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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운 Mar 25. 2022

그래서 폐쇄 병동이 뭔데?

이곳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폐쇄 병동.”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으로 생김새를 떠올려 보라.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교도소처럼 쇠창살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온몸을 부르르 떨지도 모른다. 그러나 폐쇄 병동은 그렇게 차가운 곳이 아니다. (놀랍게도) 폐쇄 병동은 매우 따스한 곳으로, 어떤 때에는 지나치게 따뜻해 “간호사님, 복도 히터 좀 꺼 주세요!”라고 외쳐야 하기도 한다.     


정신 병동은 보통 개방 병동과 폐쇄 병동으로 나뉜다. 둘 다 단어의 뜻 그대로, 개방된 병동, 그리고 폐쇄된 병동이다. (전국적으로 개방 병동보다는 폐쇄 병동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나 코로나 때문에 개방 병동도 자유로운 외출이나 외박이 쉽지 않을 것이다.) 폐쇄 병동에 입원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외부의 자극에 지나치게 예민하여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의 치료가 필요하다.

2. 외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확률이 높다. (ex. 타해를 가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3. 자살 시도를 했다.

4. 그 외     


어쨌든 폐쇄 병동에 입원을 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상태가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이다. 이때 입원의 종류에도 세 개가 있다. (병원마다 다를 수 있다.)     


1. 자의 입원

2. 동의 입원

3. 보호 입원     


자의 입원의 경우에는 환자의 서명만 필요하며, 환자의 필요 하에 입원을 진행하는 것이다. 환자 본인이 퇴원 의사가 분명한 경우 심각한 경우가 아닌 이상 퇴원이 가능하다. 동의 입원은 본인의 서명에 더해 보호자 한 명의 서명이 더 필요하다. 이때 본인의 퇴원 의사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보호자와 의사가 72시간 더 지켜볼 수 있다. (지켜보며 설득하는 용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보호 입원. 보호 입원은 환자의 서명이 필요하지 않고, 보호자의 서명만으로 입원이 가능한 경우이다. 환자가 입원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의식이 불분명하거나 할 때 사용한다. 흔히 아는 강제 입원의 케이스이다.          


폐쇄 병동 중에서는 전자기기가 제한되는 곳도, 제한되지 않는 곳도 있다. 병원마다 천차만별인데, 아예 전자기기가 반입이 불가능한 곳부터 24시간 사용 가능한 곳까지 다양하다. 내가 입원했던 병동은 환자마다 전자기기의 사용 시간이 달랐다. 교수님과 전공의의 상의 하에 사용 시간이 정해지는데, 어쨌든 가장 오래 사용 가능한 시간은 오전 회진이 끝난 시간부터 (보통 9시 반이었다) 오후 9시까지였다. 나는 강의를 듣는다는 걸 핑계로 항상 전자기기를 풀로 사용했고, 보통 전자기기 사용이 제한되어 있는 미성년자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그럼 병동의 하루는 어떻게 굴러가는가? 평일과 주말의 병동은 꽤나 다른 양상을 보인다.     


평일, 6시가 되면 간호사가 각 병동을 돌아다니며 혈압을 잰다.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채혈도 추가로 진행한다. 그쯤 되면 잠이 깰 법도 하지만, 약기운에 취해 있는 환자들은 다시 잠에 빠져들고, 나 역시도 그중 한 명이 되어 감기는 눈을 다시 뜨려 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는 건 일곱 시 반이다. 아침 식사가 오는 시각. “아침 드세요!”라며 문이 열리고 불이 켜지면 몸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입맛이 없어 국만 조금 마시면 꼭 타이밍 좋게 전공의가 와 밥도 조금 더 드시라며 말을 얹는다. 잘 잤느냐, 기분은 어떠냐 등을 물으시는 전공의에게 대답을 한다.     


“아침 약 드릴게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병동을 완전히 울린다. 아침 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 물과 함께 삼킨다. 약을 먹고 나면 거실에 간식 노트가 놓여 있고, 그 앞 소파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나도 그 옆에 엉덩이를 대고 앉는다. ‘크림빵, 초콜릿 우유, 콜라, 커피믹스, 신라면 작은 컵……’ 나는 무얼 적을까 고민하다 아무것도 적지 않는 날이 많다. 간식 노트에 적는 간식은 입원할 때 병동의 계좌로 입금한 간식비에서 빠져나간다.  


회진 때까지 시간이 한참 남았다 싶으면 샤워를 하러 간다. 줄에 매달린 샤워기는 흔적도 볼 수 없고, 그저 수도꼭지와 해바라기 샤워기만 있다.     


회진은 빠르면 아홉 시, 늦으면 아홉 시 반에 끝난다. (가끔 아홉 시 반을 넘길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환자들의 불만이 늘 병동 천장을 찌른다.) 회진이 끝나면 간호사실에 가 전자기기를 받아 온다. 개강을 한 이후로는 늘 노트북에 아이패드, 핸드폰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방에 들어온다. 당장 수업이 없더라도 전자기기를 갖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글을 쓰거나 녹화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한다.     


