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병동에서의 일상
2022년 1월 25일, 입원 1일 차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 도저히 지금 내 상태에 대해 낱낱이 말할 수 없어서였다. 엄마가 받을 충격의 정도를 내가 가늠할 수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엄마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걱정하는 것이 싫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이유를 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담당 교수님께서 내 약이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입원해서 약 다 바꿔 보자고 하시더라.'라고 말했다. 오늘 먹은 점심 메뉴를 말할 때보다 가볍게 툭 던졌고 다행히 그 말은 의심을 받지 않았다. 내 담당의와 얘기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족들과 함께 입원 수속을 밟은 후 폐쇄 병동으로 올라갔다. 폐쇄 병동은 정원이 열 명도 되지 않을 듯한 조그마한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올라갈 수 있었다. 병동 중 가장 꼭대기 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누를 때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병동에 들어오면서 가져온 물건들 중 반입 금지 물품이 없는지 확인받는 도중, 가족 중 한 명이 전공의와 면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와 언니 중에 고민하다, 엄마가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사이 가져온 짐을 하나하나 펼쳐 보았다. 별걸 다 뺏겼다. 2회 차임에도 이렇게 뺏길 줄이야. 어려운 병동. 그 이후 간호사에게 여러 규칙 등을 설명받고, 전공의 면담을 하고, 온갖 검사를 했다. 채혈이나 심전도 검사 같은, 아주 사소하고 중요한 검사들. 아직도 채혈을 한 오른쪽 팔이 아프다. 팔 뒤꿈치의 반대편은 뭐라고 부르는 걸까? 아무튼 그쪽.
전공의 면담은 좀 재미있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의 전공의가 와중에 날카로운 질문을 참 많이 던졌다. 아니, 선생님, 그런 말투로 그런 말을?!이라고 머릿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면담이 끝난 후 병동 복도를 걸어 다녔다. 일부러 복도를 얼씬거리며 집중 프로그램실 문 앞을 기웃거렸다. 오후 프로그램이 끝나 사람들이 밖에 나오고 있었다. 가장 안쪽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회복지사가 있었다. 난 그분 눈에 들고 싶었다. 그분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인사해 주길 바랐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에는 부끄러웠으니까. 복지사가 나와 마주치는 데에는 한참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다행히 먼저 물어오셨다. “우리 구면이죠? 초면 아니죠?” 나는 그렇다고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신기하게도 그는 내가 언제 입원했는지, 이전 입원 때 내 상태가 어땠는지 등을 모두 기억하고 계셨다. 그는 내일 오전 프로그램에 꼭 참여해 달라며 인사를 남기셨다.
방에 있는 분들과 빠르게 인사를 나눴다. 이전 입원 때에는 ‘불 끌까요?’ 정도의 대화밖에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통성명도 하고 호칭 정리까지 끝냈다. 저녁을 먹은 후 할 게 없어서 거실에 나갔다가 다른 환자분들과 함께 보드게임도 했다. 그분들 중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아 당황스러웠다.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낮은 느낌이다. 아주 고령인 분들 빼고는 내가 거의 최고령이다. 어디 가면 막내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병동이 전체적으로 시끌시끌하다. 이미 친해져 있는 사람들도 많고. 내가 저 사이에 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치 전학 온 첫날의 기분과 비슷할 것 같다. (나는 전학을 한 번도 다녀보지 않았다.) 이전 입원 때에는 병동 분위기가 훨씬 차분했다. 원래 병동의 분위기는 주기가 있는 싸인 함수와 비슷하다던데, 딱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조증 환자가 많을 때도 있고, 울증 환자가 많을 때도 있으니까.
내가 내 발로 들어온 곳이니 부디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내일은 오늘보다 부드러운 하루이길.
2022년 1월 26일, 입원 2일 차
밤새 다섯 번 정도 깼다. 낯선 곳이기에 그렇게 깼나 싶다가도, 그냥 내 걱정들 때문인가 생각도 들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오늘은 전자기기를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계속 고민했는데, 다행히 회진 이후 바로 휴대폰을 받을 수 있었다. 교수님께서 평소보다 회진을 늦게 도셔서 휴대폰도 늦게 받았다.
