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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운 May 17. 2022

모든 전자기기를 빼앗겼다

다시 시작된 병동에서의 일상

2022년 1월 30일, 입원 6일 차


오늘 면담을 시작할 때에도 미리 써 두었던 글을 담당의에게 보여 드렸다. 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을 떠올리며, 이 친구들을 내 슬픔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을 적어갔다. 또, 내가 이미 죽었어야 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내용도. 내 불안은 그런 데에 있었다. 내가 슬픔을 이용한다는 불안과 살아 있다는 불안. 그런 감정이 나를 덮칠 때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는 흔들리고 흔들리고 흔들리는 것이다.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고.

담당의는 내가 너무 왜곡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기울어져 있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세상을 보여 주기 위해 의료진이 있는 거라고 했다.

나의 모든 생각 뒤에 물음표를 붙여 보라고 했다. 난 슬퍼해야 해. 왜? 난 죽어야 하는 사람이야. 왜? 등. 내 모든 생각에 왜? 를 붙여 주고, 아니야, 난 슬퍼야 하는 사람도, 죽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야!라고 말해 주는 내 안의 변호인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면담 내내 이유 모를 불안이 나를 덮쳐 왔다. 내가 손톱을 뜯고 있자니 담당의는 '불안 약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동안 몇 개의 안정제를 먹었는가. 그런 건 세어 봤자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먹어도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정제를 먹고 복도에서 햇빛을 맞다가 점심시간이 되었다. 손등에 바른 연고 냄새가 지독해서였는지 입맛이 없었다. 점심도 먹지 않고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테라스의 그물망은 꼭 벌집 같기도 하고 감옥의 창살 같기도 하다. 그런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가 이곳에 갇혀 있구나, 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오후 5시쯤, 또다시 나를 완전히 덮친 불안감에 복도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마침 그 모습을 본 담당의가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불안하다고 대답했다. 불안한 이유를 묻기에 잘 모르겠다 대답하면서도 오른팔을 긁었다. 담당의는 내가 긁어 상처를 낸 오른팔을 소매를 걷어 확인하고는 면담실로 가자고 했다. 우선 약을 받아먹고, 울면서 면담실로 향했다.

면담실에서 담당의는 심호흡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랫배에 손을 얹고 천천히 숨을 쉬어, 숨이 폐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내 불안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자고 했다. 나는 "자해도 불안을 다른 데로 돌리게 해 주는데요?"라고 말했다. 담당의는 "그래도 자해는 지양해야 하는 거잖아요. 내 몸이 아프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 외에도 찬 바람 맞기, 찬 물로 세수하기, 아이스팩 만지기 등의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나는 아이스팩을 선택했다. 아이스팩을 정수리 부근에 올려놓고 있었더니 이상할 정도로 금세 진정이 됐다.


왜 이렇게 불안할까. 이유는 아무도 찾아 줄 수 없는 거랬다. 그리고 해답이 존재하지도 않는 거랬다.

나는 일단 누군가 나에게 다가올까 봐 불안하고, 동시에 아무도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봐 불안하다.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다는 마음과, 죽고 싶다는 마음과, 죽어야 한다는 마음도. 그리고 비롯된 죄책감과 죄의식도.

불안함을 가시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 것인데, 이곳에서도 계속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 나아질 수 있을까. 나아지고 싶긴 한 걸까.

유독 긴 하루였다.




2022년 1월 31일, 입원 7일 차


핸드폰을 뺏겼다. 어젯밤에.

일기를 쓴 후 드레싱을 받으러 갔다. 간호사가 더 이상 물을 쓰지 않을 때 드레싱을 받으러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게 화근이었다.

잠들기 전, 심장이 쿵쿵거렸고, 팔을 긁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계속 긁어댔다. 피가 날 때까지 긁고 또 긁었다. 작지만 상처가 늘어갔다. 어쩌면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또 어쩌면 절대 모르길 바라면서. 그냥 나의 만족을 위해서였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나는 아파야지. 그리고 이러면 다른 생각도 들지 않지.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지.

아무튼 드레싱을 받으려고 간호사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 한 분이 나와서 양 손등과 팔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만요, 하고 가신 뒤 다시 다가와 물었다. "다른 건 아까 봤는데, 왼쪽 팔의 상처는 본 적 없는 거네요. 언제 한 거예요? 방금 하신 거예요?" 내가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혼내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저희한테는 솔직하게 얘기해 주셔야 해요."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고 말씀하신 간호사 분은 들어가셨다가 드레싱 도구를 들고 나오셨다. 드레싱을 해 주시며, 전공의 선생님과 면담을 하셔야 한다고 했다. 팔의 상처에 밴드를 붙여 주셨는데, 그 밴드를 가만히 내려다보니 이유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담당의는 늦지 않게 왔다. 우리는 함께 격리실에 들어갔다. 많이 불안하냐,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냐 등을 선생님이 물으셨다. 그는 많이 힘들겠지만 함께 노력해 보자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전에 고지했던 대로, 자해를 더 했기 때문에 24시간 동안 모든 전자기기가 제한된다고 했다. 억울한 마음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속상하긴 했다.

그렇게 격리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과 점심을 내리 걸렀다. 입안이 버석거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걸 먹어도 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이, 특히나 식사를 한다는 사실이 상상만으로도 역겨웠다. 이를 담당의에게 얘기하자, 선생님은 우울한 사람에게 억지로 일어나라, 밥 먹어라 하는 말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고 하시며 주전부리라도 잘 챙겨 드시라고 하셨다. 그 말이 생각날 때마다 냉장고에서 어제 간식 노트를 통해 시켰던 초콜릿을 꺼내 먹었다.


내 담당의가 아닌 다른 전공의 선생님이 오셔서 저녁 면담을 하자고 하셨다. 명절이라 담당의가 오프였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다른 전공의와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 선생님은 내가 이전에 입원했을 때의 담당의였다. 그래서 괜히 반가웠다. 평소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면담을 했다. 오랜만에 뵙는 선생님이 너무도 반가워서, 이 반가움을 숨기지 않고 표현했다. 그도 오랜만이라며 밝게 인사를 해 주었다.

나는 유독 밤에 불안이 심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또, 오늘 샤워 중 발견한 붉은 반점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렸다. 붉은 반점이 새로 추가된 약의 부작용 중 하나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오른팔에는 긴 상처처럼 생겼고, 왼팔에는 팔꿈치 주변에 생겼다.

전공의와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불안한 이유 중 하나로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시 복학을 해야 하고, 수업을 들어야 하고, 인간 관계도 잘 챙겨야 하고.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어요?" 그가 물었다. 나는 휴학이 아닐까요,라고 대답하고, 잠시 뒤 "솔직히…… 죽는 것도 방법이죠."라고 말했다. 전공의는 죽음은 우리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제가 운명론자 같은 건 아니지만, 살고 죽는 건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니까요." 나는 그렇지만 시도는 할 수 있지 않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그것도 아주 힘든 일이잖아요,라고 말했고. 맞는 말이긴 하지. 그래서 금세 납득했다.

"마음 편하게, 여기에서만큼은 최대한 비워 둬요." 전공의의 말에 나는 노력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꼭이요,라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새끼손가락이라도 걸고 약속하고 싶었다. 면담을 끝내고 나오는 길이 신기할 정도로 홀가분했다.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최대한 해 봐야겠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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