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람 Aug 30. 2023

마지막 호주 일기, 시드니 안녕. 월드컵 안녕.

8.6. 호주 마지막, 한국으로 갈 시간

 마지막 날 아침은 요란했다. 층간소음부터 비행기 날아다니는 소리, 그리고 공항까지 가야 한다는 걱정으로 잠도 설쳤다. 누가 다른 방 문을 쾅쾅 두들기는데 진짜 무서웠다. 와이파이도 유료, 화장실도 간이 화장실, 수증기 때문에 화재경보기 울리면 나보고 돈내라는 너무한 호텔. 한국은 대충 숙소를 잡아도 어딜 가나 비슷하게 괜찮았던 거 같은데. 한국 숙소가 이상할 정도로 좋은 건가 싶다. 삶은 계란을 까먹고 얼른 나섰다. 짐도 많이 풀지 않아 가방을 금방 쌀 줄 알았는데 캐리어는 더 부풀어서 닫기가 힘들었다. 잠옷으로 입던 옷을 위에 껴입고 나서야 가방이 닫혔다. 데이터는 분명 2기가가 남았는데 다 썼다고 서비스를 종료해 버렸다. 어이없어 정말. 전날에 구글 지도에서 미리 찾아서 캡처해 뒀길 망정이지. 기차역의 리프트는 하필 내려가는 리프트가 고장 나 있었다. 호주 와서 근성장제대로 했다. 묵직한 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마지막 날이라고 쉽게 보내주지 않으려는 호주는 은근 나한테 끈적하게 구는 편인 듯.

 시드니 공항에 다시 왔다.

 추레한 행색으로 비즈니스 라인에 줄을 섰다. 당신 비즈니스 맞습니까? 하고 형식상 물어보는 질문이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처럼 들리긴 하는데 나는 당당히 '맞다.'고 했다. 나름 비즈니스라고 수속까지 스페셜 라인에 설 수 있었다. 돈이 좋긴 하구나. 

 게이트는 60에서 갑자기 50으로 바뀌었다. 변덕쟁이 젯스타. 하지만 난 이제 익숙해. 어플을 자주 확인한 덕분에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비즈니스 먼저 입장시켜 주는 소소한 즐거움도 누렸다. 비행기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은 이코노미, 왼쪽은 비즈니스로 구역이 나누어지는데 왼쪽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낯설고도 좋았다. 젯스타 비즈니스가 대한항공 이코노미보다 저렴한데 기분은 더 좋게 만들어 준다. 맨 앞줄에 앉아 다리 공간도 여유롭다. 화장실도 가깝다. 올 때는 화장실이 가까워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화장실 가까운 게 특권처럼 느껴진다.

 웰컴 드링크라고 오렌지 주스도 준다. 앞에 생수도 있길래 그것도 얼른 마셨다. 물로 배가 부를 지경인데 손에는 아까 산 롱블랙이 있다. 비행기 이륙할 때 어찌할 지 모르겠어서 그것도 시원하게 마셨다. 식사 나올 때까지 먹고 있어라고 프레첼과 주스를 또 준다. 여기 한국 승무원분이 계셔서 참 좋다. 한국인이 주는 그 편안하고 따스함. 처음 본 사람인데 너무 반가워서 혼자 들떴다. 개인적으로 기내식은 별로였다. 올 때 먹은 버터 치킨 카레는 아주 맛있었는데 오히려 비즈니스 메뉴가 아쉽다. 요리는 라비올리로 하려다가 호박이 있대서 양고기로 바꿨다. 양고기에도 호박 샐러드가 있었다. 양고기는 냄새가 심하게 나서 한 입 먹고 말고 샐러드랑 매쉬 포테이토만 조금 먹고 말았다. 레토르트 식품을 멀리하라는 내 몸의 가르침인가? 집에서 해 먹는 밥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깨달아라고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가 보다.

 이번 여행으로 느끼건대 내 적정 해외여행 기간은 일주일이다. 그보다 길어지면 고통스럽다. 근데 또 웃긴 게 호주를 뜨니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고생을 좀 해서 그런가. 네팔만큼의 미운 정은 아닌데 어학연수보다 더 다양한 걸 느껴서, 여행의 중심에는 축구가 있어서, 어쨌거나 즐거워서지 싶다. 아쉽다해서 한국 가고 싶지 않단 소린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다. 내 귀여운 집 보고 싶다.

 자꾸 양식으로 기내식을 먹으니까 비행기 멀미가 올라온다. 저녁은 치킨 퀘사디아를 먹었는데 여기, 맛집이었다. 케이크는 그저 그래. 세 입 정도 먹고 치워달라고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착륙 전이다. 대충 시간 계산을 해보니 착륙 30분 전부터 승무원들이 바빠지는 기분이다. 비행기가 크르릉 드륵 하다가 쿠와아아악 하고 소리 지르면 땅에 도착했단 뜻이다. 온 힘을 다해 멈추려는 느낌도 든다. 돌아왔다 나의 한국. 비행기를 나서자마자 훅 끼치는 습하고 따뜻한 바람에 내가 확실히 피서를 다녀왔구나 실감했다.

 여행은 꿈같은 일이다. 현실을 배경으로 꿈을 많이 꾸는 나. 처음 보는 곳이지만 아예 다른 세상이란 느낌도 없다. 그런데 낯선 일이 자꾸 일어난다. 일들을 완벽히 해내지는 못해도 대충 넘길 줄은 안다. 그게 꽤 재밌고. 착륙과 함께 나는 꿈에서 깼다.

  여자축구를 바라며 떠난 무모한 여행이 끝이 났다. 얼른 끝이 나길 기다리기까지 했는데 내 친구들은 이번 여행을 보고 대단하다 한다. 이룬 게 아무것도 없다 생각한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진 않았다. 그러나 곧 '좋아하는 마음에 솔직하기'라는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이어지며 이번 여름, 용기있고 열정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행복한 삶. 얼렁뚱땅으로 살아도 그럭저럭 즐거운 삶은 좋아하는 걸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살게되는 걸지도 모른다. 이번 일기는 이렇게 덮는다. 재밌다!


이전 12화 다섯 번째 브리즈번 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