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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Jul 23. 2020

베니스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당신의 작은 정성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러분과 요가 수업을 함께 하게 된 베니스라고 합니다.

시간표에서 보셨겠지만 제가 베니스예요..... 예,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고 계시는 그 베니스 맞아요......"



나는 베니스다. 아마도 당신이 생각하는 그 베니스가 맞다.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그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베니스.

베니스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베니스라는 도시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베니스와는 1도 연관이 없는 사람이다. 태어나서 베니스에  딱 한번 가본 것 이외에는.


그런데 나는 요가원에서  베니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하필이면 왜 베니스인가. 로마도 아니고, 피렌체도 아니고 그것도 요가원에서 말이다. 요가는 인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산스크리트어로 된 인도스러운 닉네임으로 불리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갑자기 무슨 베니스?



 나를 처음으로 베니스라고 불러준 사람은 나의 스승님이다.  항상 나를 "베. 니. 스"가 아니라 "붸니스~~" 라며 특유의 우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불러주신다. 가끔씩 그 목소리가 배우 이영애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릴 때도 있다. 내 귀에는. ( "원장님 , "라면 먹고 갈래?"라고 한마디만 해 주시면 안 돼요?"라고 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요가를 가르치고 있는 이 요가원에서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기 전, 요가에 흠뻑 빠져 일반 회원으로서 요가원을 열심히 다니고 있을 때였다.

 새해를 맞이 하여 원장님과 다른 선생님들께 엽서에 손글씨를 써서 새해 인사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 엽서들은 내가 예전에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직접 찍은 사진들로 만든 엽서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원장님께 드린 엽서에는 베니스의 일몰 풍경 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 엽서와 메시지에 감동받은 원장님은 그 후로 나를 베니스라고 부르기 시작하셨다.

 

 시간이 흘러서 나는 회원이 아니라 원장님의 제자가 되었고, 내가 수련하던 그 요가원에서 나는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베니스 선생님, 또는 그냥 베니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말이다.


만약에 내가 파리의 에펠탑 사진이 담긴 엽서를 드렸다면? 내가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이 담긴 엽서를 드렸다면?  아마 나는 파리  또는 피렌체라고 불리고 있었을까?



 이런 에피소드를 말씀드렸더니 한 회원께서 말씀하신다.

" 춘천이라고 안 불리는 게 어디예요...."라고 하시며 베니스라는 이름이 나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는 말도 덧 붙여주시는 센스를 발휘해 주신다.  

 또 이런 에피소드를 모르시는 회원 분들께는 그냥 " 제가 성이 베 씨고 이름이 니스예요."라고 장난 삼아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베니스라는 이 별명이 좋다. 전혀 요가스럽지 않아서 좋고, 부르고 기억하기 편해서 좋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 주어서 더욱 좋다.


 솔직히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베니스가 아니라 피렌체였지만 우연히 마주하게 된 베니스에서의 그 아름답고 오묘한 색감으로 물들었던 일몰의 광경은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포착한  아름다운 순간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눌  있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엽서를 드리고 나서 원장님께서는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오랫동안 지켜 나가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답장을 주셨다. 그래서 나에게 베니스라는 단어는 따뜻함과 사랑으로 다가온다.




 



살다 보면 가끔씩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느껴졌던 단어들이 인생에서 큰 의미가 되어 삶 속에 침투하여 깊이 자리 잡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나에게는 현재 요가, 요가강사, 그리고 베니스라는 단어들이 그러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또 어떠한 새로운 단어들과 마주하게 될지, 그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발견해 나가게 될지 궁금해진다.


   내가 전한 따뜻한 감사의 마음이 상대에게 온전하게 전해지고,  마음은 결국 다시 나에게 배가 되어서 돌아온다. 나에게 돌아온  기쁨과 행복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그렇게 계속 돌고도는 것이 세상의 큰 이치 중의 일부가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감사와 배려라는 연결고리로 모두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당신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낯선 누군가의 행복에 아주 작게나마 기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여러 가지 엽서 중에서 하필이면 베니스의 엽서를 골랐다는 것도, 참 기가 막힌 우연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런 사소한 우연으로부터 소중한 의미를 발견해 내는 것도 요가가 나에게 준 선물 중 하나이다.





 당신의 따뜻한 정성과 배려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긍정적이고   파급력을 질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먼저 따뜻한 마음을 전해보시라.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마음이 당신에게 두배, 세배 이상의 기쁨이 되어 돌아올 테니.

덤으로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작은 정성을 알아주시고, 고마워해 주시고 나를 항상 "붸니스"라고 따뜻하게 불러주시는 나의 스승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선생님, 만약에 제가 파리의 풍경이 담긴 엽서를 드렸다면 저를 파리라고 부르셨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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