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레어 Jan 11. 2021

사과와 함께 하는 나날들

스마트 시계가 있으면 요가 수업이 더 편해 질 줄 알았다.   

애플 시계를 샀다. 

아이폰, 에어팟에 이어 애플워치까지 구입하게 되면서 나의 일상 속에 이 브랜드가 한 단계 더 깊숙이 침투해버렸다. 애플 유니버스에서 사과로 시작해서 사과와 함께하며 사과로 마무리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다양한 매체들과 주변 여기저기에서 이 시계를 착용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고, 저 시계를 가지게 되면 나도 저들처럼 세련되고, 스마트하고 트렌디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요가 수업을 할 때 음악을 켰다가 끄거나, 볼륨을 조절하기에도 편리 할 것 같았고, 매일 그날의 운동량을 체크해주기도 한다고 하니 이 유용한 시계는 분명 나의 일상을 한 단계 더 윤택하게 해줄 것이라며 스스로 이 소비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것은 치밀한 자본주의의 마케팅에 냅다 굴복해 버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소비가 자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어 버린 현대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여기에도 있다. 

 

 첫 구매 후 사흘 간은 좋았다. 설레었다. 애플의 로고가 새겨진 미니멀한 상자의 포장을 조심스럽게 뜯어서 새 시계와 처음으로 마주할 때의 두근거림! 나도 이제 어엿한 스마트한 현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첫날의 설렘과 기쁨은 사라져갔다. 

 

 약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손목시계들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이 스마트 시계 때문에 그 동안 수집해 왔던 아날로그 시계들에게는 한 동안 손을 대지 않았다. 모든 물건의 소비와 그 후의 패턴이 그럿듯이 애플 시계도 나에게 기쁨과 만족함을 오랫동안 안겨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가끔은 이 스마트 시계가 족쇄처럼 느껴 지기도 한다. 이 스마트한 친구는 내가 하루에 얼마나 움직이고, 몇 보를 걷는지,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는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빅브라더’처럼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감시하면서 매일매일 내 모든 생체 정보와 생활 패턴에 대한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기기도 한다. 


 애플 워치는 필요가 아니라 욕망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애플 시계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나의 부질없는 욕심이었다. 욕망과 필요의 경계에 서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소비를 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맥시멀리스트는 오늘도 쇼핑을 한다. 

 

  때로는 너무나 편리하고 익숙한 것들이기에 갑자기 사라지게 되면 일상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답답한 족쇄처럼 느껴 지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불편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소유하지 않고 서는 견딜 수 없는 것들과 함께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오늘도 애플 유니버스에서 사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사과와 함께 하루를 마감한다.

 

  결론적으로 스마트 시계 덕분에 요가 수업을 할 때 음악을 바꾸거나 볼륨을 조절하기에는 전보다 조금 편해졌다는 것 외에는 나의 삶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내가 아직 이 시계의 기능을 제대로 다 알지 못하고 사용하지 못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전 21화 춤추는 것처럼 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