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적은 것 이외에도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사람이나 경험들이 있다. 그 내용을 적는다.
1) 낙천적인 사람의 전형
Graham이라는 직원이 있었다. 전형적인 캐나다 백인으로 영업부서 직원이었는데, 부임 초기 다른 영업부서 직원들이 온갖 방식으로 나를 꽤나 괴롭혔던 것과는 달리여러 가지 면에서 내게 적지 않은 도움도 주었던 고마운 직원이었다.
항상 미소 띤 얼굴에 집착이나 욕심 같은 것과는너무나도 거리가 먼, 그저 뭐 "세상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식으로 사는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욕심이 너무 없어 그런지 사실 영업 실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미 하나로는 이만한 사람이 없었다.
'Graham(ɡrǽm)'이라는 이름이 알파벳은 다르지만 무게 측정단위인 gram(ɡræm)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해, 너는 하필 이름이 킬로그램, 밀리그램 할 때의 그램이냐고 농담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혼잣말도 자주 하던 이 친구는 말이 정말로 빨랐는데,말을 좀 천천히 해달라고 하면, 미안하다고 하고는 잠시 천천히 얘기하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원래 속도로 돌아가곤 했었다.
비록 업무적일지라도 캐나다에서 근무하는 동안 허물없이 친하게 지냈던 몇 안 되는 캐나다인 중 하나였는데, 다양한 제스처에 온갖 얼굴 표정을 써가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말을 하던 이 친구는 지금도 캐나다 어딘가에서 그 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렇게 변함없이 낙천적이고도 즐거운 삶을 살고 있을 것같다.
2) 녹색 눈동자
법인 남자 직원 중 녹색 눈을 가진 직원이 있었다. 평소에는 그 사실을 못 느꼈는데, 그 친구와 건물 밖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하다 우연히 그 친구의 눈동자가 녹색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백인은 흔하게 봤지만 녹색 눈동자를 가진 백인은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아, "눈이 녹색이네"라 했더니, 이 친구는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얼굴이 빨개졌다.
배가 산 같이 튀어나온 꽤 우람한 체격의 그 백인이 그렇게 수줍어하는 것을 보니 좀 우습기도 했는데, 도대체 그 말이 왜 그리 쑥스러웠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3) Marketing Manager
토론토 편 초반부에서도 언급했던 사건이지만, 자신의 목을 졸랐다고 영업책임자를 고소했던 마케팅 매니저가 퇴직 후 다른 회사에 다닐 때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집 지하실을 새로 공사했는데 법인에서 사용하던 마케팅 물품 중에 필요 없는 것이 있으면 좀 싸게 달라고 했다. 말은 싸게 달라고 했는데 들리기에는 그냥 달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문제가 있던 영업책임자를 해고하는 데 자신의 고소 건이 일정 부분 기여한 셈이 되었으니 보상을 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해주고 싶기도 했지만 너무도 명백한 규정 위반이라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답을 했다.
4) 그리스계 캐나다인
Jimmy라는 사람인데, 여러 가지로 많은 추억이 남아있는 사람이다.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불과 몇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매우 젊은 일본 여자와 재혼해서 살았다. 마치 재즈음악을 하는 음악가처럼 긴 머리를 뒤로 딴 꽁지머리를 하고 다녔는데, 실제 다양한 악기도 연주하곤 했었다.
자신감 넘치고, 말도 잘하고, 잘 웃는 친구였는데, 법인에서 유일하게 차 덮개를 접을 수 있는 Convertible 차를당시에 타고 다녔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원래 타제품을 담당했던 영업 책임자였지만 우리 쪽 영업책임자가 여러 가지 문제로 해고되고 나서는 우리 쪽 제품까지도 같이 관장하게 되었던 사람이다.
한 번은 이 친구가 퀘벡에 있는 대형 거래선과 대판 싸워서 이후 그 거래선 주문 물량이 갑자기 끊어지는 바람에 한 때 꽤나 고생하기도 했다. 그만큼 다혈질이고 열정적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한번 내가 무의식 중에 너무 심하게 이 친구에게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 친구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체격도 크고, '을'의 입장에서 '갑'인 거래선과도 싸울 만큼 다혈질인 친구였지만, 음악을 사랑하던 그는 태생적으로는 그만큼 정이 많고 감성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캐나다를 떠난 이후에 서로 연락이 없었던 이 친구 근황을 알아보려고 얼마 전 SNS와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이 친구가 2017년 4월에 심장 마비로 급사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나와 동갑이었거나 1살 정도는 더 어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50대 중반 나이에 벌써 그렇게 되었다니 많이 놀랐다.
우리 회사 미국법인으로 스카우트되어 간 이후에 그곳에서 다시 경쟁사 대표로 영전되어 갔다는 소식까지도 들었고 그 이후 더욱 성공해서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만생각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허망하게 한순간 세상을 떠날 수 있는지....
