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적은 것 이외에도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사람이나 경험들이 있다. 그 내용을 1편에 이어 적는다.
11) 일본 본사에 항의?
하루는 아침에 출근하니 법인 건물 현관 앞에 편지가 한 통 놓여 있었다. 그 내용을 읽어 보니 우리가 판매했던 제품에 문제가 있는데 콜센터에서 제대로 대응을 해주지 않았으니, 일본에 있는 너희 회사 본사로 직접 항의문을 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회사의 본사는 당연히 한국에 있었는데 일본에 있는 본사로 항의한다고 하니 무슨 얘기인지 언뜻 이해가 안 돼 혹 다른 일본 회사로 갈 편지가 우리에게 잘못 배달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 보니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에 대한 얘기가 맞았다. 결국 우리의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 제품을 만든 회사가 일본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요즘도 비슷하겠지만 당시 캐나다에서 팔리던 공산품 중의 상당한 부분은 일본,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의 기업체들이 제조한 것들이었는데, 당시 캐나다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싸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은 중국산, 좀 더 비싸고 복잡한 제품은 일본산이라는 인식을 통상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제품 가격대가 그 중간 정도에 있었던 한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그다지 많지 않으니 자동차나 전자제품 등 분야에서 한국산 제품이 그 당시에도 이미 꽤 수입되어 실제 소비되고 있었음에도, 그 제품들을 생산하는 기업체가 정작 한국 회사인지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했던 제품은 꽤 비싼 고가제품이다 보니 그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일본 기업체가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그래서 일본에 있다는 본사에 항의하겠다는 그런 엉뚱한 편지를 써서 우리에게 보내왔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얘기다. 요즘은 그런 인식이 많이 바뀌었을것이다.
12) 내가 만난 콥트교인
흔히 아랍권 국가에는 기독교도는 거의 없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나 역시 이집트 같은 중동국가에는 기독교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이슬람 테러집단이 이집트의 기독교도라 불리는 콥트교도 인질들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언론 보도를 보고 확인해 보니 이집트의 콥트교인은 전체 인구의 무려 10%나 될 만큼 많다고 한다. 아울러 이 콥트교 창시자도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인 마가(Mark)로 알려져 있을 만큼 역사적 뿌리 또한 깊다고 한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캐나다 법인에 근무할 때 나도 이 콥트교도를 이미 직접 만나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여성인 재무과장이 이집트 이민자 출신이었는데 자신 종교에 대해 얘기하면서 뭐라고 했는데 내가 처음 들어보는 종교라서 잘 모르겠다 했더니 일종의 기독교라고 다시금 부연 설명을 해 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 사람이 기독교도라고 해서 캐나다에 이민 온 이후 종교가 바뀐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이집트에 콥트교도가전체 인구의 10%라면 이집트 인구가 약 1억 명이니 곱트교도가 약 1천만 명이나 된다는 얘기인데 그녀 역시 그 많은 이집트 콥트교도 중 하나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참고로 콥트교는 AD 450년경 교리상 문제로 기독교에서 갈라졌는데, 기독교가 예수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모두 인정하는 양성(兩性)설을 믿는 반면, 콥트교는 예수의 신성(神性)만을 인정하는 단성설(單性說)을 신봉한다고 한다.
13) 캐나다의 미터법
미국에는 아예 미터법이 도입되지 않았지만, 내가 주재하던 2000년 초 캐나다에는 이미 미터법이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캐나다에 도착하기도약 30여 년 전인 1970년부터 도입되어 있었다 하니 그 역사도 꽤나 오래된 셈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미터법이 도입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면적은 습관적으로 '평'이라는 과거 도량형 단위가 보다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캐나다에서도 여전히 영미식 도량형 단위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어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캐나다 도로의 속도 표시는 한국처럼 km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도로에 80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있으면, 최고 제한 속도가 80km라는 의미지, 미국처럼 80 mile(129km)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미국에서부터 운전해서 캐나다로 넘어와 80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고 80마일 즉 129km로 달리면 당연히 교통법규 위반이 되는데 이것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했다.
반면 사람의 키를 얘기할 때는 meter나 centimeter를 잘 사용하지 않고 이번엔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국처럼 Inch를 사용했다. 무게도 kg보다는 파운드가 좀 더 사용되었던 것 같다. 요즘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다소간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14) 성이 하필이면 '기'씨이다보니....
법인의 교민 1.5세대 직원 중에는'매튜(Matthew)'라는 이름을 가진 직원이 있었다. Matthew는 한글 성경에서는 마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예수님 12 사도 중 한 사람의 영어식 이름으로, 캐나다 등 영어권에서는 너무나도 흔하게 사용되는 이름이었다. 따라서 그 이름 자체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 직원은 공교롭게도 성(姓)이 하필 '기(奇)'였다. 그러다 보니 성과 이름을 함께 부를 땐 이름을 먼저 부르고 성을 나중에 부르는 영어의관습상 '매튜 기'라고 불러야만 했는데, 그 발음이 한국말 '메뚜기'와 너무도유사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의도적으로 '메뚜기'라 부르는 직원들도 꽤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훤칠하고 잘 생긴 이 친구는 홀쭉하면서 키까지 큰 편이라 외모에서도 메뚜기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았다.
