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주를 다녀온 후에 한국에서 좋은 날씨를 볼 때마다 '아 오늘 날씨가 호주 같구나'하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이 삶의 고단함에 치일 때마다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버틴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지난 10개월의 호주 생활임에 틀림없다. 시드니는 호주에서도 날씨가 좋은 편인데, 일 년 내내 온도가 온화하고 하늘이 맑으며 비도 적당히 내린다. 이런 날씨 속에서 살고 최저 임금이 높고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그런지 호주 사람들은 대체로 편안해 보이고 타인에게 친절하다.
백패커스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 나는 호주 통신사와 1년 계약을 하고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었다. 보다폰 통신사 주인과 ANZ은행 직원이 모두 중국 사람들이었다. 호주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중국 사람들을 만난 것 같다. 내가 느낀 중국사람들은 이리에 밝다는 것이다. 아무튼 영어가 약하면 이런 행정절차를 다루는 것이 어렵다. 뭔가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70%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워홀 선배들의 친절한 블로그 포스팅과 구글 지도가 없었더라면 나 혼자 시드니에서 10개월 동안 지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 세금 번호만 신청하면 시드니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준비는 마친 것 같다. 이제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달에 40불로 넉넉한 데이터와 500분 국제 전화 무료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어서 아주 요긴하게 잘 썼던 기억이 난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와이파이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넉넉한 데이터는 중요한 것 같다.
처음에 호주에 갔을 때 며칠간은 배가 고팠다. 마트 물가가 무지 싼지도 모르고 외식으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식들만 먹었고 젊은 내 위장을 채워 주기에는 소시지 파이, 샌드위치 등은 양이 적었다. 그러다가 백패커스에 유럽 친구들이 거의 다 식재료를 사서 요리를 만들어서 먹는 것을 보고 나도 용기를 내서 근처 coles라는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보았다. 웬걸 식재료가 무지 싸다. 특히 소고기가 100g에 우리나라 돈으로 2~3천 원 밖에 하지 않았고 빵도 무지 큰데 2불 밖에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비로소 나는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커피를 좋아하고 카페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즐겼다. 커피 맛에 민감한 터라 백패커스에 공짜로 마실 수 있는 캡슐커피는 생략한 채로 크로스백 하나를 맨 채로 아침 일찍 카페로 향했다. 그때는 호주카페가 대부분 개인 브랜드로 주류를 이루는지도 모르고 습관처럼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인 글로리아 진에 들어갔다. 그런데 커피가 레귤러 사이즈가 3.8불(한화로 약 3천 원)밖에 안 한다. 호주 외식물가는 웬만하면 한국보다 1.5배는 비싼데 커피는 정말 싸다. 덕분에 나는 부담 없이 매일 아침 맛있는 라때로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호주 커피는 정말 맛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호주 라때의 맛을 따라가는 곳이 드물어서 슬펐던 기억이 난다.
오전에는 백패커스 근처에 있는 카페(사거리에 위치했는데 정말 명당이었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출근하는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여행하는 사람들을 창밖으로 구경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씩씩하게 여행을 떠났다(구글 지도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시드니는 오팔 카드라는 대중교통 전용카드가 있는데, 그것만 있으면 아무거나 쉽게 탈 수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학교를 참 좋아한다. 아마도 내가 당시에 유학을 꿈꾸고 있어서 해외대학들에 관심이 갔던 것 같다. 나의 첫 여행 장소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시드니 대학교였다. 처음으로 호주 버스를 타본다. 근데 호주 사람들이 타면서 버스기사에게 Hi~라고 인사를 한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 했다. 그리고 종종 내리면서 Thank you라고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호주에서 제일 좋았던 점이 바로 인사를 잘하는 것이다. 그들은 Goodmorning, Hi, How are you, Sorry, Thank you 같은 인사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살짝 부딪혀도 sorry라고 먼저 말해주고 길을 살짝 비켜줘도 thank you라는 말을 해준다. 이런 문화에서 10개월 살고 온 나는 지금도 '고마워요'와 '미안해요'를 습관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과 마주치면 꼭 인사하려고 노력한다(가끔은 이상한 눈빛을 받기도 한다). 아무튼 버스에서 내려서 캠퍼스로 걸어가는데 손을 잡고 걸어가는 커플이 내 앞을 걸어가고 있다. 그 모습이 계속 보고 싶어서 그들을 추월하지 않고 뒤따라서 걸어갔다. 학교 옆문으로 들어가니 학기 중인지 학생들이 꽤 많았고 동양인들이 과반은 되는 것 같았다. 돌아다니다 보니 문이 열린 강의실도 있어서 슬쩍 들여다 보기도 했다. 시드니 대학은 본관이 정말 예뻤다. 영국풍 건물로 호그와트가 연상되었고 고풍스러웠다.
그렇게 알찬 하루를 보내고 백패커스에 돌아오면 1층 로비는 저녁을 준비하는 유럽 친구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나는 여기서 거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서로 모르는 사이일 텐데 금세 친해져서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테이블 한편에서 간단하게 만든 참치 볶음밥을 먹으면서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한 독일 친구가 자신이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서강대에서 일한 적이 있다면서 나를 반가워했다. 그리고 옆에 앉은 덩치 큰 호주 남자는 대놓고 두 손으로 눈을 찢는 시늉을 하며 인종차별을 한다(물론 장난으로). 나는 여기서 내 영어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유럽 친구들 중에 그 누구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 왜 나만 영어를 못하는지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그래도 나에게 모든 상황이 새로웠기 때문에 혼란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일상이었다. 세상은 준비된 자에만 기회를 준다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때 정말 용감했고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는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