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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즈 언노운의 이상한 꿈

단편소설, 문밖에 온 저승사자(8)

by 죽림헌

미시즈 언노운은 가을날 마지막 저문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나른한 하품을 한다.


거실 창밖 하늘을 보니 어느새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 것 같다.

베란다 통창으로 보이는 바깥풍경은 녹음과 단풍이 교차되어 간다.

녹음보다 단풍의 색이 짙다.

햇빛이 빨리 지나가는 곳의 나무는 이미 물오르지 못하여 무거운 잎을 내려놓는다.

세월은 무상하고, 계절은 바지런하다


가라앉는 몸과 마음에 원기(元氣)를 줘야겠다 생각하고 믹스커피를 한잔 마시기로 했다.

오랜만에 분위기를 내어보자 하며 그녀는 웨지우드 커피잔에 타서 소파에 앉았다.

리모컨으로 TV를 켜고 우아하고 엣지 있게 손가락을 들고 한 모금 씩 음미하며 마신다.

지금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자기 당위성을 주장하며 마신다.

사람이란 원래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해도 자기 당위성을 주장하면 모든 것을 이긴다.

'하루 한 잔 정도는 괜찮아' 하며,



사람은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고 하였다.

딱 미시즈 언노운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몸은 나른하고, 커피는 달고, TV는 리모컨을 타고,



미시즈 언노운은 오리지널 대도시여자다.

그러나 시골 남편을 만나 깡촌으로 시집갔다.

차를 몇 번을 갈아타고 가야 한다. 정말 긴 여정과 같다.

수학여행 때 외에는 이런 시골로 가 본 적이 없다.

백설기같이 하얀 피부에 귀공자처럼 생겼더 만 이런 깡촌사람이었을 줄이야.

그녀는 대놓고 촌놈이라고 하였다.

미스터 언노운은 그녀의 말에 웃는다. 사는 동안 화나면 촌놈이라고 놀렸다.


시댁에 갔더니, 5남 3녀다.

아궁이에 불 지피는 것도 모르겠고 우사(牛舍)의 큰 소 두 마리도 너무 무섭다.

큰 눈을 대굴 거리며 코는 벌렁벌렁하니 숨 쉴 때 콧김이 하얗게 서려 훅훅 나왔다.

혀는 또 얼마나 길고 크던지 검은 혀가 널름널름 나왔다.

우사에는 큰 가마솥에 짚을 삶아 놓았다. 소죽이라고 하였다.


모든 것이 낮 설다. 부엌은 또 얼마나 지저분한 지 바닥이 흙바닥이다.

그런데 흙바닥이 반들반들하다. 얼마나 다져졌는지,

부엌에 가마솥만 3개가 걸려있다.

부엌 뒷문으로 나가니 그쪽에도 큰 양은솥이 걸려있다.

대관절 가족이 몇 명이란 말인가?

얼마나 많은 음식을 한다는 것인지 대충이라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명절에 가면, 처음 부엌에 입실하여 돌아갈 때까지 종종걸음이다.

밥도 못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미시즈 언노운은 나름 생각하고 일을 한다.

어차피 부엌일은 모른다. 걸레를 들었다. 온 집안을 다니며 청소를 한다.

늘 부러져 있는 옷가지를 정리하여 걸어놓고 빗자루를 찾아 장롱과 장아래의 먼지를

다 찾아 쓸어내었다. 펌프장에 가서 걸레를 빨아 구석구석을 닦았다.

당연히 펌프질을 할 줄 모른다. 받아놓은 물로 씻었다.

그 과정에 몇 번을 물어봤는지…


그녀, 미시즈언노운은 부엌을 보고 몸이 떨렸다.

부엌 설간에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하다.

그녀는 비로 쓸어내리고 닦았다.

그녀는 너무 열심히 일하였다. 몸이 저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기준이다.

밥을 먹지 못하였다. 도저히 부엌이 생각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미시즈 언노운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여 쓰러져 누워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녀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생각났다.

이럴 때 맛있는 죽을 끓여주면 좋겠다 생각하였다.

할머니가 계시면 그녀를 눕혀놓고 팔, 다리를 주물러 주셨을 텐데,

그녀는 할머니가 그립다.


미시즈 언노운, 그녀는 생각한다.

'다음번 갈 떼는 꼭 밥물 맞추는 것, 국, 반찬 몇 가지를 배우고 가자.'

그런데 사실 가마솥 밥물 맞추는 것은 남편에게 배웠다.

바가지를 솥에 넣어 뜨면 물이 알맞다고 하였다.

바가지는 물에서 뜨기시작하면 물이 아무리 많아도 뜬다.

그녀의 집에는 일제 수입품 코끼리 전기밥솥을 시집 갈때 준비해 갔다.

딱 그 전기밥솥 물만 맞추었다.





시아버님은 그녀를 참 예뻐하셨다.

다른 동서들은 모를 것이다. 시아버님께서 얼마나 자상한 분이신 지,

모두 겁을 내니 아버님이 무섭지 그런 분이 아니시다.

그녀와 대화도 잘 하셨다. 세상이야기를 물어 보셨다.

그러면 그녀는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며 신문의 내용, 세상의 이슈,

화전민 호적만들어 주는 것, 지리산 이야기, 새로운 기기이야기를 해드리면,

그녀의 시아버님은 음, 하며 고개를 끄득이시고, 건널목 천천히 걸으라고 도

말씀하셨다.