15) 입국카드 영문 대필
태어나서 처음 미국 출장 갈 때였다. 항공기옆자리에 앉아 있던 연세 지긋하신 한국인께서 자신이 영어를 못해 그러니 입국 카드를 대신 적어 달라고 부탁을해서 입국 카드 질문 사항을 한국말로 번역해서 문의해 가면서 영어로 대신 적어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입국카드에 적힌 질문 사항에 대한 답들을 항목별로 듣다 보니, 그의 집은 미국이고 그는미국에 거주한 지 이미매우 오래된 사람이었다. 심지어 미국의 영주권까지도갖고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입국 카드를 작성할 정도의 영어가 안 돼서생전 처음으로 미국 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영어로 작성해 줄 것을 부탁하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캐나다 토론토의 차이나타운이나 미국 대도시의 규모가 큰 차이나타운에서는 영어를 전혀 못해도 중국어만으로 얼마든지 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비록 차이나타운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로스앤젤레스나 뉴저지 같은 미국 대도시의 코리아타운에서도 마찬가지로 역시 한국어만으로도 얼마든지 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요즘은 중국의 연변에서도과거처럼 한국어가 그렇게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하니 좀 달라졌겠지만, 한때 한국 사람이 중국 연변에 가서 중국말로 말하면 그곳의 조선족 동포들이 중국어는 잘 못하니 제발 한국어로 말해달라고 했다는 것과 같은 상황이 미국 코리아타운에서도 있었던 것 같다.
16) 평일 또는 주말, 양자택일
당시 법인 주재원 업무량은 어차피 정상적 근무 시간으로는 제대로 다 소화될 수 없는 분량이었다. 결국 주말이나 평일 야간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부족한 근무 시간을 보충해야만 했는데, 나는 주말에 나와 근무하는 것을 선택해 주중에는 보통 저녁 8시 이전에는 퇴근했었다. 피곤하기도 했었지만, 너무 늦게까지 일하면 도무지 업무 집중이 안되고 효율성도 떨어져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렇게 했다.
반면 가족이 있었던 다른 주재원들은 나와는 반대로 모두가 주중에는 10시나 11시 또는 더 늦게까지 일을 하고 대신에 주말 이틀은 일체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온전히 가족들과만 함께 보내곤 했다. 천척이나 친지 등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객지에서 가족들이 생활하는 실정에서 적어도 주말 이틀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주중 시간을 희생했던 것이었다.
캐나다인 현지인들이야 당연히 주말에는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결국 주말 이틀간은 그 큰 법인 건물에 오로지 나 혼자 앉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지금도 기억나지만 아무도 없는 너무도 조용한 빈 사무실에서 혼자 주말에 있으면 어떨 때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좀 무섭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17)살인의 추억
법인에는 한국인 주재원이 4명 있었는데, 낮에 점심을 먹을 때는 인근 한국식당에 같이 먹으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는 널찍한 9인승 밴을 갖고 있던 주재원 차를 타고서 모두 함께 이동했는데,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는할 수 없었겠지만 영어 신경 쓸 필요 없이 주재원끼리만 다니면서 편하게 한국말로 대화하고 입에 맞는 얼큰한 한국음식들을 먹으러 다녔던 것이 힘든 주재 생활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작은즐거움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결국 요즘 말로 표현하면 '소확행'이었던 셈인데그당시 한국식당에서 즐겨 먹었던 매콤한 오징어 볶음은 지금도 그 맛이 그립다.
한 때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들의 갑작스러운 멸종 이유를 설명하는 가설 중, 거대한 채식 공룡들이 배출하는 엄청난 양의 방귀 가스가 지구온난화를 가져와서 공룡이 멸종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육고기를 못 먹는 나 역시 채식 위주 식사를 해서 그런지 지금도 방귀가 많은 편이지만 그때도 방귀가 유독 많았다.
더욱이 그때는 한꺼번에 급하게 과식하는 습관까지 있어서 트림도 자주 했었다. 그런 내가 한국식당에서 식사 후 함께 돌아올 때 밀폐된 9인승 밴 안에서 방귀를 뀌거나 또 트림을 하면 차 안에 타고 있던 다른 주재원들이 모두 기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자주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화를 내기도 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던 그 주재원들도 나중에는 포기를 했는지 내가 트림을 하거나 방귀를 뀌어도, 심지어 때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경우에도 아무 말없이 한숨만을 쉬며 각자 앉은자리 옆 창문을 조용히 열기만 했다.
하도 기겁을 하길래 장난친다고 일부러 더 과장되게 소리를 내기도 했는데, 캐나다 시절을 회상해 보니 이러한 유치한 행동들 조차 이제는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하지만내게는 꽤나 그리운 이 추억이 그 시절에 함께 그 밴을 타고 다녔던 다른 주재원들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살인 방귀의 추억'이었고, 어쩌면 '살인을 유발하는 것만 같았던 순간의 기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8) 몽고라는 단어의 또 다른 의미
어릴 적 한국인은 몽고 계통 민족이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는데, 우리 민족은이웃한 중국인이나 일본인과는 전혀 다른 민족이라는 이 말에 나름대로 묘한 자부심같은 것을 느끼며 성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백인이 쥬류 민족인 캐나다 혹은 프랑스 같은 곳에서 "한국인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는 다른 몽고계 민족입니다."라고 말하면, 적지 않은 백인의 표정이 갑자기 다소 어색하고 불편해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곤했었다.
처음에는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꽤 의아했는데, 나중에알고 보니 백인들은 과거 유럽의 중심 부근까지 대대적으로 침략했던 몽고제국에 대한 너무나도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몽고'라는 단어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백인들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기술한 역사 기록이 어느 정도 객관적인지는 사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몽고인이 유럽을 침략할 당시 유럽의 백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잔인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침략을 했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몽고인에 대한 매우 심한 부정적 선입견이 유럽인의 잠재의식 속에 깔려 있다 보니 '몽고'라는 단어는대다수의 유럽어에서는 Mongolism이나 Mongolian Idiocy처럼 '기형'이나 '지적장애' 같은 질병을 나타낼 때 사용되기도 한다.몽고인은 외형 모습부터가 정상인 모습이 아니라는 그런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