그쯤 사회복지사가 찾아온다. 병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이다. 프로그램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열 시 반과 오후 두 시 반, 각각 한 시간씩 진행한다. 사회복지사는 내게 “강의 없으면 꼭 들어오세요!”라는 말을 남긴다. 나는 병동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프로그램은 늘 바뀐다. 환자들끼리 건의 사항을 이야기하는 자치회의, 선생님과 함께하는 정신 건강 교육, 인지 행동 치료, 미술 치료, 필라테스까지.     


그 후 한 시간 뒤쯤 점심 식사를 한다. 이번 학기 내 강의는 대부분 점심 이후에 몰려 있기 때문에, 나는 급하게 점심을 먹고 강의를 듣는다. 강의를 듣느라 보통 오후 프로그램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시간이 된다면 들어가 다른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프로그램도 끝나고 강의도 다 끝나면 네다섯 시쯤 되는데, 나는 보통 그쯤 면담을 받는다. 내가 강의 듣는 것을 배려해 준 전공의 덕분이다. 전공의와의 면담은 평일 매일 진행되고 짧으면 이십 분, 길면 한 시간까지도 이어진다. (한 시간 동안 면담을 하면 기가 쪽쪽 빨린다.)     


면담이 끝나면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고 나면 또 시간이 남아서, 환자들과 떠들거나, 티비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과제를 하거나, 글을 쓴다. 무엇이든 하면서 시간을 쓴다. 일곱 시 반에는 혈압을 한 번 더 재고, 여덟 시 반에는 저녁 약을 먹는다. 저녁 약을 먹고 난 뒤에는 아홉 시까지 아주 알차게! 전자기기를 사용한다. 전자기기를 제출한 후에는 짧게라도 일기를 써서 감정을 정리하고, 내일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주말의 병동은 위에서 프로그램과 회진이 빠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병동에서 그나마 재미있는 일들이 프로그램과 회진인데, 이것들이 빠지니 얼마나 지루한가! 전공의 면담 역시도 진행하지 않는 날이 훨씬 많기에, 주말 대부분의 시간은 무료한 표정으로 유튜브를 들여다보거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 사용한다. 그래도 나는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전자기기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거나 시간제한이 있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주말 내내 잠을 자는 데 시간을 보내곤 해서 병동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질 때가 많다. 동시에, 심심해진 환자들이 보드게임을 하기 위해 거실에 모이기도 해서 방에 있음에도 밖의 소음에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시끄러워질 때도 있다.          




병동은 누가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굉장히 달라진다. 어떤 때에는 20대 초중반의 여성 환자가 많을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고령의 환자들이 많을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미성년자 환자들이 많을 때도 있다. 또 신기할 정도로 증세가 비슷한 환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들어오곤 하는데, 조증 환자가 많은 시기에는 전체적으로 붕 떠 있는 느낌이고, 울증 환자가 많은 시기에는 착 가라앉은 느낌이다. 이는 주기 함수처럼 반복된다.    

 

그렇다. 폐쇄 병동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곳이라서, 난 가끔 이 병동을 ‘여고 기숙사’ 라거나 ‘기숙학원’ 정도로 비교하곤 한다. 여자고등학교 기숙사에도 살아 봤고, 기숙학원도 다녀본 나는 종종 병동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질 때면 꼭 그때의 기억이 난다. 친해진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 보면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도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사실 그런 건 쉽게 잊히지 않아서 괜히 마음 깊은 곳을 한 번 더 쿡쿡 찌르곤 한다.     


환자들끼리도 병동을 농담처럼 ‘꼭 나가야만 하는 곳’, ‘탈출해야 하는 곳’이라 묘사하긴 하지만, 정작 나가는 날이 되면 밖에서 잘 지내지 못할 것만 같아서, 이곳에 들어오기 전 받았던 상처와 똑같은 상처를 다시 받을까 봐 걱정하며 잠을 못 이루곤 한다. 실제로 퇴원한 환자들 중 많은 환자들이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하고 (애초에 정신병에 완치라는 게 존재하는 건지 모르겠다) 퇴원 후 재입원을 하거나 또다시 좋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병동 안과 바깥을 분리하되, 우리는 언제든 바깥에 나가서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그 힘이 아직 없다면 안에서 힘을 기르면 된다. 힘을 기르지 못했더라도, 나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는 정도만 되더라도 괜찮다.

주변에 퇴원을 앞두고 있거나 갓 퇴원을 한 사람이 있다면, 병동 안과 바깥에서의 차이에서 오는 간극을 줄일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병원이 만병통치약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또 그것을 인지했을 때 너무 힘들어하지 않기를 도와주기를 바란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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