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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Feb 04. 2021

     예쁜 꽃물의 사랑으로 !

나는 봉숭아꽃입니다. 어느 날 공동체 생활하는 건물 관리인이 앞 화단에 저의 열매인 씨앗을 쏟아부었습니다.


만발하게 핀 꽃밭을 바라보는 이의 맘도 풍성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리가 비좁고 복잡할 정도로 친구들과 오밀조밀 붙어 자랐습니다.    


그 무렵 제가 본 사람들의 모습은 더위를 못 참아 땀이 삐질삐질. 마스크는 꼭 하고 다녔습니다. 얼마나 더울까 싶었습니다. 그 생각도 잠시, 우리는 연한 핑쿠핑쿠색과 진한 핑쿠핑쿠색, 짬짜면처럼 반반 섞인 색을 뽐내며 자기 몸 색깔이 최고라고 한창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나는 쪼꼬미들이 좋아하는 색이니 다섯 살 공주님 손톱을 물들이고 싶어!”

“나는 단아하고 청초하니 스물넷 예쁜 아가씨의 길고 고운 손톱 위에.”

“나는 마흔 엄마랑 아가랑 셋투셋투로!”    


모두들 소박하고 정감 있는 꽃으로 활짝 피고 난 뒤의 꿈들이 다부졌습니다. 바로 시들어 버리지 않고 누군가 손톱의 고운 물들임으로 오래오래 남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들이 제 몸 색깔에 취한 듯 자랑과 뽐냄에 가만히 보고 있던 초록 잎들이 말했습니다.

“너희들처럼 나도 누군가의 손톱이나 발톱을 물들어 오래 기억되고 싶어. 예쁜 물이 나올까?”

“걱정 마, 너희도 우리의 멋진 친구니까 예쁜 꽃물이 나올 거야.”

“우와~~~~ 정말?”


연한 핑쿠, 진한 핑쿠, 반반이 섞인 핑쿠 꽃들의 이야기를 들은 초록 잎들은 희망찬 꿈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대로 시들어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손톱 위에 남아 사랑과 추억, 정감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소망과 희망은 맘 속에 품는 자에게 온다고 누군가 말했던가요.    


며칠 지나지 않아 카센터를 운영하는 70대 어르신 부부께서 지나가다 봉숭아 잎을 보았습니다.

“여보, 여기 좀 봐요. 봉숭아꽃이 많이 피었어요.”

“그러네요. 울 엄니 앞마당 장독대 옆에 봉숭이꽃 많이 심었었는데... 서울 땅에서 보다니”

“초록잎 좀 따가서 울 여보 손톱 물들여 줄까 봐요. 평생 찌그러지고, 망가지고, 낡은 차

반듯하게 만들어 예쁜 옷 입히느라 애썼는데... 오늘 밤엔 우리 여보 손톱 곱게 해 줄게요.”

“허허, 당신도 차암.”    

저와 제 친구들은 숨죽여 그 70대 부부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느낌이 이상하여 살짝 곁눈질로 봤더니 초록 잎은 어느새 감동의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도 원하는 곳으로 가 예쁘게 꽃물 들여줘.”    

초록 잎들은 70대 부부가 한 잎 한 잎 따서 손안에 폭 감싸 안음이 포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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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백반도 좀 넣고 절구에 넣어 콩콩콩 빻아놓을 테니 손 깨끗이 닦고 와요.”

“허허 아무리 닦아도 요만큼 밖에 안 되네요.”

평생 일만 한 자기 손을 면밀히 들여다본 적도 없었습니다. 아내 앞에 불쑥 내밀려고 하니

세월의 때가 묻어 내밀기가 쑥스러웠습니다.    


“제게 있선 가장 자랑스럽고 위대한 손이어요. 우리 가족과 많은 사람들의 차를 반짝이게 닦느라 밤도 낮도 없었잖아요. 오늘은 제가 여보 손을 빛이 나게 물들여 드릴게요.”

“당신 밖에 없소. 고마우이. 허허허”    


몇 달이 지나도 아내가 정성 들여 물들여 준 봉숭아 물은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시집간 딸냄의 작은 집 하나 팔려고 카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부동산 사무실엘 들렀습니다.

“어머, 사장님 봉숭아 꽃물 들이신 거예요?”

감동하기 잘하는 부동산 사무실 실장님이 바로 알아봐 주셨습니다.    

“허허허, 울 마눌님이 하도 하라고 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좋아서 웃을 때 입이 귀에만 걸리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머리끝까지 하늘 끝까지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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