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의 아내, 나로 살아가는 법>
아이들이 제법 자랐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뛰쳐나오던 그 시절과는 달라졌다. 남편의 사업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생계를 위해 ‘무조건 일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비로소 내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동안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 회사의 실장’, ‘누구의 그림자’로 살아왔다. 아무리 열심히 글을 쓰고, 콘텐츠를 기획해도 그 끝엔 내 이름이 적히지 않았다. 00 관광청, 00 시청 제공이라는 말이 전부였다.
‘열심히 했는데, 결국 아무도 모르는 사람’ 그게 나였다.
여행 콘텐츠 회사에 다니던 그 시절, 매번 기획서를 쓰고, 글을 정리하고, 자료를 찾고, 프로모션 페이지를 만들면서도 그 콘텐츠에 들어가는 이름은 클라이언트였다. 나는 그저 그림자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인 글을 쓰는 일조차도 누군가의 이름 아래에서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부터 서글펐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왜 나는 내 이름으로 쓰지 못하지?”
“왜 나는 늘 누군가를 도와주는 입장이었을까?”
“내 이름으로 남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그 질문 끝에서, 나는 다시 ‘쓰기’를 택했다. 단지 콘텐츠를 만드는 글이 아니라, 내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글, 내 이야기를 담는 글. 그게 브런치북이었다. 누구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혜진’이라는 사람으로 말하는 시간이 내게는 절실히 필요했다. 그동안 묻어왔던 마음과 감정과 상처와 회복을 드디어 ‘내 손으로 쓰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사실 나는 한때 ‘창업’이란 말이 정말 싫었다. 그건 늘 남편의 전유물 같았다. 그 안에서 나는 사라져 가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창업이란 단어가 나를 희생시키는 시스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창업은 나에게 두렵고, 밉고, 불안한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라졌다. 이제 와 돌아보니, 문제는 창업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지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창업 때문에 그런 것만 같아 오랫동안 억울한 감정으로 살았다. 나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그림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받아들인다.
이제는 ‘창업’이라는 말도 좀 덜 무섭다. 그게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는 방식일 수 있다면 말이다. 내 책을 쓰고 싶다. 내 이름으로, 내 서사로, 내 언어로. 이제는 ‘누구의 아내’라는 이름보다 ‘작가 혜진’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게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자 가장 늦지 않은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