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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컵플래너 Feb 18. 2018

맛있는 커피란 무엇일까

24살 바리스타의 커피 칼럼 

일상 속 쉼터, 미팅, 

혼자만의 사색 공간으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자리 잡은 지 오래인 '카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그중에서 바리스타라는 꼬리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하나인 나에게, 

카페의 의미는 조금 남다르다.     



노트의 수많은 체크리스트들 중 하나, 

다이어리의 어느 한 페이지에 꽂힌 책갈피가 아니라 


눈을 깜빡이고 숨을 쉬는 것과 같은 일상이며, 하루 일과 전부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일기라고 할까.      



일기장에 나만의 카페를 스케치하고 색을 입히며 홀로 생각에 잠겨있으면,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귀퉁이의 낙서처럼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인간은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다. 



일기장 밖을 박차고 나와

나의 커피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질 때, 


나는 펜을 들거나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한다.      


다른 사람과 일기를 공유하고, 

덧붙이거나 수정할 부분을 찾기 위해 세미나 또는 전시회를 가기도 한다.  

   



오늘은 글이라는 도구를 쓰고 싶어 진다. 




         

2년 전, 


난생처음으로 내린 에스프레소의 향에 취해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나에게 커피는 삶의 만족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스스로 생각하는 '좋다'라는 기준의 충족을 위해 고민하고 경험해야 할 의지적, 능동적인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커피가 일상 속 깊숙이 침투하자,

 

이것을 낱낱이 파헤치고 싶은 충동이 동화 속 거인처럼 몸집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거인을 진정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물음표들을 느낌표로 바꾸는 일이었고,   



‘좋은 커피란 무엇일까?’


보다 정확하게는

‘맛있는 커피란 무엇일까?’를 주제로, 


어지럽혀진 일기장을 정리하고 수없이 쓰인 물음표들을 수정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맛있는 커피’란 과연 무엇일까?     


여기에 속 시원한 답을 내지 못하면 거인이 일기장을 모두 찢거나 태워버릴지 모르지만,


맛있는 커피에 대한 기준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주장하기엔 위험성이 따르고, 


섣불리 그런 글을 썼다간 댓글 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커피 맛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보다 객관화하기 위한 시도인 ‘커핑’을 살펴보는 것이, 


거인이 원하는 답의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재배 고도, 기후, 환경...


수많은 변수들에 의한 커피맛의 스펙트럼은 무궁무진하며

     

여기서 자신의 혀의 판단 하에, 

그리고 커핑 사회자와 참여자들의 주관적 해석 하에 극히 일부로 압축되고,

모두의 토론을 거쳐 커핑 점수가 매겨진다.


   

거인이 되묻는다. 그게 진짜 ‘맛있는 커피’의 정답이야?


          

사회자를 포함해 커핑에 참여한 서너 명의 미각이 

과연 이 세상 모든 커피 소비자들의 기호를 대변할 수 있을까.



아무리 많은 숫자의 인원이 커핑에 동참한다 한들,


‘맛’이라는 광활한 우주를 자그마한 그릇 하나에 담아놓고 ‘이것이다’라고 정의하는 무모한 시도에 불과한 것이다.




맛있는 커피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수많은 커피를 마셔보고 고민하며 


마음속 거인을 어떻게든 만족시키려 노력했던 나의 결론은,  

    



맛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와 증명, 객관적인 평가 지표가

결코 ‘맛있는 커피’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우리는 겉 포장지에 적힌 flavor note를 해석함으로써

이 커피가 어떠한 맛을 연상시키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커핑과 향미 평가를 통한 인지 훈련이 가능하지만,  

             


지속적인 반복 학습과 경험적 데이터의 축적으로 얻은 뛰어난 감각도   

  

내일 아침에 마시게 될 한 잔의 커피 맛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애초에 ‘맛있다’는 단어가 주관적이기에, 

객관적인 평가 지표와 과학적인 사실은 아무 힘이 없다.     


     

모든 변수에 있어 단 0.00001의 오차도 없는 두 잔의 동일한 커피를 마셔도


불과 1분 전과 다른 커피라고 느끼는 것이 우리의 미각이며,     




그날 하루의 커피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맛있는 커피'에 대한 객관적인 답이 아닌,


그날의 분위기, 

그날의 마음 상태, 

그날 있었던 일들이다.

             



글의 서두에서 ‘맛있는 커피에 대한 기준은 제각각’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정답이다. 



과하게 쓰거나 신 커피를 좋아하는 소비자도,


뛰어난 밸런스와 향, 높은 커핑 점수를 보유한 커피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도 분명 존재한다.




어쩌면 방대한 커피 지식과 과학적 사실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은 우리의 미각 일지 모른다.



커피를 공부하기 위함이 아닌

단지 맛있는 커피가 궁금한 것이라면,    


많이 마셔보면서 스스로 얻은 결론이 바로 정답이다.





답을 정해놓지도 멋진 해답을 바라지도 말자.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의 카페에 앉아 

취향에 맞는 커피를 가장 행복하게 즐기고 있는 당신이라면,   

  


지금 손에 들린 한 잔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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