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폭풍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을 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 비비안 그린
나의 20대는 기쁨과 절망, 환희와 암울의 반복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들어가서 좋았던 것도 잠깐.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잘난 친구들을 보며 기가 죽었다. 그들 앞에서 내 생각을 말하는 것도 글로 표현하는 것도 부끄러웠다. 내 안에 있던 작은 용은 어느새 쑥쑥 자라서 내가 잘했던 것조차 머뭇거리고 못하게 만들었다.
2000년대 초 한참 IT, 인터넷 기업이 성장할 때 나도 유망한 인터넷 회사의 일원이 되었다. 좋은 조건으로 꽤 많은 스톡옵션을 받았다. 나도 1년 뒤에는 20대 백만장자가 되어 신문 기사라도 나올 줄 알았다. 달콤했던 꿈은 잠깐, 꿈에서 깬 뒤의 현실은 쓴 맛이었다. 그 1년을 며칠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닷컴버블이 꺼지며 우리 회사도 문을 닫았다. 1년 동안 ‘우리 베이비’라 부르며 내 회사라도 되는 듯 열심히 재미있게 일했던 회사라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럼 그렇지, 너 까짓 게 무슨 그런 꿈을...’ 잠시 조용했던 용은 보란 듯이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이제 다시는 새로운 도전도 꿈도 꿀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곧 스물아홉이 된다는 우울함과 세상 모두가 나를 비웃는 것만 같은 자괴감에 빠져 힘든 겨울을 보냈다. 다행히도 백수의 삶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전 직장의 고객이 자신의 회사에서 일할 것을 제안했다. 그 회사는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에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뉴욕이나 홍콩에서 일하는 국제적인 커리어 우먼을 꿈꿨는데... 내게도 이런 기회가 오는구나. 라며 감격했는데, 이번에도 현실을 그렇게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제안받은 회사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안티구아(Antigua)’라는 곳에 있었다. 아무리 검색해 봐도 과테말라의 수도 안티구아만 나왔다. 고객이 말하는 안티구아는 카리브해에 있는 작은 섬이라고 했다. 이름조차 못 들어봤던 그곳은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24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 우리나라의 반대 편에 있는 그런 곳이었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많이 고민했다. 먼저 다른 사람들과 상의를 했다. 거의 반반이었다. 프로스 앤 콘스(Pros & Cons)를 정리하고 각각의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둬서 분석해 봤지만 그래도 결정이 나지 않았다. 결국 엄마의 결정에 따르기로 맘먹었다. 엄마는 그동안 나의 용을 가장 튼실하게 키워 준 분이었다. 그런 엄마라면 당연히 반대할 터였다.
“그런 곳은 돈 주고도 가는 곳 아니니? 그런데 돈 받으면서 일하러 가는 건데 왜 안 가?”
엄마는 멋진 해변 사진을 보며 쿨하게 가라고 하셨다. 엄마가 반대하면 그 핑계로 안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단숨에 가라고 하시니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엄마는 20년 전 내가 발레를 배우겠다고 물어봤다면 허락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용은 엄마가 아닌 내가 키우고 있었던 걸까?
한 달쯤 후 용과의 싸움에서 작은 승리를 거두고 안티구아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은 내 삶에서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이십 대 후반이 될 때까지 별 문제없는 삶을 살았다. 다른 재능이 없었기에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공부만 했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괜찮은 대학에 들어갔다. 일찍 꿈을 찾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했던 터라 순조롭게 나의 길을 찾아갔다. 공부도 알아서 했고, 전공도 진로도 스스로 결정했다. 원하는 대로 다 된 건 아니었지만 크게 아쉬울 것도 없었다.
열심히 일했고, 퇴근 후에는 자기 계발에도 열심인 그런 직장인이 되었다. 상사에게는 일 잘하고 믿을 수 있는 직원이었고, 엄마에게는 강남의 좋은 빌딩에 위치한 좋은 회사에서 일하는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모두 스스로 선택했고 내가 원하던 일이었다. 그렇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았던 걸까? 왜 그렇게 뭔 지 모를 불안감에 쌓여 하루하루 답답한 날을 살았던 걸까?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았고, 스스로 이루어 갔다’고 믿었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장, 단기 플랜도 갖추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곧 다시 제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안티구아는 잠시 휴식 같은 곳. 6개월의 계약이 끝나면 돌아와 그동안의 경력을 살려 다시 비슷한 일을 하려고 계획했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까 조금 긴 휴가를 갖는 거라면서... 그런데 조금 긴 휴가일 뻔했던 안티구아는 새로운 삶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삶은 용이 지키던 튼튼한 성에서 벗어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을 떠나 안티구아로 올 때부터 성은 이미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금이 가던 성을 허물 수 있었던 건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덕이었다. 클럽에서 음악을 즐기며 춤을 추는 친구들을 보고 부러워하며 돌아섰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다.
“네가 우리처럼 못 하는 건 당연한 거야. 우리는 타고났거든. 넌 그냥 너의 춤을 추면 돼.”
맞는 말이다. 내가 그들보다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들보다 영어를 못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들의 음악과 춤을 못하는 건 당연한 건데, 왜 못한다고 그냥 안 하려고 했을까.
‘못해도 괜찮아.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를 받아들이자 드디어 그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었다. 완벽한 몸매가 아니지만 비키니를 입었고, 뻣뻣한 몸에 박자를 놓치기 일쑤였지만 같이 춤을 출 수 있었다. 그러자 춤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재미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계속 막춤을 추고 싶지는 않았다. 저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제 조금은 잘하고 싶었다. 춤을 정식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