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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석 Aug 20. 2019

바람소리

모처럼 쉬는 평일.

출근을 안해도 되는 생소한 월요일.


다음날 출근을 안한다는 이유로 전날 캠핑을 다녀온 피로감에도 

새벽까지 거실 소파에서 맥주캔 몇개를 비우며,

결말을 뻔히 알고있는  TV속 영화를 늦게까지 봤다.


하지만, 출근을 안해도 되는 월요일은

출근을 해야되는 월요일의 아침보다 더 일찍 눈이 떠진다.



조용히 집을나간 와이프가 차려둔 밥상을 보고,

나중에 진짜 백수가 되어도 밥상을 차려줄런지 하는 

맞출수 없는 문제의 답을 잠시 고민했다.


아침겸 점심을 겨우 먹고 나니,  오전시간인데도 무척 덥다.

날씨의 변천사를 논할만큼 오래 산것은 아니지만,

요즘 우리나라 날씨는 동남아의 어느도시 그것도 

차도많고, 사람도 북적이는 방콕이나 마닐라 같은 그런곳의 날씨가 되어버린거 같다.




문득 집앞 카페가 생각나, 외출도 할겸 책을 두어권 챙겨 집을 나섰다.

슬리퍼를 끌며 걷는 주차장 옆 화단에서는 간밤에 충분히 마셨는지, 

이파리를 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어제 내린 빗물을 쉴새없이 증발시킨다.


뜨거움과 끈적임에 바쁜걸음으로 들어선 카페입구.

시원함을 느끼기도 전에,

'이런 평일날, 점심때도 안된 이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을줄이야.'

번호표를 받고 입장을 기다리지 않은것만도 다행이라고 느낄 정도이다.


그나마 구석진 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노트북을 꺼내고, 책과 노트를 편다.

이어폰을 꼽고 즐겨듣던 피아노 곡을 조금 크게 튼다.


몇장 남지않은 읽다만 책을 마져 읽었다.

마지막장을 덮고나니,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나질 않고,

한모금도 마시지 않은 아이스커피는 나대신 땀을 흘리고 있다.


대각선 맞은편에 앉아있는 서른중반의 건강한 두명의 아줌마.

그리고 옆에 앉아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그 이들의 아이들.


그 아줌마들의 세상사는 불만과 희망사항은 그 덩치보다 컸고,

탁자위의 쌓인 먹다 남은 빵들과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알수없는 이물들은

여기서 점심까지 해결하는 듯 보였다.

게임하는 아이들의 휴대폰밖 리액션은 실제 전투보다 더 박진감이 넘쳤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빵부스러기 만큼 효과음 또한 구체적이었다.




커피를 한모금 머금고, 카페안을 한번 둘러본다.

주택가 골목골목, 상가건물 한집 건너 한집씩 생겨난 커피숍.

과잉공급에 따른 시장붕괴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온동네 아줌마들이 모두 여기에 있는 듯 했다.

하기야 대학가 근처라면 또 모를까,

주택가 근처의 커피숍이니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연예시절 데이트, 휴대폰이 없던 시절 친구와의 약속장소 또는,

사업상 손님과의 만남 같은  목적을 둔 방문은 이젠 극소수 인듯 하다.


주택가 커피숍은 남편을 사지(死地)로 출근시키고

모여드는 그이들의 지극히 비생산적인 피난처이다.




지난주 독립한 딸아이의 짐정리를 도와주러 아내와 같이 경주를 찾았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길을 가며,

주말에 집에 오지 못하게 한걸 다행이라 여겼다.


짐정리를 끝내고,

딸아이의 대충 먹었다고는 하는 점심이 거짓말인 듯 하여

뭐 좀 먹고, 바람이라도 좀 쐬자며 비오는길을 나섰다.


너무 상업적으로 봐뀌어가는것 같아 조금은 안타까운 대릉원 옆.  

황리단길....


메인도로 옆쪽으로만 상가가 만들어 지는것 같다가

이제는 골목과 그 골목에서 이어지는 골목,  또 그 이어진 골목의 끝까지

기와라고 이고있는 집들은  모두 다 지붕만 남긴채

한동안 유행했던 어색한 투블럭의 머리를 하며 고쳐지고 있다.


예전에 몇번가본 분식점에서

떡볶이랑 김밥을 기분좋게 먹으며,

자유여행중이라는 프랑스인 가족들의 서툰 한국말 인사에 

하필이면, 그이들의 경주 투어날 내리는 비를 대신 원망했다.




