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유전자는 가족이 되는 순간 전염되는 걸까?
"언니, 토리아빠가 엄마한테 같이 가재!"
"뭐야? 우리끼리 가자니까?"
"그러게, 자매들만 간다고 했는데도 같이 가고 싶어 해!"
세 자매만 엄마한테 다녀오자고 했는데 동생이 전화로 제부의 동행을 알려왔습니다.
자매들만 오붓하게 다녀오자 해놓고 남편들이 동행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우리 자매들의 남편들은 아내를 너무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소위 아내 껌딱지라고 하죠.
사랑꾼(아내 껌딱지)의 유전은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거 같습니다.
꼼꼼한 성격인 아버지는 엄마를 도와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또, 엄마가 어딜 가든 항상 동행하셨습니다.
시골 외갓집 동네에서도 처가에 잘하는 사위로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와 엄마는 젊으셨을 땐 여행도 잘 다니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중년 이후 폐가 안 좋아 숨이 차서 오래 걸을 수 없었습니다.
노년엔 휴대용 산소통을 들고 다니셨습니다.
엄마와 여행은 물론, 멀리 사는 딸들 집에도 오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아버지는 80세까지 아버지의 다리가 되어준 자동차를 손수 운전하고 다니셨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를 태워 집 근처 드라이브로 위안을 삼으셨던 거죠.
아버지가 하늘나라 가시고 혼자 계신 엄마는 사랑꾼 아버지의 빈자리를 많이 허전해하십니다.
지난해 여름, 혼자 계신 엄마를 모시고 네 모녀가 첫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 세 자매도 우리들만의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늘 남편들이 동행, 아니면 가족 여행이 되었으니까요.
장소는 엄마가 좋아하는 온천으로 정했습니다.
수영장과 사우나를 맘껏 즐기신 엄마는 콧노래를 부르실 정도로 좋아하셨습니다.
딸들과의 첫 여행이 즐거우셨나 봅니다.
큰딸이 혼자 남아 있는 남편을 위로차 퇴근 후 술 한잔 하러 만났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기운 없는 모습으로 나와서 "아빠, 엄마가 없어서 힘이 없어요?" 하니 남편이 "사는 재미가 없어."라고 했다며 딸이 영상통화를 걸어왔습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얘기지만 그 한마디로 사랑꾼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여행 중 제부의 연락도 왔습니다.
토리(동생이 기르는 애완견)가 거실 통창 앞에서 마당을 내다보는 사진을 보내며 '엄마 기다리는 중'이라고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제부가 아내를 기다리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유전자(아내 껌딱지)는 제 사위에게도 유전되었나 봅니다.
따뜻하고 자상한 사위는 결혼 6년 차입니다.
아내와의 여행을 좋아하는 건 물론이고 주말만 기다립니다.
이유는 아내와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아버지 엄마의 사이좋았던 모습은 나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나와 남편도 딸과 사위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딸과 사위의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새로이 배워봅니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보이지 않는 사랑 유전자는 사위들에게, 또 손주 사위에게까지 흐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