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 중독자의 다이어트 이야기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그 유명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처럼 2021년 대한민국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말이 있다.
'올 여름도 그렇게 살래?'
'이번 휴가엔 비키니 입어보자'
'3개월 헬스PT -20KG 필라테스 요가까지 완전무료'
'뼈랑 근육 빼고 다 빼드립니다'
같은 다이어트 자극 문장들이다. 사실 다이어트에 관심이 지대한 대한민국에서는 사시사철 떠돌지만 유독 여름이 다가오면 더 극성이다. 코로나로 인해 실내 생활이 늘어나며 덕분에 체중도 함께 올라간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올해 여름도 고민의 연속이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유지어트를 하고 있다며 자축하는 나도 여름이 되면 어쩐지 긴장된다. 괜히 핸드폰에 운동 앱을 깔고 새 운동화를 사보고 필라테스 말고 다른 운동을 하나 더 추가할까 고민도 한다. 죄책감 없이 주말 아침에만 먹던 디저트도 어쩐지 설탕 몇 그램과 밀가루와 버터로 계산된다. 웃긴 노릇이다. 여름이 다가온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마음 가짐이 바뀔 일인가?
하지만 필연적으로 맨살을 드러내게 되는 계절인지라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종아리 위로 껑충 올라오는 핫팬츠를 입진 않지만 그래도 누구에게나 습하고 더운 계절이다. 주말에는 옷장을 뒤집어 엎었다. 작년에 입었던 여름 옷이 무사히 들어가는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어딘가 불안하다. 체중도 변화는 없지만 1~2kg쯤 알아서 빠져주지 않으려나 하는 게으른 상상도 해본다. 나는 아슬아슬한 정상 체중인지라 1~2kg만 늘어도 bmi지수로 계산시 과체중이 되어버린다. 이 미묘한 경계에서 다이어트를 멈추기로 한건 내 선택이지만 때로는 과식 후 엄습하는 죄책감과 공포감은 마치 내가 인생 최고 몸무게를 목도한 그 날과 비슷하다.
여름은 다이어트 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말에 나는 동감하지 않는다.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 커피가 주는 쾌감은 말도 못 한다. 아이스크림, 팥빙수 모두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다. 차게 얼린 얼음에 진한 콩물을 탄 콩국수나 냉면은 또 어떤가. 땀을 한 바가지 흘려도 두 바가지 먹으면 되는 계절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온 세상에서 비만과 그에 따르는 합병증이 무시무시하다고 떠들어댄다. 나처럼 다이어터가 아닌데도 당뇨가 두려워워 달콤한 커피를 끊은 또래도 심심치 않다. 서서히 대화 주제가 건강으로 바뀌어가는 나잇대인지라 들려 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일까? 다이어트를 자극하는 문장이나 광고는 하나같이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이 많다. 하도 많은 잔소리와 오지랖을 들은지라 엔간한 말로는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비만인들이 많기에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격적인 문장과 노골적인 비키니와 수영복을 입은 트레이너를 앞세운 광고는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들의 조각같은 몸매를 동경하기에는 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인데다, 네거티브 전략으로는 비만인의 움츠린 마음을 열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만났던 비만인들은 하나같이 밝고 긍정적인 모습 안에 어둡고 우울한 면모를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듣는 주변의 적절치 못한 말들과 평가에 예민한 대한민국에서 멘탈 좋게 살아갈 수 있는 비만인은 손에 꼽는다. 사실 누구보다 살을 빼고 싶은 것도,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이전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럼 살을 빼고 운동을 하면 된다는 식의 1차원적인 충고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모두 그들 나름의 노력을 여러차례 해봤을테고, 매번 실패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성격이 아주 꼬여서 기왕 하는 다이어트라면 아주 열심히 인생을 걸고 해보라는 트레이너들을 보면 저 사람은 자기가 트레이닝하는 회원만큼 살이 쪄 봤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공부는 성적이 좋은 사람에게 배우면서 왜 다이어트는 살이 쪄본적도 없을듯한 깡마른 사람에게 배워야 하는지 의문을 품은 적도 있다. 지금이야 회원들의 고충에 공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트레이너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전 내가 썼듯 무심했단 트레이너와의 만남은 내게 헬스pt에 회의감마저 들게 했다. 다이어트를 위한 좋은 멘토를 찾기란 아직도 쉽지 않다.
게다가 의외로 좋은 다이어트 방법을 찾기란 어렵다. 너무 많은 정보가 사람들을 현혹한다. 하루는 바나나가 좋다고 해서 샀더니 다음 날은 바나나는 당이 높으니 먹지 말라는 식이다. 게다가 9 to 6는 기본에 야근도 잦은 현대인에게 숨통 조이는 식이와 운동은 가히 초인적인 인내심을 요구한다. 여성이라면 여기에 생리까지 더해진다. 나는 다이어트 기간을 기억에서 반쯤 휘발될만큼 아득하고 아무런 낙도 없는 시간으로 기억한다. 매일매일 지치고 힘들었다.
가끔 반짝이는 별처럼 즐거운 시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앞자리가 바뀌었다거나 치팅 데이같은 나날들이 나를 지탱했다. 사회에 무난히 섞여들고 싶다는 내 소원을 이뤘다. 물론 아직도 엄격한 시선으로 보기에 좀 통통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난 이제 더 이상 옷가게에서 나 자신을 반으로 갈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다. 그거면 된거다. 비키니가 아니어도, 몸매를 훤히 드러내는 멋진 옷이 아니어도 괜찮다. 물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내 삶의 행복을 깎아내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 내 삶엔 빵이 필수불가결하며 커피와 구움과자와 맛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당신의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건강한 몸을 만들자는 긍정적인 홍보 문구가 더 많아지는 여름이 되었으면 한다.