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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Apr 10. 2021

나는 네가 '최선'인데, 너한테 나는 '차선'인가봐

비밀; 사랑할 때 감춰야 하는 마음들

인생에서 배려를 아끼려면, 설렁탕에 흩뿌리는 소금도 아껴는 것이 좋다. 배려는 밋밋한 일상의 맛을 풍성하게 우려내는 염분이어서, 음식의 간을 맞추는데 쓰이는 소금과 그 역할이 동일하다. 그러나 국은 짜게 먹고, 배려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을 가끔 만나게 되는 때 그에게 이비인후과를 권해주고 싶었다. 마주앉아 우걱우걱 설렁탕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머릿속으론 놀부를 떠올렸다. 어쩜 저렇게 행동 하나하나가 얄미울 수 없는 거다. 그릇에 코 박고 식사하기 여념 없는 그에겐 마주 앉은 이보다 설렁탕 국물이 훨씬 더 소중한 건 아닌지 몹시 궁금했다.      

 배려는 받을 때 기쁘지만, 배려할 때 좀 더 으쓱해지기도 한다. 딱히 착하다고 말할 수 없는 스스로에게 위안이 된다. 마치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집어넣고 났을 때 마음과 비슷해서 돈을 잃고 만족감은 며칠 지속되는 것과 같다. 

 우린 배려에 너무 인색하다. 우선 나조차도 그렇다. 기분에 따라 주변 사람과 상황을 재단하고, 억울한 마음이라도 들면 주머니 속에 돈과 배려를 꽁꽁 숨겨둔다. 있어도 없는 척, 시치미 딱 떼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주머니에 든 배려와 돈을 꺼내야 한다면 그렇게 억울할 수 없는 거다. 세상은 나를 배려하지 않는데 온통 혼자서 세상을 다 배려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라도 짊어진 사람처럼 억울해한다. 


 배려는 크기와 빈도를 따지게 되는 순간부터 배려가 갖는 선한 특징을 모조리 잃게 된다. 배려는 돌려받을 생각하지 않고 베풀 때 그 맛이 끝내주는 조미료다. 그런 면에서 배려도 일종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 생신을 제외하고, 누구의 생일선물도 챙기지 않는다. 죽마고우의 선물도, 사랑하는 연인의 선물도 챙기지 않는다. 선물이라는 게 받을 때야 좋지만, 막상 그 사람의 생일이 돌아올 때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물을 고르면서도 자꾸만 눈치가 보이는 거다. 그리고 난 이게 좀 싫다. 친구가 작년 내 생일에 5만원 값어치의 선물을 주었다면 최소한 그 이상으로 비싼 선물을 골라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다른 선물과 겹치지 않으려면 친구의 SNS를 자주 들여다보면서 그가 가진 것들과 내가 고른 선물을 비교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결국 선물에서 진심이라는 게 빠져버린다. 떡하니 잘 고른 폭탄 하나가 예쁜 포장지로 둘러싸인 상황이다.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 배려가 진심 텅 빈 선물이 되지 않도록 사랑할 땐 늘 경계해야 한다. 연인을 위해 배려할 때는 돌려받을 생각하지 말고 베푸는 것도 추천한다. ‘어떻게 맨날 너 먹고 싶은 것만 먹니’라고 폭발할 것 같으면 차라리 오늘은 내가 먹고 싶은 거 먹으면 안 되냐고 물어보는 게 낫다. 괜히 배려랍시고 혼자 끙끙 앓아도 상대는 알아주지 않더라는 거다. 배려는 또 다른 말로 사랑이다. 한 사람 몸에 두 사람 마음이 공존하는 일, 배려 없인 할 수 없는 일, 우린 그걸 사랑이라 부르지 않던가. 

 배려도 길들여진다. 안 될 것 같지만 된다. 말에서 말로, 행동에서 행동으로, 그 전염성이 생각보다 강하다. 만약 상대로부터 배려를 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를 배려하는 것이 우선이다. 된장찌개 먹고 싶은 날, 피자가 먹고 싶다 해도 티 좀 내고 같이 먹어주는 거다. 한동안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느라 답답하기도 하겠지만, 일등하기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오래 뛸 수 있다. 달리기도,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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