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모든 것은 내 주관적 경험에서 비롯되었기에 병원마다 차이가 있을 것임을 알린다.
이전부터 나는 입원을 아주 오랫동안 고민했으나, 정작 내가 입원한 순간은 굉장히 급작스러웠다. 첫 입원의 순간에는 내 의사결정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혈혈단신으로 별관 꼭대기층의 폐쇄 병동으로 향한 나는 그저 엄마가 가져다 줄 물건들, 그러니까 내 자취방까지도 가지 못하고 병원 바로 앞 올리브영에서 급하게 구매한 샴푸와 린스 따위를 기다려야 했다. 그 외 공책이나 연필 따위는 병원에서 구매를 했고, 심심해하는 나를 위해 며칠 뒤 엄마가 책 몇 권을 전해 주었다. 나는 익숙하지 않은 공책에 익숙하지 않은 문장을 적고 익숙하지 않은 향이 나는 샴푸로 머리를 감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쯤 든 생각은 이랬다. '아, 내가 직접 짐 싸서 왔으면 훨씬 좋았을걸!'
사실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폐쇄 병동의 문을 두드려도 큰 문제는 없다. 어느 정도는 병원에서 구매할 수가 있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 주기 위한 프로그램도 충분하고, 그 외 병동에 이미 구비되어 있는 물건도 충분히 많을 테니까. (어떤 병원에는 노래방 기계도 있다고 하더라. 코로나 때문에 잘 사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만약 입원을 결정한 상태이고, 도대체 입원 전에는 뭘 준비해야 하는 거지? 입원할 때 꼭 필요한 물건이 뭐가 있지?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 이 글이 길 잃은 당신을 위한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무료함을 달래 줄 만한 심심풀이 땅콩 같은 글 한 편이 되길.
1. 샤워/세면도구
샴푸나 린스와 같은 샤워 도구와 세면도구 따위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니 생략하겠다. 그다음으로 있으면 좋을 것이 바로 목욕 바구니다. 당신의 샤워 도구가 요즘 유행한다는 올인원이 아니라면 더더욱. 나의 경우에는 목욕 바구니 안에 샤워 도구와 세면도구, 스킨케어 도구들을 전부 때려 박았다. 들고 다니기 편하다는 것보다 여러 용품들을 보관하는 데 편리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또한 잊지 말고 샤워 타월을 챙기길 바란다. 이때 주의할 것! 일반적인 긴 샤워 타월이나 샤워볼은 들고 갈 수가 없다. 마음먹고 풀어보면 길고 길고 또 길게 늘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긴 실 따위가 반입 가능할 리 없다. 일반적인 샤워 타월을 구매한 후 손수건처럼 작은 크기로 자른다면? 딩동댕, 바로 그거다. 다들 이런 타월을 갖고 다닌다.
당신이 아주 짧은 기간이나 아주 긴 기간 동안 있을 것이 아니라면 스킨 패드를 챙기는 것도 적극 추천한다. 보통 60매 정도 하는 스킨 패드 하나를 챙겨 가면 한 달 동안의 스킨케어를 패드 하나로 끝낼 수 있다. 화장솜이 다 떨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2. 생활 용품
수시로 약을 먹어야 하는 폐쇄 병동에서는 텀블러가 물론 필수 아이템이다. 텀블러 외에도 여분의 종이컵을 챙긴다면 여러모로 쓸 데가 많을 것이다. 옆 병상의 사람에게 음식을 얻어먹을 때나 음료를 나누어 먹을 때, 커피를 마실 때 등. (커피는 카페인 때문에 불가능한 곳도 많으니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나는 텀블러를 두 개 챙겨서 물만 마시는 텀블러, 커피나 온갖 음료를 마시는 텀블러로 구분하여 사용했다.
