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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건우 Aug 19. 2023

10 마트에는 삶이 스며있다

10. 사람냄새 가득한 마트

마트는 현대판 시장이다. 시장은 사람이 모이 곳이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만남이 있는 곳이고, 정이 넘치는 곳이다. 하지만 마트에는 사람은 모이지만 이야기가 없고, 만남은 있지만 정은 없다. 고객을 손님이 아니라 이웃으로 여기고, 소소한 안부라도 묻는 마트를 만들려고 했다.


숨 가쁘게 바쁜 일상에서도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 세심하게 살핀다. 수많은 사람이 잠시 잠깐 스치고 지나가지만 최대한 고객얼굴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계산을 할 때면,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으려 하는지, 주말이라고 자식들이 놀러 왔는지, 점심 먹은 게 소화가 잘 되지 않는지, 새로 이사 온 손님인지 금세 알게 된다. 단골고객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담배는 뭘 피우는지, 술은 뭘 먹는지, 커피는 뭘 마시는지 알 수 있다.


마트는 나에게 생존을 위한 충분조건이고, 고객에게는 필요조건일 것이다. 고객에게도 우리 마트가 충분조건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 될 것이다.



# 할머니와 손녀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위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다. 땅에서는 습기 먹은 열기가 올라오며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한다. 출근길, 마트 앞에 다다르니 눈에 익은 할머니 두 분이 보인다. 노란 조끼를 맞춰 입고, 오른손에는 기다란 집게를, 왼손에는 하얀 봉투를 들고 다니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하고 있다. 코너를 돌아 힘차게 내달리는 차들이 할머니를 위협하는데도 아랑곳 않고 제 할 일만 묵묵히 하고 있다. 마트 문을 열고 오픈 준비를 하고 있으니, 조금 전 봤던 할머니 두 분이 들어온다. 얼굴에는 땀이 흥건하고 거친 숨을 내 쉬는 것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6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씩 고르더니 이내 나가려고 한다.


“밖에 나가면 더우니 저기 쌀 포대 위에 앉아서 드시고 가세요?”


그래도 되냐고 하면서도 한 분은 경기미에, 한 분은 당진쌀에 앉아서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나도 오픈 준비 하느라 분주해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20여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시원한 데서 잘 먹고 잘 쉬었다가요, 고마워요.”


연신 허리를 굽히며 나간다. 마트에 들어오기 전에도 가히 수 백 번은 넘게 허리를 굽혔다 폈을 것이다. 나가는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아침에 봤던 할머니 중 한 분이 오후 늦은 시간에 손녀 손을 잡고 들어온다. 아침에 뵀을 때 하고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얼굴에 웃음기가 만개해 있고, 행복감이 넘쳐 보인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골라봐, 할머니가 사줄게”


손녀는 이천 원짜리 구슬아이스크림을 집어 들며 좋아라 한다. 할머니는 손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덩달아 행복한가 보다. 이른 아침부터 수없이 굽혔다 편 허리질로 번 돈으로 오후에 손녀에게 사주는 행복감은 할머니만이 알 것이다.


“아침에는 너무 고마웠어요.”


짧은 인사를 건네며 마트 문을 나간다. 아침에 나갈 때와는 사뭇 다른 뒷모습이다.


# 휠체어할아버지

전동휠체어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있다. 어디를 다니는지 하루 종일 분주하다. 그런 휠체어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에 몇 번씩 올 때도 있고, 이삼일에 한 번씩 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 몇 주째 통 보이지 않는다.


매번 전동휠체어를 타고 매장에 들어오면 계산대 앞에서 외친다.

“바나나~바나나”

항상 그러하듯 먼저 발견한 직원이 달려가서 제일 큰 바나나 한 송이를 가지고 온다.

“커피~커피”

또 직원이 달려가서 레쓰비 캔커피 6개짜리 한 묶음을 가지고 온다.

계산은 항상 현금이다. 계산이 끝나면 십 원짜리 동전은 필요 없다며 돌려준다.

“고마워요, 어르신, 팁 잘 받을게요”

휠체어 뒤에 매어져 있는 가방에 바나나랑 커피를 담아주고, 문을 열어준다. 몸은 불편하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하던 할아버지가 몇 주째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오랜만에 왔길래 인사를 하고 보니, 앉은자리 옆에 오줌주머니를 차고 있다.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고, 바나나를 외칠 힘도 없어 보인다.

“바나나 드려요?”

고개를 그 덕 그 덕 한다. 그리고는 다시 오지 않는다. 항상 보이던 어르신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쓰인다. 다들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면 오죽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깝다.


#  학생들..

장 시간이 시작할 무렵이면 학생들도 매장을 많이 찾는다. 앞 건물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한결 같이 손에는 컵라면과 음료수가 들려있다. 가장 인기가 있는 라면은 불닭볶음면이다. 불닭볶음면이 맛있고 인기가 있기도 하지만,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먹는 것도 한몫할 것이다.

“밥 먹고 공부해야지?” 

하고 물어보면,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웃고 만다.




유월 중순이 되자, 취향에 따라 달리 먹던 음료수가 모두 에너지음료로 바뀌었다. 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카페인의 도움을 받기 위함일 것이다.

“시험이 언제부터야?”

“다음 주요?”

얼굴에는 다들 근심과 힘듦이 상존한다.


또래 딸이 생각난다. 내 딸도 어느 편의점에선가 삼각김밥에 에너지음료 망고맛을 먹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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