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담표류기

무디고 애매모호한 단기 상담의 추억들

by 비탈

앞서 말했듯 나는 삼십 평생을 무난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가족 구성부터 그렇다. 부모님과 나, 언니로 구성된 4인 가구. 특이한 점은 언니와 내가 쌍둥이라는 것 정도일까.


부모님은 한때 이혼을 고려할 정도로 불화가 심했지만 '별거'라는 합의점을 찾았고, 쌍둥이 언니(나는 그를 언니라 부르지 않기에 이후로는 a라 칭하겠다)는 어릴 적엔 나를 챙겼고 크고 나서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 속에서 나는 불만이랄 게 없었다. 뭘 불평하겠나. '쌍둥이라 좋겠다', '엄마가 애쓰셨네, 평생 친구 주셨구나' 같은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자랐는데 말이다.


언니에 비해 무던한 성격도 삶의 만족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런 나는 매우 예민하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a를 곧잘 커버했다. 느긋한 태도가 오히려 a의 신경을 긁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 나는 a에게 군말 없이 복종했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게을러.' 우리는 겉보기에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고, 그건 자녀들을 수평적으로 키우고 싶어한 엄마를 흡족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최근까지 삶에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삶은 내게 꼭 맞는 퍼즐 같았다. 회사에서는 상사와 동료들이 나를 신뢰하고 아꼈으며, 가족과 친구들 역시 그러했다. 난 내가 충성하는 왕국에서 행복했다.


가슴 아프더라도 한 번 반문해보자. 정말로?


하지만 예리한 사람은 여기까지 읽었을 때 생각했을 것이다. '흠, 쓸데없는 자랑을 길게 늘어놓는 건 반전이 있다는 뜻이겠지? 실낙원 서사인가?'


정말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 실한 우정으로 드리고픈 충고가 있다. 만약 삶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친절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불길한 징조일 수 있다. 삶이 당신에게 꼭 맞는 게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를 마구 토막내서 삶에 맞춘 걸 수도 있다. 가정만으로 불편하겠지만 한 번쯤 의심해보기를 바란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어쨌든 행복하다면 오케이 아닌가요? 본인의 욕구를 억누르고 타고난 성향을 조각조각 따따따 조립해서 현 상태를 억지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 모르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나~는~행복합니다~


써본 입장에서 말하건대 유용한 합리화다. 나 역시 환경에 억지로 끼워 맞춘 정신이 삐걱거릴 때마다 생각했다. 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좋은 삶이 어딨냐고 말이다. 그렇게 현재를 유지할 때의 밝은 면만 바라보며, 내가 주위에 맞추느라 나 자신을 홀대하고 있다는 진실을 외면했다.


하지만 의식이 외면해도 무의식은 속지 않는다. 자아가 깎여나가는 만큼 정신적 체급은 왜소해진다. 그 결과, 가벼운 타격에도 쓰러지고 일어나질 못한다. 그때 내 문제를 자각조차 못했던 나는 인간관계나 프로젝트에 작은 변수만 생겨도 극도로 불안해졌다. 복싱으로 비유하자면, 내가 링에 올라 상대와 주먹을 맞대는 게 삶의 규칙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타격이 매번 못 견디게 아팠다. 그런데 내게 맞은 상대나 다른 링의 대전자들은 나만큼 휘청거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납득하지 못했다. 정신력이 약한 편도 아니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충분한데(자아를 억압한 시점에서부터 높은 자존감은 글러먹었다는 걸 당시엔 알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불안도가 높지? 왜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하지? 심지어 스트레스의 영향은 신체적으로까지 나타났다. 6개월 간 새벽 5시에 식은땀 범벅인 채로 깨거나, 명치가 꽉 막히고 뒷목부터 머리끝까지 불길이 치밀어오르는 듯하거나, 심장이 덜커덕거리며 멈추는 부정맥이 생기는 등 다양한 이상증세를 경험하게 되었다.


뭐가 문제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상식선에서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아프다. 그리고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절대자존감'를 찾기 위한 단기상담 원정을 떠나게 다. 내게 필요한 건 자존감이 아니라 개같이 뚜들겨 맞고 있는 자아를 자각하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채로......


절대자존감.....절대자존감만 손에 넣으면.....



1. 첫 번째 상담(부제: 그래서 문제가 뭔가요?)

내 첫 번째 상담은 회사 근처에 있던 상담소에서 진행됐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쓸 게 없다. 1시간 내내 피상적인 질문과 단답형 대답, 침묵,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었다.

상담사: 어떤 불편이 있으시다고요?
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면 머리도 아프고 심장도 아파요.
상담사: 직장 내 문제가 있으신가요?
나: (침묵) 어....아뇨.
상담사: (침묵) 가족 내 문제라 생각되는 건 있으신가요?
나: (침묵) 아뇨.....?
상담사: 그럼 신체적 불편이 제일 크신 거네요?
나: (침묵)(여기 오지 말고 건강검진을 했어야 하나)


실제로 위 상담 후에 80만원을 때려넣어 종합 건강검진을 받아보았다. 몸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갑상선 유소견은 그로부터 몇 년 후에 받게 된다)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화 증상이라는 게 확실해졌다는 성과는 있으나, 해결책은 요원했다. 나는 다른 접근을 해보기로 한다.


바로 정신의 건강검진, 심리 검사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2. 두 번째 상담(부제: 띠링,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 20만원을 때려넣어 다른 상담소에 검사를 신청했다. MMPI, TCI, MBTI 삼종 세트였다. 결과가 나오는 날 나는 속으로 떨었다. '본투비 구제불능 유리멘탈이라 하시면 어떡하지?'

그런데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상담사: 검사 결과, 당신은 좋은 사람으로 밝혀졌어요.
나: 예?


그 후 상담시간 동안 내 성격의 장점과 주의점을 들었고, 어리둥절한 채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그럼 내 괴로움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당연한 고통인가?'


아, 예....감사합니다....?


훗날 장기 상담을 진행하며 나는 이때의 결과를 올바로 이해하게 된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전문가에게 높이 평가 받은 것에 은밀히 기뻐하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강박 성향이 긍정 강화된 것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 세 번째 상담(부제: 재밌군용)

이번 상담이 마지막은 아니다. 이후로도 나는 회사 복지와 사비를 써가며 두 번 더 단기 상담을 시도해봤다. 하지만 유의미한 기억을 남긴 상담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세 번째 상담을 하러 가며 나는 결심한 게 있었다. 이번엔 내 안의 이야기를 다 꺼내보자. 상담소 의자에 앉아 인사를 나누자마자 의식의 흐름대로 화제를 꺼내봤다. 가정환경, 교우관계, 회사생활을 닥치는 대로 읊었다. 나이가 지긋한 상담사는 차분하게 들어주었다.


그때 제가 말했어요, 오늘 점심 짜장면이 어떻겠냐고.(맛있겠군용)


그리고 결과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상담을 제대로 해본 사람이라면 별로 놀랍지 않을 것이다. 핵심 감정에는 접근하지도 못하고, 비합리적 신념 구조를 유지하며 세계를 묘사하기만 했으니 뭐가 달라지겠나. 상담이 끝날 즘 나는 침울하게, 하지만 끝까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상담사는 그런 내게 말했다. '즐거운 대화였어요.'


나도 재밌었다. 그러나 상담이라는 활동에서 기대한 효과는 하나도 충족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이어진 실패를 통해 나는 결론 내렸다. 상담은 이 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렇게 내 인생에 상담은 더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니, a의 대학원 입학 준비가 나를 장기 심리 상담으로 이끌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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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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