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건축이 말을 거네.

대기업이 살 길이다

by 능선오름


나는 왜 작고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김수영

spc.gif

나는 왜 작고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나는 건축전공으로 인테리어를 업으로 하고 있다.

상법상 그리고 건축법상 실내건축공사업 이자 전문건설업종 중 건축마무리 공사업이다.

원래 건축업은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으로 구분되어 있다.

종합건설은 아파트. 빌딩 등 건축기초부와 구조부 공사를 하고 각 공종별 전문공사업체들이 세부적인 공사를 한다.

종합건설업은 문자 그대로 종합적인 프로젝트 관리를 하며, 공종별로 '전문' 공사업체들에게 하도급을 주게 되어있다. 법적으로 그렇다.

일반사람들은 실내건축, 토공사, 전기공사업, 기계설비업, 조경업, 금속창호공사업 등등 전문건설업체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종합건설업체의 이름들은 대개 아파트 단지 이름 앞에 붙으니 대충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건설업은 크게 설계와 시공으로 나뉘지만,

설계의 경우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진행하고 시공은 종합건설업 면허업체가 진행한다.

그리고 '시공'이란 공사에 대한 견적을 작성하는 공무와 현장안전관리를 총괄하는 안전보건, 현장에 들어올 전문건설업체를 선별하는 외주관리, 전문건설업의 각 공정을 지켜보고 관리하는 시공관리 정도로 구분된다.

즉 종합건설면허가 있다고 해서, 거기에 직접적으로 형틀을 만드는 목공, 철근을 배근하는 철근배근공, 콘크리트를 타설 하는 타설공, 전선을 배관하는 전공, 설비라인을 구축하는 기계설비공, 마감을 담당하는 수장공 등 기능인을 직접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건 전문건설업도 마찬가지라서, 실내건축공사업 면허를 가진 우리 회사 같은 경우도 설계팀과 시공팀이 있지만 그건 전반적인 프로세스 관리와 견적, 하도급 전문 기능공들을 관리하는 기능이지 직접적으로 공구를 만지는 기능인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간혹 기능인을 보유한 전문건설업의 경우는 '하자보수'를 위한 AS팀 개념이지 직접 시공을 하지 않는다.

종합건설업 이건 전문건설업 이건 기능인을 직접 부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공정(공사의 진행 과정) 혹은 공종(공정별 진행 공사종류)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알고 관리하는 능력과 실제로 건축재료를 다루고 시공하는 기능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재작년부터인가 국회에서 슬금슬금 법규를 바꿨다.

종합건설업 면허를 가진 업체가 전문건설 면허를 중복 보유할 수 있도록 법개정을 한 것이다.

애초 종합건설업 면허 취득에 대한 기준과 전문건설업 면허 취득에 대한 기준은 다르다.

종합건설업의 공사단위가 금액적으로 크기 때문에 많은 자본금과 더 많은 기술인을 보유해야 한다.

그러하니 종합건설업 회사가 전문건설업 면허 몇 개 더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다.

국회에선 마치 종합건설업 면허와 전문건설업 면허가 동등한 것처럼,

그게 억울하면 전문건설업체도 모자란 자본금을 충족하고 기술인 숫자를 충족하면 종합건설업 시장에 뛰어들도록 허락? 하겠다고 생색을 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예컨대 공원 공중화장실 리모델링 공사 입찰을 하게 된다고 했을 때 거기에 현 0 건설 또는 삼 0중 공업 같은 회사들이 끼어든다면 이름 하나 안 알려진 소규모 전문건설업체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부터 국내 실내건축공사업 면허의 추이를 협회 자료를 통해 지켜보아왔다.

15년간 약 8천여 개 정도의 면허는 변동이 없었고, 매년 1천 개 업체 정도가 폐업하고 다른 신규업체가 등록하면서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해 왔다.

이것은 한국 실내건축 시장의 규모가 그러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게다가 여기에 전문건설면허를 갖지 않고 편법으로 동네 주변에 난립한 면허 없는 업체수는 그보다 곱절일 것이다.

그런데 법이 바뀌자 바로 대기업의 계열사들이 줄줄이 실내건축면허 등록을 해버려서 이제 1만 개가 되었다.

그 대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상호부터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광고기획사부터 기초재료 제조생산을 하는 업체에 고속버스 회사까지 다양하다.

들여다보면 그룹 자체적으로 늘 실내건축공사가 필요한 회사들, 한 마디로 제 식구 먹여 살릴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회사들은 모조리 면허 진입을 한 셈이다.

그리고 그런 회사들은 실제로 인테리어를 하는 행위는 예전과 똑 같이 실제 실내건축면허를 가지고 일을 해 온 회사들에게 재하도급을 준다.

이전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을 의 전쟁'을 붙이고 거기서 얻어지는 이득을 발주처에서 취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진 거다.


거칠게 표현하면, 전국구 조폭이 동네 조폭들을 평정하여 자기 손 아래에서 상납을 받아가며 이득을 취하게끔 하는 영화 같은 현실이 된 것이다.

당연히, 실질적인 영업이익이 대폭 줄어든 실제 업무수행을 해야 하는 전문건설업 당사자들은 재료를 아끼고 인원을 줄여서 그 손해를 감당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셈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20년 전에도 있었다.

그때는 대기업 군이 아닌 중견 기업군에 들어가는 회사들도 너도 나도 종합건설업 면허를 냈었다.

건설 시장이 제법 커졌고, 하다못해 회사 규모가 커져 자체 사옥을 건설하게 되어도 그걸 다른 회사에 주면 손해라는 속셈으로 건설업 면허를 급조하고,

실제 진행은 기존의 전문건설업체들을 쥐어짜서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론 발주처가 이미 자회사 격인 업체를 지정하고 금액도 정해서 하청업체끼리 출혈 경쟁을 통해 자회사에 이득을 남기는 구조적인 구조를 형성하였다.

물론 자회사의 직원들은 자격증은 있으나 실제 기능을 하는 것 없이 하도급업체 관리만 하는 '갑질'에 특화? 된 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런 춘추 전국시대와 같던 건설시장에서 건설경기가 위축되자마자 '무늬만 건설'이던 회사들은 일찌감치 면허를 반납했다.

그 과정에서 잘해나가던 전문건설사들이 픽픽 쓰러져 나가기도 했다.

원 발주처인 대기업 계열의 전문건설사가 폐업을 해버리니 줄도산을 했던 셈이다.

그리고 불쌍하게도, 당시 '대 갑' 회사에 근무했던 기술자들은 정작 실무 능력은 배운 적도 없이 회사가 없어져 버리니 전문건설업체 구인시장에서 찬밥 취급을 받았거나 아예 포기하고 이 시장을 나갔다.

그런데 이 상황이 다시 반복이 되고 있으니, 역시나 건설에 대하여는 정치적 능력이 없으면 속절없니 휘둘리는 게 당연한 모양이다.

힘없는 '하청업체'들은 속절없이 설렁탕 고깃 조각이나 시비를 걸 수밖에 없다.


20250522_122629.png
20250522_122743.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건축이 말을 거네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