옛날식 쌍화차를 한잔 사겠다며 손을 끄는 딸아이를 따라

다시 못 찾아나올  미로같은  골목길을 꺽고 돌며 걸어갔다.


'양지다방' 



예전 어릴적 살았던 동네에도 같은 이름의 다방이 있었다.

군대시절 후문쪽에 있었던 작은 마을에도 같은 이름의 다방이 있었고,

- 그마을 구멍가게 딸래미는 군대시절 내 선임이 병장때 임신을 했고, 신촌에 있는 대학을

다니던 부자집 아들인 선임은 제대후 바로 결혼을 해야했다. -

첫직장을 잡고 첫번째 부임한 현장근처에도 같은 이름의 다방이 있었고,

- 그다방의 여종업원은 우리 사무실에 배달도 자주 오고, 가끔씩 술도 같이 마셨다. -


시절만 조금 되돌리면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은 이름의 다방이다.


농한기인 겨울철,

동네다방에 레지가 새로 왔다며 안그래도 할일없는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청자담배를 피워대며,

새로온 언니 면상이며, 왔다갔다하는 언니의 몸매도 앞뒤로 자세히 훓는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서 사준 야쿠르트도 옆에 앉아 먹어줘야 되는데, 

새로온 레지는 의자에 엉덩이 붙여볼 시간도 없이 

스쿠터를 몰고 배달을 또 나가 버린다.


'박양은 고향이 어디래?', 

'쟤는 나이도 얼마 안묵은기, 와저래 들어비노'

'가시나, 그래도 가슴은 볼만하데이', 

'가슴이 좋은지 니가 봤나?  제대로 한번 무봐야  좋은지 알제'


나름 느낀 소감들과 궁금증을 한마디씩 하고, 

'쓰벌놈들, 와가 쳐묵지 와자꾸 배달을 시키고 지랄이고' 하며

생담배를 태우며 박양을 기다린다.



이젠 없어진 베를린 장벽을 모티브로 한건지,  

인공수초에 금붕어만 사는 덩치 큰 수족관 너머에서는

돌아가신 모친 대신 이모손에 억지로 끌려나온 중학교 서무과 김양이 

애꿎은 성냥개비만 꺽으며, 

지난가을 농협 조합장 선거에 떨어진 최씨 아저씨의 둘째아들과 맞선을 봤다.


딸아이가 밀어놓는 쌍화차 속 노른자을 보며 옛날 양지다방을 생각해본다.



대각선에 앉아있던 두분과 두분의 축소판들은

점심시간을 알리는 학교 종소리 마냥 

카페 안 사람들에게  '점심은 내가 살께' 라는 커다란 말과

산만한 빵부스러기만 남기고 종종거리며 나간다.

카페에 찾아온 갑작스런 적막감에 실내는 더 시원해진다.




요즘은 캠핑을 미니멀하게 다니고 있다.

어저께도 그랬다.

텐트도 작은거에  타프도 작은걸로 준비하고

음식도 딱 먹을 만큼만 가져갈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해먹 만큼은 꼭 챙겨간다.

얼마전에 새로 장만한 해먹이 참 맘에 든다.

가볍고, 부피도 작고,,,,가격도 놀랄정도로 착하다. 

이럴땐 중국이 고맙기까지 하다.


텐트 옆,  숲속 

믿음직한 나무에 해먹을 묶고

파블로 카살스의 첼로를 듣고 있노라면

그냥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진다.


해먹에 누워 책을 읽다보면 졸음이 온다.

지루한 내용이 아닌데도 잠이 오는건

조용한 흔들림 때문일 듯 하다.


잠시 한두시간 오침이라도 할 요량으로 제대로 자세를 잡고 누우면,

오던 잠은 어느새 사라진다.

자연스레 보여지는 하늘과 그속의 눈부신 나무들



카페안이 많이 조용해졌다.

시원한곳에서 공부하겠다며 집에서 나온 학생커플은

책은 안보고 서로의 손만 만지작거린다.


살짝 열린 창문사이로  바람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바람은 소리가 없다.

바람소리는 바람이 스스로 내는 소리가 아니다.


바람소리를 흉내내지는 못하지만, 

숲속 흔들리는 나뭇잎이 보여주는 바람소리를 참 좋아한다.


커피 한잔을 두고  몇시간을 버티고 있다보니,

아무도 주지않는 눈치가 보인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2019.  8.  19.    ㅅㅓㄱ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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