반팔 티셔츠 몇 장도 잊지 않고 챙겨 주면 좋다. 환자복은 전부 긴팔과 긴바지이기 때문에 날이 더울 때에는 편한 반팔 티셔츠를 입어 주는 게 좋을 테니까. 추운 겨울날 입원을 해야 한다면 겉옷을 챙기는 것도 바람직하다. 검은 옷은 착용이 금지되는 곳도 있고, 아예 흰 옷만 착용이 가능한 곳도 있고, 무슨 색깔의 옷을 입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곳도 있다. 너무 화려한 무늬는 다른 환자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려당할 수 있다. 또한 후드티 혹은 후드 집업을 챙기고 싶다면 끈을 빼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운동을 좋아한다면 끈 없는 운동화를 챙겨, 테라스나 베란다에서 운동할 때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3. 시간 때우기 도구
아무리 폐쇄 병동에 프로그램이 많고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하릴없이 흩어져 가는 시간을 붙잡지 못하고 보내기만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는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지는데, 몇 개의 추천 아이템을 제시해보도록 하겠다.
무난하게 읽을 만한 책이나 컬러링 북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병원에 온갖 도서가 구비되어 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챙겨 가서 읽으면 더 좋을 테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동안 읽지 않고 쌓아 두기만 한 책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읽어 보는 것은 어떤가? 병원에 따라 다른데, 어떤 병원은 반입 가능한 책의 개수가 정해져 있기도 하다더라.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제한이 없었다.) 또한 그 내용을 살펴볼 때도 있으니 이상한 내용의 책은 챙기지 말자. 한때 힐링 아이템으로 유행했던 컬러링 북은 시간을 때우는 데에도,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외에도 스티커 북이나 퍼즐, 스도쿠, 미로 등의 예시가 있다. 우습게도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정작 컬러링 북을 가져갔으나 단 한 장도 색칠하지 않았다. 미적 감각이 없는 터라 색깔 하나를 고르는 데에 삼십 분 가까이 걸리다 보니, 컬러링에 질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는 미로 찾기 책을 구매해 심심할 때마다 미로를 찾곤 했다. 나 역시도 인생이라는 미로에서 길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그다음에는 '월리를 찾아서'를 구매해 틈날 때면 월리가 어디에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다. 그렇게 나는 매일 출구를 찾거나 월리를 찾으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볼펜이나 샤프펜슬은 뾰족하다는 이유로 반입이 불가능하나 연필은 반입이 가능한 곳이 대부분이다. 혹시라도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 쓰는 걸 좋아한다면 꼭 연필과 공책을 챙기길 바란다. 물론 연필깎이는 가져갈 수 없다. 간호사에게 부탁하면 연필을 깎아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자. 스프링 공책은 반입이 불가능하고, 실제본이나 떡제본이 된 공책만 반입이 가능하니 그것도 유의할 것.
입원 전에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리스트 업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사실 입원 전에 해야만 하는 일은 없다. 그동안 미뤄 두었던 일 중 입원 기간 동안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걸 끝내 놓는 것에만 집중하고, 굳이 대단한 일을 하려 하지는 않는 편이 좋다.
또한 입원 기간 동안 대단한 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 역시도 접어 두자. 폐쇄 병동 입원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을 테고, 그러니 폐쇄 병동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많을지도 모른다. 아주 드라마틱한 변화를 불러올 만한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입원은 아쉽게도 그리 대단한 변화를 불러오지는 못할 것이다. 입원은 그저 입원일 뿐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치료를 받는 데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입원 기간이 헛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외부와 단절된 채 당신을 유혹하는, 예를 들면 술이나 자해 같은, 것들에게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입원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원을 결심한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입원할 때 온갖 것들을 죄다 챙겨 갔다가 퇴원할 때 눈물을 흘리며 짐을 쌌다. 이유는 간단하다. 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것들이 있을 정도로…… 그러니 짐은 최대한 단출하게 챙기자. 당신이 엄청난 맥시멀리스트 혹은 모든 것을 바리바리 챙겨 다니곤 하는 바리스타라면 더더욱 이 말을 명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