 놀았잖아~
막판에 간신히 산 floor length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크리스마스 디너파티에 갔다.
우리가 늘 가는 뷔페가 나름 꾸며져 있었다.ㅋㅋ
롱드레스 필수로 한 것 치고 좀 허접한 데코였지만, 애썼다~~~~ ㅋㅋㅋㅋㅋ
내가 여행스케치하는 걸 아는 미켈란젤로는 딱 내가 가지고 다니는 사이즈의 스케치북을 secret Santa 선물로 줬다.
지금 쓰는 스케치북 다 쓰면 이걸 쓰라는 말과 함께. ㅠㅠ 감동...
아, 미켈란젤로의 여자친구가 이번 크루즈에 탔다.
소문으로만 듣던 클래식 피아니스트 그녀!
그녀는 모르지, 미켈란젤로는 나에게 수줍게 고백했었다는 걸........ 하하.........
크리스마스 만찬을 밴드와 함께 먹고, 새로 온 클래식 연주자들의 연주 감상하고, 메인 공연도 보고,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저녁을 보냈다.
항상 짧은 원피스만 입다가 처음으로 긴 드레스를 입으니 "lady"가 된 기분도 들고,
크루즈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도 색다르고, 며칠 뒤 winter wonderland 시카고로 가기 전에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만들어졌음에 감사한 크리스마스였다.
그리고 아빠로부터 우리집의 메리크리스마스 사진도 받았다.
트리 큰 거 하나 사야겠다.... 너무 조촐해.. ㅋㅋㅋㅋㅋㅋ
새해는 가족이랑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