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행복해도 될까요?

by 헬로해피 최유영

차지증후군 J의 사회활동을 지원할때 일입니다. J는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재활병원으로 이동하여 치료를 받습니다. J와 저는 3년째 이 병원에서 지내고 있어서 이곳 사람들과 환경에 많이 익숙해져 있답니다. 그래서 J도 저도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 어느 곳에서보다 편안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만의 느낌이 아닌 모양입니다. 장애 아동의 어머니들도 이 병원에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하다고 합니다.


아픈 내 아이에 대해 설명이 필요 없는 공간이니까요.

아픈 내 아이에 대한 시선이 두렵지 않은 공간이니까요.

이곳에서 만나는 장애아동 부모님들, 활동지원 선생님들 그리고 치료사 선생님들까지 모두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관계들이니까요.


다른 곳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을 해야 하는 일들이, 또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에 위축이 된다고 합니다.


한 번은 병원 밖에 나갔다 들어 온 겨루 어머니가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겁니다.


“왜 내 행복과 불행을 그들이 정하는 거죠? 오늘의 난 이렇게 좋은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병원 앞 광장을 겨루와 함께 지나다가 문화센터의 강좌를 홍보하는 분들과 마주쳤다 합니다. 겨루 어머니가 그분들이 권유를 거절하고 병원으로 들어오는데 자신의 뒤에 대고 말을 하더랍니다.


“에고…, 얼마나 힘들까… 쯧쯧.”


겨루 어머니는 자신의 뒤에 대고 하던 그분들의 말에 더 기운이 빠지더랍니다. 화가 나더랍니다. 그래서 뒤돌아서서 “선생님, 저 괜찮거든요?” 하고 기세 좋게 댓구를 해주고 들어왔다고 해요. 그러고 나서 저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정말 불행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더 위축된다고. 또 겨루가 이런 말을 듣는 것이 너무 싫다면서 말이죠.


저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어요. J와 병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두 분의 할머니가 계셨어요. 보통의 경우 병원 엘리베이터에 타는 분들은 우리의 사정을 잘 알아서 배려와 공감을 하는 사람들인데 이 두 분은 잘 모르셨던 모양이에요. 은행에 다녀가는 분들이 아닌가 싶어요. 자꾸 저와 J를 측은하게 보는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기분이 별로였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 겨루 어머니의 기분을 너무 잘 알 것 같습니다. 물론 걱정을 해주시는 마음이란 거 아주 잘 알면서도 왠지 불편한 마음이 더 커서 빨리 그 장소를 벗어나고 싶은 그런 마음요.


물론 아픈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아마도 매일이 절망과 좌절의 반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부모는 아이들이 주는 기쁨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스럽고 소중해서 케어 하면서 행복한 마음도 놓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요.


겨루는 엄마의 엔도르핀입니다. 해피바이러스입니다. 항상 사랑스러운 미소를 품고 있지요. 겨루를 보기만 해도 굳었던 얼굴이 환해지곤 합니다. 치료를 끝내고 나와서 엄마를 향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환하게 웃어주는 겨루, 그때의 겨루와 엄마는 참 행복해 보입니다. 어찌 겨루와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병원에서 지내다 보니 아픈 아이들의 부모를 참 많이도 봅니다. 왜 이렇게 아픈 아이들이 많은지 많이 속상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귀한 사실 또한 깨닫게 되죠. 우리 아이들은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것, 이 아이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 ‘이들은 적어도 오늘 이 순간만큼은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병원의 분위기를 말씀해 드릴까요? 항상 웃음이 끝이질 않습니다. 엄마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밥을 차려먹고 서로가 서로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챙기고 훈육합니다. 저는 이들의 하하 호호 수다소리가 음악소리만큼 듣기 좋습니다. 적어도 오늘! 여기!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의미이니까요.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또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해서 안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은 모두 각자의 삶의 환경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감정을 넘나 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도 불행도 함께 공존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당신의 내적 고통을 지레짐작하고 ‘이런 당신은 불행 한 사람이 아닌가요?’의 시선과 말을 보낸다면 기분 좋을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타인의 삶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그리고 행복을 재단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필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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