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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Dec 05. 2023

2학기 2차 고사 -1일 차(음식의 행복)

2023.12.05.


‘학교 가기 싫다.’, ‘요즘 애들은….’, ‘스트레스받는다.’, ‘힘들다.’ 학교로 출근하기 전, 퇴근한 후, 습관처럼 툭툭 던지는 말들이다. 한 교사는 열의 없는 직장인이 되어 밀려드는 업무와 곤란한 학생을 마주하며 괴롭다, 못 해 먹겠다, 입 밖으로 내뱉는다. 이 교사의 말에는 가시가 있어 학교가 괴로운 공간이길, 교사가 고단한 직업이길, 자신이 그런 진흙탕 속에 허우적대고 있길, 바라는 것 같다.


누군가가 한 교사에게 말했다. ‘뉴스 보니까 요즘 애들 아주 건방지고 못됐던데요. 교사하기 너무 힘들겠어요. 애들은 역시 때려가며 키워야 하는 건데.’ 그제야 그 교사가 깜짝 놀랐다. 요즘 애들, 그렇게 못되기만 한 건 아니에요. 교권이 추락했다고, 그래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학교는, 뉴스에 나온 것처럼 삭막하고 전쟁 같은 곳만이 아니라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기도 해요.


글을 써야겠다. 다정하고 온화한 학교의 일상을 글로 공유해야겠다. 무심코 놓쳤던 고마움을 일기로 남겨야겠다. 뉴스에서는 학교의 따뜻함을 알려주지 않으니까. 습관처럼 힘들다는 말을 던지는 교사는 사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니까.


30대_고등학교_비담임_교무기획부



드디어 올해의 마지막 지필고사가 시작되었다. 굵직한 것을 제외하고는 자잘한 업무와 수업이 올스탑되어서 가장 한가하면서도, 시험의 중요성으로 인해 긴장되는 기간이다. 우리 학교는 지필고사 기간에 선생님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해 준다. 온종일 서 있어야 하는 선생님들에게 힘내라는 의미로 주는 것 같다. 다른 학교에 있을 때는 간식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여기 와서 처음으로 고사 기간 중 간식이라는 것을 받아봤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지필고사 기간이 되면 무슨 간식이 올까, 기대부터 한다.


오늘의 간식은 만두였다. 고사 기간의 간식 중 나의 최애 간식이다. 1교시 감독을 갔다 오니 고기만두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길래 김치만두로 슬쩍 바꿔왔다. 간장에 툭 찍어서 단무지와 함께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짝지 선생님과 같이 수다 떨며 맛있게 먹었다.


지필고사 기간에는 일차별로 협의회도 있다. 1일 차는 부서, 2일 차는 교과 협의회 날이다. 협의회의 좋은 점은, 맛있는 점심을 사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회식이다. 오늘의 회식 장소는 순대집이었다. 모듬 순대와 순대 전골을 시켜서 먹었는데,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업무 얘기가 오갔는데, 나는 말단 부원에 가까운지라 그냥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그러니까 부장님과 선생님들이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하냐며 아프냐, 기분이 안 좋냐, 계속 물어보셨다. 그런 게 아닌데. 민망하고 미안했다. 또, 그만큼 신경 써주시는 것에 감사했다.


디저트로는 미숫가루를 먹었다. 감사하게도 교감 선생님께서 사주셨다. 미숫가루에 들어가는 꿀을 전부 빼달라고 했더니 선생님들이 그럼 너무 맛없다고 조금은 넣으라고 말했다. 그래서 반만 넣어달라 했는데, 막상 마시니 너무 달았다. 다음에는 아예 빼달라고 해야지. 뭐, 그래도 맛있었다.


앞으로 남은 지필고사 기간에도 온통 먹는 얘기뿐일 것 같다. 지필고사 기간에 별다른 일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필고사 기간에 간식도 먹고 회식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먹는 것은 아주 원초적인 행복의 요건이다. 오늘의 급식 메뉴를 묻고, 근처 맛집 정보를 공유하고, 커피를 내려 마시는 동안에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웃음꽃이 핀다. 교무실에서 화사한 웃음꽃이 피는 데 음식이 일등공신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선생님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오늘 같은 하루하루가 모두 소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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