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료칸에 반하신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계신 엄마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 엄마의 안부를 묻습니다.
어느 날 전화를 하니 아파트 노인회관에 가서 놀다가 오셨다고 하시며 "노인회관에 00가 중국 여행 다녀왔다고 해서 얘기 듣고 놀다 왔어." 하셨습니다.
엄마의 부러움 섞인 말씀에 우리 엄마도 더 나이 드시기 전에 해외여행 한번 모시고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젊으셨을 때는 자식들이 자리 잡기 전이라 형편이 안 돼서 모시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드셔서는 아버지께서 폐가 안 좋아 숨이 차 걷지 못하셔서 엄마는 아버지를 돌보느라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팔순을 넘기셨습니다.
시간이 맞는 막냇동생과 엄마를 모시고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일본어를 잘하는 큰딸이 가이드를 하기로 하고 계획을 잡았습니다.
가까운 일본으로 간다고 해도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 온천까지 가는 시간등 하루가 걸리는 여정입니다.
연세도 있으신 데다가 양쪽 무릎 수술까지 한 엄마를 모시고 갈 생각을 하니 동생과 나는 잔뜩 긴장을 했습니다.
장소는 일본 규슈 유후인에 있는 고급 료칸 바이엔(매화정원).
노천온천이 딸린 독채 료칸에서 2박 하는 동안 온천만 하자는 생각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여행 가기 전날 엄마는 아버지께 인사하고 가고 싶다 하셔서 아버지 묘에 다녀왔습니다.
엄마는 "나 애들이랑 일본 여행 가요! 잘 다녀올게요!" 하고 인사를 하시는 겁니다.
아버지와 함께 못 가시는 게 맘에 걸리셨나 봅니다.
"엄마,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자유롭게 여기저기 여행 다니실 거예요~^^"
엄마를 모시고 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큰딸은 공항버스를 타고 가다가 딸 집 앞에서 타기로 하고 동생과는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엄마의 컨디션은 좋아 보여서 다행이었습니다.
공항에 도착 후 간단히 샌드위치로 아침식사를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엄마는 빵도 잘 드시고 난생처음 가시는 해외여행에 약간 설레어 보였습니다.
사달은 나에게서 일어났습니다. 샌드위치를 먹은 것이 얹힌 거 같았습니다.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속이 좋지 않아 엄마를 모시고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얹혀 가는 신세가 되었고 엄마는 내 걱정을 더 하셨습니다.
엄마의 첫 해외여행을 망칠 수 없어 바짝 긴장하고 몸이 좋지 않은 걸 내색하지 않으려 꾹 참았습니다.
드디어 일본 후쿠오카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어 통역사인 딸이 있어 입국수속, 버스 티켓팅 모두 어려움 없이 잘 진행되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유후인까지 2시간을 달려 온천에 도착했습니다.
바이엔에 도착해 딸이 체크인을 합니다.
숙소로 가는 길엔 정원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숙소에 들어가는 순간 하루의 고단함이 싹 가시는 거 같았습니다.
독채 료칸 이어서 커다란 욕탕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습니다.
방안에는 웰컴티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호지차와 과자가 있었는데 차 맛이 구수하고 맛있었습니다.
엄마의 얼굴이 환해지며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너무 좋아하시는 엄마를 보며 빨리 모시고 오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너무 좋다, 이렇게 좋은 데가 있냐?"라고 하셨습니다.
평소 일본 여행은 별로라고 하던 동생은 텐션이 올라가서 "이 정도면 올 만 하네! 좋다!" "돈이 좋네!" 하는 겁니다.
큰딸이 할머니의 첫 해외여행을 위해 좋은 숙소를 고르고 골라 선택한 곳이니 당연히 좋을 수밖에요!
방 구경을 하고 료칸 내 식당으로 갑니다.
저녁 식사로 가이세키(일본식 코스요리)를 먹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정갈하게 우리 앞으로 차려집니다.
딸이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통역해 주는 설명을 들으며 엄마도 맛있게 잘 드셨습니다.
식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간 엄마는 바로 온천탕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여자들끼리 왔으니 가운만 입고 욕탕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사우나를 좋아하시는 엄마는 나오실 줄 모르고 즐기셨습니다.
너무 오래 하시면 기운 빠질까 봐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오히려 평소 사우나를 오래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내가 기운이 빠졌습니다.
효도여행을 왔는데 내가 민폐인 것 같은 난감한 마음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식사(일본식 가정식)를 하고 오전에 온천탕에서 한바탕 놀았습니다.
엄마는 온천 후 기운이 빠질까 걱정했는데 컨디션이 좋아 보여 산책을 나가기로 합니다.
우리보다 더 잘 걸으시는 엄마를 보니 얼마나 이렇게 다니고 싶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소 근처 긴린호수와 주변 상점들을 돌아보며 새로운 풍경과 문화를 즐겼습니다.
오랫동안 산책을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또 온천탕으로 들어갑니다.
정말 원 없이 온천을 즐기시는 우리 엄마는 지치지도 않으십니다.
두 번째 밤이자 마지막 밤, 모녀 3대는 함께 탕 안에서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엄마 얼굴에 팩도 붙여 드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습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일어나시자마자 온천탕에 들어가십니다. "이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어떻게 가냐?" 하십니다.
일본의 온천을 제대로 즐기신 모양입니다.
또 모시고 와야 할 텐데 이렇게 눈높이가 높이 올라가 다음이 부담스러워집니다.
하지만 그동안 고생하신 엄마의 첫 해외여행을 좋은 곳에서 시작했으니 마음이 한결 좋았습니다.
엄마의 아쉬워하는 아련한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짧은 2박 3일, 아쉬운 온천여행을 마치고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생과 나는 하이파이브를 했습니다.
성공적인 엄마의 첫 해외여행을 무사히 안전하게 잘 마친 안도감에 무언의 자축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