아침에는 씻고 오전 프로그램에 갔다. 프로그램은 사회복지사가 나오라고 말을 해서 가는 경우가 많다. 병상까지 찾아와 프로그램을 가자며 내 이름을 부르는 게 좋아서. 누군가 내 존재를 그리 알아주고 필요로 해 준다는 게 좋아서. 그래서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오늘의 신기한 일! 룸메이트가 나랑 동문이었다. 동갑에 동문이라니. 심지어 그 친구의 말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이미 우리 둘이 같은 대학이라는 걸 아시고, 둘이 진로 얘기나 학업 얘기로 대화 나눠 보는 게 어떻겠냐며 주제를 던져 주셨다고 했다. 잘 떠올려 보니 예전 입원 때 프로그램을 하다가 누군가 내게 대학을 물은 적이 있어 대답을 했었고, 그는 아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셨던 듯하다. 나와 룸메이트는 선생님의 기억력에 기함하며 저게 가능한 것이냐는 둥 혀를 내둘렀다.
오늘 주치의와 입원 후 첫 면담을 했다. 외래에서 뵙던 교수님을 의국에서 뵙니 이래저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약을 조금 바꾸기로 했고, 적어도 설은 쇠어야 나갈 수 있겠다고 하셨다.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어제 전공의와 지난 퇴원 이후부터 이번 입원 직전까지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래프로 나타내며 기분이 어땠는지, 그 기분을 느꼈을 때 어떤 사건(life event)이 있었는지 아주 상세하게 얘기를 나눴다. 정확히 어떤 학기에 휴학을 했는지, 중간고사 전인지 후인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물으시는 게 신기했다. 또한 전공의 선생님께서는 재미있는 얘기를 해 주셨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피크가 있었다면, 의욕이나 과소비 등 조증의 낌새가 있었다면 양극성 장애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왜 조울증인데 계속 우울하기만 하지?’ 같은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전공의와 진행한 오늘의 면담에서 인상 깊었던 건 음주와 관련된 부분이다. 술을 마셨을 때 내가 느끼는 행복이 1. 술 자체가 주는 행복 (물질이 주는), 2. 친구들과의 웃음과 대화, 3. 술을 마심으로써 근심을 잊을 수 있는 것 등, 여러 선택지들 중 무엇에 가까운가? 였다. 나는 1번을 골랐다. 술을 마시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니까. 아주아주 좋아지니까. 광대가 아플 정도로 행복해지니까! 물론 다른 이유들의 덕도 보는 거겠지만.
다른 의미로 인상 깊었던 부분도 있다. 전공의 선생님께 내가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게 부러워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넌지시 부럽다는 말을 내뱉고, 그 말을 내뱉은 것을 후회하고…… 이를 반복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장난스레 “‘인간의 후회는 끝이 없다’고 하잖아요!”라고 말했는데, 선생님께서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아뇨. 그건 ‘해결하지 못한 채 계속 마음 안에 담아 둔 짐’이에요. 그러니 자꾸 내뱉을 수밖에 없는 거고요.”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걸 멈출 수 있을까? 애초에 인간에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지난 입원과 이번 입원 사이, 무엇이 가장 다르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주치의에게서도, 전공의에게서도, 간호사들에게도. 내가 하는 대답은 비슷하다. 전에는 병동 자체가 조금 더 차분한 분위기였고, 지금은 전체적으로 조금 더 들뜬 분위기이다. 어쩌면 내가 그때보다 지금 더 의욕적이라 그런 걸지도 모른다. 주치의 선생님도 그 부분을 콕 집어 주셨다. 또한 선생님은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것을 알고 계시기에 전자기기도 9시부터 9시까지 (정확히 말하면 오전 회진 이후부터 밤 9시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감사한 마음이 참 크다. 뭐라도 좀 열심히 해 봐야 할 텐데. 정작 전자기기도 사용하지 않고 침대 위에만 널브러져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오늘 전공의와의 면담 중에 엄마에게는 내 얘기의 50%, 언니에게는 80%를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언니가 자세한 입원 이유(자살/자해 충동, 일상 영위의 어려움)를 아냐기에 모른다고 말하며 그게 20%라고 말했다. 주치의 선생님께는 몇 퍼센트냐고 물으셔서 한 50% 정도인데 앞서 말한 20%가 포함된다고 대답했더니 “아직 저희가 모르는 게 많네요?”라며 가볍게 웃으셨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최대한 많은 걸 말씀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치료를 향한 의욕이 샘솟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