이 친구가 캐나다에서 활동하던 시절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지금도 볼 수 있는데, 모니터 화면으로 보이는 미소 띤 그의 과거 사진들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다 보니 시간을 거슬러 2000년대 초반 캐나다로 되돌아가 마치 그와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순간적인 착각이 들기도 했다. 생(生)과 사(死)의 차이는 정말 한 순간으로 그 차이가 어쩌면 그다지 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공유했던 수많은 얘기들, 시간들, 공간들 모두 다 뒤로 하고 아픔을 기억할 틈도 없이 한 순간에 이 땅에서의 삶을 훌쩍 떠난 셈인데 인간이란 모두 그렇게 언젠가는 허망하게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가 예외가 될 수 있겠는가....
5) The sales Rep in Vancouver
밴쿠버는 당시 캐나다 최대 거래선의 본사가 있던 곳이기도 했고 또 시장규모나 인구면에서도 서부지역 최대 시장으로 우리 법인 입장에서는 꽤 중요한 도시였다.
하지만 법인이 위치하고 있던 토론토에서 이 밴쿠버까지는 항공기 비행시간만으로도 무려 4~5시간이 걸릴 만큼 멀어 자주 방문할 수가 없었고 결국 밴쿠버에는 그곳에 거주하는 인력을 별도로 채용하여 재택근무하면서 거래선과 시장을 관리하도록 했었다.
그런데 밴쿠버에 있는 그 인력이 거래선과 법인의중간에서 부리는 장난(?)이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우리 법인 급여를 받는 인력인지 거래선 직원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법인의 영업기밀들을 거래선에 수시로 제공해서 거래선의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 주 목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쉽게 교체할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그가 당시 밴쿠버에 있던 캐나다 최대 거래선 회장과 매우 가까운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업인력과 그 거래선 회장과의 인연은 꽤 특이했다. 그 거래선은 중동의 부호가 캐나다에 투자해 만든 회사였는데, 우연히 그 중동 부호의 개인 영어 선생을 그가 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만났고 이후 꽤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한다.
그는 영어 선생을 그만둔 후, 몇몇 회사의 영업을 담당하다 우리 회사의 밴쿠버 상주 직원으로 채용되었는데 거래선의 회장과 개인적으로도 너무 잘 아는 관계이다 보니 우리뿐만 아니라, '갑'의 입장에 있는 그 거래선의 바이어들조차 이 인력에게는 다소 부담을 갖고 조심해서 대하곤 했었다.
물론 이 인력은 회장과의 그런 개인적 친분에서 만들어지는 주변 사람들의 그러한 인식과 시선을 자신의 이익 극대화에 최대한 활용했었다.
그는 체중이 150kg도 훌쩍 넘어 보일 정도로 매우 비대한 사람이었는데, 집안의 유전인지 같이 살고 있다는 여동생도 역시 체중이 비슷했다 한다. 자신의 과다한 체중을 이유로 토론토-밴쿠버 항공 이동시에 규정상 당시 모든 직원들이 사용해야 했던 비좁은 일반석이 아닌 Business Class를 요구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기억하는 이 친구의 명언이 있다. 하도 실적이 좋지 않아 어느 날 회의하면서 뭐라고 잔소리를 좀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바로 대꾸하기를 "나는 비난으로는 좀처럼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한국 본사에서 상사의 같은 질책에 만일 내가 그렇게 답을 했다면아마도....
몸은 비대했지만 거래선과 법인 사이에서 이중간첩(?)과 같은 때로는 교활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행위를 많이 했던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그 중동 부호가 자신의 회사를 미국 회사에 팔아버려 이후에는 더 이상 거래선 회장과의 특별한 관계를 자신의 이익 극대화에 활용하지 못했을 것 같다.
6) Michelle Breau, 완벽한 Bilingual
이름에서 알 수가 있듯이 그녀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이었다. 하지만 고향이 퀘벡주는 아니었고 정확히 지명이 기억나지 않지만 퀘벡인근의 어느 지역 출신이었다. 그런데 퀘벡주 출신이 아니라 그런지 신기하게도 그녀가 구사했던 불어는 알아듣기 어려웠던 퀘벡식 불어와는 달랐고 프랑스 본토 불어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녀는 불어와 영어 모두를 완벽하게 구사했던 직원으로서 마케팅 부서에서 내 부하 직원으로 근무했는데 성격이 매우 좋았다. 그녀에게 미국과 캐나다가 전쟁하면 누가 이길 것 같냐는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짓궂은 질문도 종종 건네곤 했는데, 그녀는 항상 덤덤한 표정으로 받아넘기곤 했었다. 2000년대 초 당시 30대 중반인가 그랬으니, 15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현재 그녀도 이제 나이 50이 넘는 중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세월의 무게가 새삼 무섭다....
