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 그리고 D-1
아침 댓바람부터 머리를 자르고 볶았다.
머리를 자른 이유는 딱 하나다. 머리를 말리기 쉽게 하기 위해서. 드라이기 없이도 괜찮은 머리를 만들기 위해서. 약 이 년 동안 쇼트커트를 유지하던 내가 눈 딱 감고 머리를 길렀는데, 그 머리를 다시 한 번 눈 딱 감고 싹뚝 잘라 버린 것이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저 머리카락 뭉텅이가 내 마음속 뭉텅이도 함께 앗아가길 바랐다.
입원 사흘 전이다. 여전히 입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러다 내가 죽을까 봐 너무 무서우니까.
보통 입원 사흘 전에는 무얼 하나. 나는 친구들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모임에 참석했다. 최근 취미를 붙인 연기 소모임이다. 소모임 친구들 대부분은 내 상황을 알고 있기에, 입원 때문에 다음 연습부터는 나오지 못할 거라 말했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은 듯했다. 입원 이유가 무어냐고 물어보지 않는 그 세심함이 고마웠다. 아무튼 친구들과 나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입원 기간은 얼마나 될까? 우선은 이삼 주를 생각하고 있다. 보통 입원은 그 정도 하지 않나? 뭐, 치료 기간에 있어서 보통이란 건 딱히 없겠지만, 아무튼 내 목표는 한 달 안에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길어도 한 달을 넘기지는 않겠지. 어쨌든 다음 모임에는 참여하지 못해도 다음다음 모임에는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땐 더 밝은 모습, 더 홀가분한 마음가짐이면 좋겠다!
내일은 병원에 들고 갈 것들을 사러 가야지. pcr 검사도 받으러 간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 사람들도, 순간도 남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필름은 아니어도 공책을 들고 가서 시간을 새겨야지.
입원 전날이다. 뭐 그리 대단한 날이라고 괜히 긴장이 된다. 손에 땀이 자꾸만 났다.
어제는 하루 종일 걸어 다녔다. 연희동부터 연남동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 같지만 좁은 골목을 누비느라 시간을 다 썼다. 여러 소품샵과 독립서점에 다녀왔고, 형광등 아래에서도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우주 책갈피를 샀고, 실로 제본된 공책 몇 권을 샀다. 일기를 쓰든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해야지.
병원에 들어갈 때 뭘 가지고 들어가면 좋을까, 고민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역시 첫 번째는 컬러링북. 웃긴 건, 얘가 이전 입원 때에도 들고 들어간 책이라는 것이다. 아직 단 한 페이지도 완성하지 못한 내 불쌍한 컬러링북. 이번 목표는 한 페이지라도 완성하기다. 가능하겠지? 설마 이것도 못 하는 건 아니겠지? 24색짜리 색연필도 같이 챙겨 가야겠다. 아, 아니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댔다. 못 해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조그마한 필통에 연필 여러 자루도 챙겼다. 연필깎이가 없어서 하나 구매해야 했다. 병원에 가져가지는 못하겠지만.
책도 여러 권 준비했다. 어떤 병원은 책이 두 권까지인가 세 권까지만 된다던데, 내가 입원하는 곳은 책에 대한 제한이 딱히 없어서 좋다. 만약 책 제한까지 있었으면 너무 힘들었을 거야.
교수님께서 사용 가능하게 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아이패드도 챙겨 간다. 내 주치의 선생님은 그래도 전자기기 사용 시간을 유동적으로 정해 주시는 편이라, 분명 내가 말씀드리면 아이패드도 사용 가능하게 해 주실 거라 믿는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나 같은 글쟁이에게 아이패드나 노트북은 필수라고.
병원에서 아주 대단한 걸 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푹 쉬다 나온다고, 잘 치료 받고 나온다고 생각해야겠다. 내 사고의 흐름을 완전히 뒤엎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입원 기간 동안 치료를 통해 내 생각들이 웬만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휴. 아직도 긴장이 되네. 어쨌든 잘 살기 위한 결정이니까. 잘했다,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