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아비가 17화

당신은 여럿이다

by 스침

질서의 재편은 당연하게 불안정을 동반하지. 현재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진통이 극심해. 작은 국가 단위에도 그럴진대, 세계질서가 요동치니 걱정이야. 사정이 그러하니, 국제정치학자들은 세계대전 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뉴스를 보다, 침팬지과의 '보노보'를 떠올렸어. 이 녀석들은 맛난 먹이를 두고 갈등의 기미가 보이면 서로의 엉덩이를 비비는 행동으로 긴장도를 낮춘다고 해. 인류에게도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386세대로 분류됐던 내가 686이 되는 동안 이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반목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어. 아니, 골은 더 깊어지고 간극은 좁혀질 기미가 안 보여.이 모든 상황이 너무 위태로워 보이는 게 다 내가 늙은 탓이었으면 좋겠어.


종로와 명동 언저리 어디에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란 상호를 단 커피숍과 경양식집들을 봤던, 혹은 들렀던 기억이 있어. 당시 김춘수 선생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읊조리며 유난을 떨기고 했고 말이야.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는 마지막 구절이 떠올라. 얼마 전 피카소, 마티스와 함께 20세기의 대표 화가인 샤갈이 1985년까지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어. 나와 20년 넘게 한 시대를 살았다니. 거의 한 세기를 산 그의 그림 중엔 <눈 내리는 마을>이 없단 것도 알았지. 단지, 그의 고향 마을엔 눈이 잦았고, 그 풍경이 실향민인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했던 거지. 그는, 화가의 꿈을 이루지 못한 독재자 히틀러가 가장 혐오할 만한 러시아계 유대인이었어. 1,2차 세계대전이 도륙한 유럽의 복판에서 모욕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의 그림은 사랑을 버리지 않았다지. 흥미로운 사실 하나. 히틀러의 본격적 폭압이 이뤄지기 전, 유대인 화가들의 그림이 전반적으로 어두워졌다고 하네.


아침편지를 쓰는데, 빵집 아들이 2박 3일 예비군 훈련을 간다며 인사를 하네. 당신이 태어나기 전, 동원훈련장으로 향하며 택시기사분께 “번거롭기 짝이 없는 시간낭비”라며 투덜댔더니, “이보게. 총을 쥐어준다는 건 아직 쓸모가 있단 뜻이네”라고 했던 기억이 났어. 쓸모가 없어진 난 총 대신 쥔 펜으로 뭘 할 수 있을까? 빵집을 나서며, 계산대를 지키던 사장님과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예비군훈련 간 사람은 한 명인데, 아들과 남자친구가 떠났으니 두 사람이 떠난 거네요”라고 했어. 당신도 그런 존재란 거 잊지 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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