그녀가 하는 질문을 듣고 한참 웃었던 적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게 질문하기를, 옆 부서에 근무하는 한국인 주재원도 같은 한국인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당연히 한국 사람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질문인가 싶어 왜 그런 의문을 갖게 되었냐 물었더니, 말투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 주재원은 고향이 경상도였는데 다른 경상도 출신보다는 사투리가 훨씬 더 심했다. 그리고 그런 강한 사투리 억양은 한국말을 할 때는 물론, 영어를 할 때도 역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캐나다인이었지만 그녀가 듣기에도 그의 말투는 다른 한국인 주재원들의 말투와는 좀 많이 다르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주말에는 골프를 자주 쳐서 그랬는지 유난히 그 주재원 피부색은 좀 더 검은 편이었으니 말투에 피부색까지 많이 달라 보이는 그가 정말 같은 한국사람인지 꽤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사투리가 심한 그 선배 주재원은 오래전 퇴사하고 요즘에는 서울에서 피자가게 하는데, 지금도 나와 같은 아파트 위에 살던 주재원 하고 함께 가끔 셋이 만나서 옛날 캐나다 시절 얘기들 안주 삼아 술 한잔 하곤 한다. 사투리는 여전히 심해 요즘도 같은 한국 사람인 내가 들어도 가끔은 못 알아듣는 말이 있다.
7) 학교 대선배의 아들
KJ라고 내 부서에서 근무하던 교민 1.5세대 직원이 있었다. 성실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업무 성과도 좋은 직원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의 아버지가 나와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한 대선배였다.
그 선배는 같은 과 대학 후배가 캐나다에서, 그것도 자신의 아들과 같이 근무를 한다 하니 반가웠는지 한 번은 집으로 나를 초대해줘서 그 선배 부인께서 해주시는 정통 가정식 한국 음식을 오랜만에 너무나 맛있게 먹을 수도 있었다.
그 선배는 내가 새까만 후배임에도 식사 내내 꽤 자상하게 대해 주었는데 혹 내가 그분 아들 직장 상사라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독신으로 사는 새까만 후배가 이역만리 캐나다에 혼자 와서 외롭게 사는 것이 좀 안쓰러워 보였던 것 같고, 또 나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혼자 북미에 와서 외롭고 어렵게 살았다는 자신의 과거 시절을 회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선배의 아들은 체격도 좋은 편에 인물까지도 잘 생겨서 늘씬하고 외모도 빼어난 젊은 교민 여성이 자주 회사에까지 찾아와서 그 직원이 퇴근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왠지 이 친구는 그 미모의 여인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고 잘 만나 주지도 않았다. 그런 경우가 전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마냥 부러운 일이었다.
이 직원과 한번 미국 본사에 같이 출장 갈 기회가 있었는데, 토론토 공항에 있는 미국 입국심사대 근처에 오더니, 돌연 자신은 입국 심사에 좀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 나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토론토에서 미국행 항공기에 탑승을 할 때는 토론토 공항에서 탑승 전에 미국 입국심사를 받았다)
그런데 그의 말 대로 먼저 심사를 마치고 공항 대합실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항공기 출발 시간이 다 되도록 그 직원이 나타나질 않았다. 잠시 후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는데, 입국 심사 과정에 문제가 생겨 서류를 보완해야 하니 오늘은 못 가고 다음날 다른 항공편으로 미국에 가겠다고 했다.
결국 다음날 미국으로 오긴 했는데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캐나다 이민 오기 전에 미국에서 유학할 때 체류자격 관련 뭔가 문제가 한번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건이 문제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미국을 떠나 캐나다로 유학 왔는데, 이후 미국에 다시 입국할 때면 항상 이런 식으로 입국심사에서 문제가 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한다. 최종적으로는 입국하게 해 주기는 하는데, 바로 허가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번번이 재심사 과정을 거친다는 얘기였다.
미국에서 아무런 이슈가 없었던 나도 미국 입국심사를 받을 때는 간혹 꽤 까다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렇게 번번이 재심사받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면 그것도 참 신경 쓰이고 피곤한 일이었을 것 같다.
미국이 유난히 심하기는 하지만, 전 세계 어느 국가를 가던 입국 심사대 앞에만 서면 긴장되는 기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다.
8) Kevin
역시 내 부서에서 근무하던 1.5세대 교민 직원인데, 채용 인터뷰할 때부터 꽤나 특이했던 친구였다. 그는 인터뷰 중 아침에 제시간에 깨지 못해서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종종 지각하곤 했다는 얘기를 불쑥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사실 알지도 못했고, 그와 관련된 질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스스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물론 나중에 Reference Check 할 경우에 대비해서 미리 그런 사실을 솔직하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는다든지 뭐 이런 얘기도 같이 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사실만 덜렁 얘기했다.