그녀의 시아버님은 그녀의 집에 오면 참 편안하다고 하셨다.

그녀, 미시즈 언노운은 시아버님이 오면 정형외과로 모시고 가서

관절에 놓는 뼈주사를 맏혀드리고 물리치료도 받게 하였다.

뼈주사라는 것이 가격이 비싼 것이었다. 의료보험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의료업무로 병원감독을 할 때 였으니 아마도 그녀의 입김이 닿았으리라.

그렇다고 공짜는 아니다.

그녀는 업무상 상당히 까다롭고 공정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이다.


한번 오시면 일주일씩 계시다 가셨다.

어떤 아들도 며느리도 아버님께 그렇게 해드리지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아버님이 오시면 살뜰히 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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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님께서 췌장암 말기라고 하셨다.

그녀는 시아버님을 병간호하러 갔다.

시간이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버님의 고통을 참아내는 신음소리는 지축을 흔들 듯 깊었다.

사람의 몸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다니, 얼마나 아프시면 저런 소리가 나올까,

너무 안타까웠다. 도와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거목(巨木) 같은 아버님이 저렇게 무너지는구나 싶었다.



자정을 지나서 그녀의 아버님께서 무엇이라 말씀을 하신다.

그녀, 미시즈 언노운이 아버님께 물어본다. 뭘 해드릴까요, 아버님.

그녀의 아버님께서 말씀하신다.


"아가, 밖에 누가 왔다." 하신다


그녀 미시즈 언노운은 방문을 열어 밖을 내다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님 아무도 없어요." 하였다.


그녀의 아버님이 손을 힘없이 저어며, 또 말씀하신다.


"아가, 밖에 누가 찾아왔다."


그녀는 대청으로 나가서 대청의 등을 켜고 밖을 살핀다. 아무것도 없었다.

불을 환히 밝혔다. 본채의 위치가 높기에 마루에 서서 보면 아래채와 행랑채 곳간이 다 보인다.

뒷문은 집 뒤 메밀밭 언덕과 그 너머의 넓은 밭과 연결되어 있다.

미시즈 언노운은 사는 동안 그 언덕을 넘어서 갈 일이 없었다.

그 언덕너머는 첫째 동서가 모든 것을 시골에서 가져가 생활하였기에

그곳에서 나는 모든 푸성기는 그녀의 수확물이나 진배없었다.



집에 연결된 터만 2천 평이 넘는다고 하였다.

그녀는 시댁재산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남편이 이야기하는 것을 그르려니하고 듣기만 하였다.

그런곳에 신경쓰기에는 그녀, 미시즈 언노운의 업무는 과중하고 많았다.



본채마루에 서서 전체를 살펴보니 사람흔적이나 다른 동물의 흔적이 없었다.

우사 쪽과 건너편 농기구 창고 쪽도 조용하였다.


기실 미시즈 언노운은 겁이 엄청 많다. 밤이 되면 나가지 않는다.

마루에서 내려설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본채 뒤쪽에 대나무 숲이 빽빽이 둘러 펼쳐져 있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 잎이 사사삭 구르며 부딪히는 소리를 내고,

바람이 지나가면 바람 길을 내어주는 소리가 난다.

이집은, 아버님의 집은 죽림헌(竹林軒)이다.



대나무 숲엔 배암이 있다. 겁 많은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그때 그녀는 배암을 보고 소스라치며 놀라 기암하듯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나르듯

튀어 마루 위로 올라섰던 적이 있기에 밤에는 조심한다.

그녀의 남편은 그런 것을 안다.

그녀의 어머니인 장모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비 오는 날 마루에서 내려서다 댓돌 위에 앉아 꾸웩 꾸르륵하며 소리 내는 두꺼비에 놀라

또 마루 위로 뛰어올랐다.


그녀에게는 시골집 곳곳이 지뢰밭 같았다. 발걸음 옮길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밤이 되면 밖으로 나가는 심부름은 하지 않았다, 시키지도 않는다.





미시즈 언노운, 그녀는 아버님께 고한다.


"아버님, 밖에 아무도 없어요. 확인했어요. 제가 지키고 있을 게요. 걱정 마세요." 하였다.


아버님은 고개를 끄득이셨다.


그러나 조금 있다 또 말씀하신다.


"아가, 밖에 검은 옷을 입고 갓을 쓴 남자가 와 있다."


미시즈 언노운은 방문을 열고 밖에 잠깐 나갔다.

마루에 앉아 개를 불렀다.

시골집 개는 보더콜리다. 셋째 시누이가 집 지키라고 보낸 것이다.


그 밤, 개는 미친 듯이 짖어대었다.


미시즈 언노운은 보통 때라면 조용히 하라고 하였을 터인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 같은 밤이었다.


아침이 희뿌연 하늘을 뚫고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의 긴장이 풀어졌다.


'아! 이제 되었다.'


해가 떠 오르고 아버님이 조용히 주무시는 것을 보고 그제야 안심하였다.


참으로 갈고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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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떨어진 리모컨을 집어 들며 깨어 일어난다.

온 몸에 소름이 돋고있었다. 얼마나 긴장하고 두려웠는지,


그녀는 소파에 앉아 곰곰히 생각한다.


그 밤, 그녀의 시아버님은 저승사자가 문 앞에 온 것을 아신 것이다.

고마운 보더콜리, 개도 보았던 것이다.

미친듯이 짓어 주인을 지켰다.


#저승사자가 찾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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