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적운 Apr 07. 2022

(재)입원 전 일기

D-3, 그리고 D-1


2022.01.22.


아침 댓바람부터 머리를 자르고 볶았다.


머리를 자른 이유는 딱 하나다. 머리를 말리기 쉽게 하기 위해서. 드라이기 없이도 괜찮은 머리를 만들기 위해서. 약 이 년 동안 쇼트커트를 유지하던 내가 눈 딱 감고 머리를 길렀는데, 그 머리를 다시 한 번 눈 딱 감고 싹뚝 잘라 버린 것이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저 머리카락 뭉텅이가 내 마음속 뭉텅이도 함께 앗아가길 바랐다.


입원 사흘 전이다. 여전히 입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러다 내가 죽을까  너무 무서우니까.


보통 입원 사흘 전에는 무얼 하나. 나는 친구들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모임에 참석했다. 최근 취미를 붙인 연기 소모임이다. 소모임 친구들 대부분은 내 상황을 알고 있기에, 입원 때문에 다음 연습부터는 나오지 못할 거라 말했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은 듯했다. 입원 이유가 무어냐고 물어보지 않는 그 세심함이 고마웠다. 아무튼 친구들과 나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입원 기간은 얼마나 될까? 우선은 이삼 주를 생각하고 있다. 보통 입원은 그 정도 하지 않나? 뭐, 치료 기간에 있어서 보통이란 건 딱히 없겠지만, 아무튼 내 목표는 한 달 안에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길어도 한 달을 넘기지는 않겠지. 어쨌든 다음 모임에는 참여하지 못해도 다음다음 모임에는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땐 더 밝은 모습, 더 홀가분한 마음가짐이면 좋겠다!


내일은 병원에 들고 갈 것들을 사러 가야지. pcr 검사도 받으러 간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 사람들도, 순간도 남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필름은 아니어도 공책을 들고 가서 시간을 새겨야지.          






2022.01.24.


입원 전날이다. 뭐 그리 대단한 날이라고 괜히 긴장이 된다. 손에 땀이 자꾸만 났다.


어제는 하루 종일 걸어 다녔다. 연희동부터 연남동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 같지만 좁은 골목을 누비느라 시간을 다 썼다. 여러 소품샵과 독립서점에 다녀왔고, 형광등 아래에서도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우주 책갈피를 샀고, 실로 제본된 공책 몇 권을 샀다. 일기를 쓰든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해야지.


병원에 들어갈 때 뭘 가지고 들어가면 좋을까, 고민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역시 첫 번째는 컬러링북. 웃긴 건, 얘가 이전 입원 때에도 들고 들어간 책이라는 것이다. 아직 단 한 페이지도 완성하지 못한 내 불쌍한 컬러링북. 이번 목표는 한 페이지라도 완성하기다. 가능하겠지? 설마 이것도 못 하는 건 아니겠지? 24색짜리 색연필도 같이 챙겨 가야겠다. 아, 아니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댔다. 못 해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조그마한 필통에 연필 여러 자루도 챙겼다. 연필깎이가 없어서 하나 구매해야 했다. 병원에 가져가지는 못하겠지만.


책도 여러 권 준비했다. 어떤 병원은 책이 두 권까지인가 세 권까지만 된다던데, 내가 입원하는 곳은 책에 대한 제한이 딱히 없어서 좋다. 만약 책 제한까지 있었으면 너무 힘들었을 거야.


교수님께서 사용 가능하게 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아이패드도 챙겨 간다. 내 주치의 선생님은 그래도 전자기기 사용 시간을 유동적으로 정해 주시는 편이라, 분명 내가 말씀드리면 아이패드도 사용 가능하게 해 주실 거라 믿는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나 같은 글쟁이에게 아이패드나 노트북은 필수라고.


병원에서 아주 대단한 걸 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푹 쉬다 나온다고, 잘 치료 받고 나온다고 생각해야겠다. 내 사고의 흐름을 완전히 뒤엎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입원 기간 동안 치료를 통해 내 생각들이 웬만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휴. 아직도 긴장이 되네. 어쨌든 잘 살기 위한 결정이니까. 잘했다, 나야!


이전 03화 입원 전에 준비하면 좋을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