그 외에도 인터뷰 내내 특이한 얘기를 꽤 많이 했는데, 당시 내가 무언가에 홀렸었는지 그런 이상한 얘기들을 듣고도 그 직원을 채용했다. 그런데 막상 채용하고 보니 의외로 매우 성실하고 업무처리도 잘해서 꽤 만족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역시 같이 근무해보니 인터뷰 당시의 언행처럼 뭔가 특이한 면이 많기는 했다.
멕시코 법인에 회의가 있어 함께 출장 갔을 때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면서도 알지도 못하는 생면부지의 멕시코 사람이 스페인어로 하는 말을 10여 분간 듣고 있었던 직원도 바로 이 직원이다. 자신은 스페인어를 못한다는 말을 할 기회를 놓쳐서 그 멕시코인의 말을 중단시키지 못하고 할 수 없이 계속 듣고 있었단다....
9) di Ponzio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태리계 캐나다인으로 당시 법인의 인사과장이었다. 성실하고 또 일 처리 능력도 매우 뛰어난 친구였는데, 내가 캐나다를 떠난 후에는 임원으로 승진해서 미국 본사로 스카우트되어 갔다.
법인의 캐나다인 직원들과는 사적인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술 한잔 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 친구와는 퇴근하면서 회사 근처의 이태리 식당에서 가끔 와인도 같이 한잔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런 친분은 내가 본사로 귀임한 이후에도 이어져서 이 친구가 한국에 출장 왔을 때 서울에서도 다시 같이 한잔하기도 했었다.
이태리계 캐나다인이니 당연히 토론토의 꽤 괜찮은 이태리 식당들을 많이 알고 있었는데, 이 친구와 같이 갔던 이태리 식당에서 이태리식 굴요리도 먹어보고 또 프랑스 치즈만큼 냄새가 독한 이태리 치즈도 맛볼 수가 있었다. 프랑스만큼 포도주를 사랑하는 이태리 출신답게 자신이 직접 포도주를 담그기도 했는데, 그 포도주 맛이 꽤 좋아 몇 박스 산 적도 있었다.
그 계기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친구와 친해지고 나서 언젠가부터 이 친구는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종종 놀리곤 했고, 내가 캐나다를 떠난 이후에도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을 때, 그때 놀리던 식으로 "strangeeeeeee~~"라 적은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캐나다를 떠난 이후 그는 결혼을 했고 나중에 부인과 아이들 사진을 보내왔는데, 정직하고 선한 사람이라 복도 많이 받았는지 부인이 꽤 미인이었고 인상도 좋았다. 같은 이태리계 캐나다인이지만 문제가 많았던 영업책임자와는 너무도 다르게 항상 규율과 원칙을 존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직원이었다.
사진) di Ponzio가 보내온 가족사진 (2007. 8월 사진)
10) 9.11 테러
뉴욕에 있는 World Trade Center 빌딩에의 항공기 자살 테러로 수천 명의 미국 시민이 사망한 2001년 9월 11일 사건 당시 나는 뉴욕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토론토에있는 우리 회사 캐나다 법인에 근무하고 있었다.
마침 9월 11일 그날 캐나다로 출장 왔던 본사 직원이 다음 출장지인 미국 뉴저지로 이동해야 해서 토론토 공항에까지 태워다 주고 사무실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바로 그 출장자로부터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방금 미국 공항에 막 도착했는데, 와서 보니 뉴욕의 WTC 쌍둥이 빌딩 건물 전체가 무너지고 있고, 그것이 TV로도 중계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이거나 뭘 잘못 본 것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혹시나 싶어 내 방에서 나와 보니, 법인의 직원들 모두 이미 얼굴이 사색이 되어 사무실내 TV를 보고 있었는데 TV 속의 화면에는 그 출장자가 말한 그대로 납치된 여객기가 뉴욕의 초대형 건물로 실제 돌진하여 충돌하는 모습, 그리고 그로 인해 그 높은 WTC 건물 전체가 붕괴되는 끔찍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중계되고 있었다.
1~2시간 전 뉴저지행 항공기에 탑승했던 그 출장자로서는 WTC 건물로 돌진해 폭파된 항공기들과 같은 시간에 같은 하늘에 자신의 항공기도 떠 있었을 터이니, 좀 더 오싹했을 것이다.
그 사건 이후 18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당시 TV로 생중계되던 그런 끔찍한 장면들은 여전히 눈에 선하다. 멀리서 TV로만 봤던 나 같은 사람에게조차 그날의 사건은 일종의 정신적 Trauma로 남아 있는데,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충격은 얼마나 더 심각했을지....
수천 명에 달하는 생명을 무참히 앗아간 테러를, 죄책감은 고사하고 오히려 종교와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인간의 광기는 참으로 무서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